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29억 낭비 감사 청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시의 오락가락 행정에 아까운 시민 세금이 낭비됐으니 책임을 져야죠."

10일 오전 11시 인천시 남동구 장수동 인천대공원 정문 앞. 남동시민모임 회원 10여 명이 공원을 찾은 시민에게 주민감사 청구를 위한 서명을 받고 있다. 1995년 구정(區政) 감시를 위해 발족된 이 단체는 생업을 가진 남동구 주민 150여 명으로 구성돼 있다. 시민들의 호응이 이어지면서 두 시간 만에 감사를 청구하는 데 필요한 300명의 서명을 받았다.

박춘성(38.인천 연학초교 교사) 대표 등 남동시민모임 관계자들은 이번 주 중 인천시와 시의회를 감사해 달라고 건설교통부에 요구할 예정이다. 박 대표는 "무료였던 인천대공원을 섣불리 유료화했다가 1년 반 만에 다시 무료화로 되돌아가는 과정에서 29억원에 이르는 세금 낭비, 시민 부담에 대해 책임을 묻기로 했다"고 말했다.

관모산 일대 90만 평에 이르는 인천대공원은 96년 문을 연 이래 인천 시민의 휴식처 역할을 해 왔다. 봄부터 가을까지 벚꽃.장미.무궁화.국화축제가 이어지고 15㎞에 이르는 조깅코스와 잔디 축구장, 테니스.농구.스케이트장 등을 갖춰 생활체육을 즐기려는 시민들로 활기가 넘치던 곳이다.

그러나 인천시는 2003년 이 공원에 입장료를 받겠다며 조례 개정을 추진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시민들, 특히 공원 주변의 남동구민들이 거세게 반대했으나 시는 '사용자 부담 원칙'을 내세우며 밀어붙였다. 그래서 지난해 7월부터 시민들은 주차료 2000원을 낸 뒤 다시 500원(청소년 400원.어린이 200원)짜리 입장권을 끊어야만 공원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시민모임은 유료 공원으로 바꾸기 위해 공원 주변에 철책 울타리를 둘러치고 매표소 여섯 곳과 자동 티켓 발매기 6대를 설치하는 등 인천시가 18억원의 세금을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입장권을 판매하고 회수하기 위한 인건비로 5억원의 예산이 집행됐으며 공원을 이용하는 시민은 지불하지 않아도 될 6억원의 입장료를 냈다는 것이다. 결국 시민의 주머니에서 29억원이 직.간접으로 나갔다는 설명이다.

공원을 유료화하자 이곳을 찾는 시민들이 급격하게 줄었다. 지난해 7월부터 올 6월까지 1년 동안 공원 이용객은 135만4000명이다. 이는 유료화 이전의 연간 이용객 450만 명(인천시 추산)에 비해 280만 명이나 적다. 시민들의 반대가 계속되자 인천시와 인천시의회는 9월 다시 조례를 고쳐 내년 1월부터 입장료를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박 대표는 "인천시와 시의회가 시민여론을 거스르는 단견 행정으로 세금을 축내고 시민들을 공원에서 몰아냈다"며 "신중하지 못한 정책 결정으로 시민들이 본 피해에 대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인천시 관계자는 "공원의 유.무료화 번복에 따른 예산 낭비는 시설비 8억원, 인건비 5억원 등 13억원 정도"라며 "인천대공원은 사용자 부담 원칙을 적용할 수 있는 자연공원이지만 시민들의 반발이 거세 다시 무료화하기로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인천=정기환 기자 <einbaum@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 <choijd@joongang.co.kr>

◆ 주민감사청구=주민들이 지방자치단체의 위법하거나 공익에 반하는 행정에 대해 상급기관에 감사를 청구하는 제도다. 주민의 참여 기회를 확대하고 행정 감시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광역시나 도(道)의 사무와 관련된 업무는 장관에게, 시.군의 업무는 도지사나 광역시장에게 감사를 청구한다. 일정한 숫자 이상의 주민 서명을 받아 감사를 청구해야 하며 수사.재판에 관련된 사항이나, 사생활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사안은 감사청구 대상에서 제외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