ADVERTISEMENT

[美서 우뚝선 '자랑스런 한국인'] 양진석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여덟살 때 한국전쟁이 터졌지요. 배가 고픈데 먹을 게 없었죠. 동네 형들을 따라 미군부대 앞에서 구두를 닦았어요. 그때 품삯 대신 받아먹은 빵이 아직도 기억나요."

지난 4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북부의 코테마데라(corte madera) 시의원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양진석(62)씨는 가난을 딛고 미국에서 성공한 인물로 꼽힌다. 그는 1999년 캘리포니아주 북부에서 한인 역사상 최초로 시의원에 당선돼 화제가 됐었다.

첫번째 당선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최고 득표를 기록한 양씨는 미국 내 모든 이민자들이 자신들의 약점으로 치부하는 '피부색'을 오히려 당선 비결로 꼽았다.

"유색인종이기 때문에 더욱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습니다. 남들이 저를 유심히 보니까 더욱 잘 하려고 노력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신임도 빨리 얻게 된 것이죠."

이번엔 지역의 유력 신문인 마린 인디펜던트 저널이 선거를 2주일여 남겨둔 상황에서 사설을 통해 양씨를 지지한다고 공식 발표하면서 '전쟁으로 폐허가 된 모국을 떠나 성실하게 살아 온 양씨는 모범적인 이민자의 본보기'라고 소개했었다.

코테마데라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북쪽으로 20여㎞ 떨어진 도시. 인구 9천4백여명 중 97%가 백인이다. 전체 성인인구의 75%가 대졸 학력을 가졌고, 주택의 평균 가격이 82만달러(약 9억4천만원)에 달해 전형적인 미국 상류 도시로 분류된다.

경희대 체육학과를 졸업한 양씨는 지긋지긋한 가난이 싫어 65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콜로라도 주립대에 적을 두고 밤에는 식당에서 청소하고 접시를 닦으며 고학생활을 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양씨가 택한 직업은 청소년 보호 감찰관. 그는 "제 자신의 불우했던 청소년 시절 기억이 '청소년 선도의 길'로 들어서게 한 것 같다"고 회상했다.

86년 코테마데라에 정착, 이탈리아 식당을 운영해왔다. 양씨가 정치에 관심을 가진 것은 90년대 중반. 당시 지역 주민들이 동네 문제라면 항상 앞장서고, 마음씨 좋은 양씨에게 공직에 나서보라고 권유했던 것이다. 그러나 97년 시의원에 처음 도전했지만 보기 좋게 쓴잔을 마셨다.

양씨는 "한인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지도자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 일할 것"이라며 "앞으로 한인 2세들의 미국 주류 정치 참여를 독려하겠다"고 다짐했다.

샌프란시스코지사= 최광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