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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당신들이 희망" … 과학 영웅 10인 탄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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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2006년 국가 석학에 선정된 교수들이 12일 서울 세종로 정부 중앙청사에서 김신일 교육부총리와의 오찬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고등과학원 이기명(물리학).고려대 최의주(생물학).세종대 김기현(지구과학).서울대 국양(물리학).연세대 이수형(물리학).성균관대 채동호(수학).서울대 임지순(물리학).서울대 김명수(화학).서울대 이형목(지구과학) 교수. 고등과학원 황준묵(수학.작은 사진) 교수는 해외 출장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조용철 기자

'국가 석학' 선정 … 학자당 최대 20억원 지원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을 만한 잠재력과 실력을 갖춘 '국가 석학(Star Faculty)' 10명이 선정됐다. 이들에게는 앞으로 5년 동안 매년 2억원씩(이론 분야 1억원) 지원된다. 필요하면 연구기간을 5년 연장해 최장 10년간 20억원을 지급한다. 그동안 정부 지원 개인 연구비가 연간 5000만원을 밑돌았던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액수다.

교육인적자원부와 한국학술진흥재단은 12일 '2006 국가 석학 지원사업' 기초과학 분야 대상자 10명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국가 석학은 지난해 물리학.화학.생물학 등 3개 분야에서 11명을 처음 뽑았다. 올해는 수학.지구과학을 추가해 5개 분야로 확대했다.

수학은 채동호(성균관대).황준묵(고등과학원) 교수, 물리학은 국양(서울대).이기명(고등과학원).이수형(연세대).임지순(서울대) 교수, 화학은 김명수(서울대) 교수, 생물학은 최의주(고려대) 교수, 지구과학은 김기현(세종대).이형목(서울대) 교수가 선정됐다.

김신일 교육부총리는 "각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쌓고 있는 과학자들이 노벨상 수상자가 될 역량을 키워 국가 위상을 높여 달라"고 당부했다.

국가 석학들은 3 대 1의 경쟁을 뚫고 선정됐다. 가장 중요한 기준은 과학기술인용색인(SCI) 저널에 실린 논문의 피인용 횟수였다. 물리학.화학.생물학 분야는 SCI 피인용 횟수 기준이 1000회 이상, 수학은 100회, 지구과학은 300회 이상인 과학자만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임지순(물리학) 교수가 4083회로 가장 많았고 이기명(물리학) 교수는 2735회, 김명수(화학) 교수는 2715회를 각각 기록했다. 노벨 물리.화학상 수상자의 경우 평균 SCI 피인용 횟수가 5000회 정도다.

양영유 기자 <yangyy@joongang.co.kr>
사진=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황준묵 고등과학원 교수 34세 때 '라자스펠트 예상' 풀어

황준묵(43) 고등과학원 교수는 한국 수학계에 떠오르는 별로 꼽힌다. 세계 수학계에서 1997년까지 풀지 못했던 난제 '라자스펠트 예상'을 명쾌하게 풀어내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라자스펠트 예상은 미국 미시간대 라자스펠트 교수가 84년 예측한 이후 15년 동안 수많은 사람이 문제 풀이에 나섰으나 그 예측이 맞다거나 틀린다는 걸 증명하지 못했다. 황 교수가 그 문제를 푼 나이가 34세였다. 홍콩대의 나이밍 목 교수와 공동으로 이뤄낸 개가였다. 세계적 대가들도 손을 든 난제를 이들이 풀어낸 것이다. 라자스펠트 예상이 '맞다'는 것을 증명했다는 소식을 들은 라자스펠트 교수가 자신의 일인 양 기뻐했다고 황 교수는 전했다. 수학계에는 풀리지 않은 난제가 많다. 수백 년간 풀리지 않은 것도 있다. 그런 난제를 푸는 건 끊임없는 연구와 사색의 결과다. 황 교수는 97년 라자스펠트 예상에 대한 해법의 실마리를 나이밍 목 교수로부터 듣고 당장이라도 풀 수 있을 걸로 여겼다. 그러나 오판이었다. 문제풀이가 미궁에 빠졌던 것. 그러던 중 서울대 캠퍼스를 걷던 그에게 번갯불처럼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게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됐다.

"모든 연구가 그렇듯이 영감이 중요합니다. 연구실에만 있으면 그런 영감을 얻기 어렵습니다."

황 교수는 96년 서울대 교수로 부임했다. 그러나 불과 3년 만에 자리를 내놓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 부설 고등과학원 교수직으로 옮겼다. 잡무가 너무 많고 전화가 빗발쳐 사색하거나 연구할 시간을 빼앗긴다는 게 이직의 변이었다. 이 때문인지 그는 그 흔한 휴대전화를 가지고 다니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그에게 고등과학원은 연구만 할 수 있는 최적의 연구소였던 것이다. 그는 학부에서는 물리학을, 대학원에서는 수학을 전공했다. 물리학과 3학년 때에는 물리학보다 수학 과목을 더 많이 들었을 정도로 수학을 좋아했다. 황 교수는 가야금 명인이자 이화여대 교수를 지낸 황병기 교수와 소설가 한말숙씨 사이의 장남이다.

◆ 라자스펠트 예상=미국 미시간대 라자스펠트 교수가 1984년 예측한 명제다. 실수와 허수로 이뤄진 복소수를 데이터로 하는 다차원 공간에 대칭성이 많은 좌표들이 존재한다면 이에 대응하는 공간에도 대칭성이 많은 좌표의 무리가 존재해야 한다는 예측이다.

국양 서울대 교수 '주사터널링현미경' 독자 개발

'초등학교 때 라디오를 분해하다 고장 내는 바람에 부모에게 꾸중을 듣고, 대문 빗장에 도르래와 실을 연결해 방 안에서 열 수 있게 했던 소년. 호기심이 많아 집안의 물건을 분해하고 조립하길 좋아했던 소년'.

국양(53.고체물리) 서울대 교수의 초등학교 때 모습이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는 세계 나노 과학을 선도하는 과학자로 컸다. 나노 과학은 웬만한 현미경으로도 볼 수 없는 원자 정도의 물질을 들여다보거나 다루는 학문으로 차세대 유력 분야로 기대된다. 실리콘이나 철.구리 등 금속의 원자를 들여다보는 주사터널링현미경(STM)은 지금의 국 교수를 있게 한 결정적인 업적으로 꼽힌다.

그는 1984년 독자적으로 이를 개발했다. 이미 IBM연구소의 물리학자 게르트 비니히와 하인리히 로러가 81년 이를 처음 개발했지만 거의 동시대에 첨단 기술을 개발한 사실이 국제 학계를 놀라게 했다. 그는 로러를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나눈 뒤 이 현미경 개발에 도전했다. 비니히와 로러 교수는 이 업적으로 나중에 노벨상을 받기도 했다. 물질 구조를 잘 들여다볼 수 있는 고성능 기기는 나노 과학의 출발점이었기 때문이다.

"내 손으로 직접 만든 주사터널링현미경으로 처음 실리콘 표면에서 원자를 들여다봤을 때의 희열은 20년이 넘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세계에서 자신이 만든 장비로 원자를 직접 본 사람은 그가 다섯 번째였다. 그는 지금도 상용 제품으로 나와 있는 주사터널링현미경을 사서 쓰지 않는다. 모두 직접 만들어 쓴다. 그래도 상용제품보다 성능이 월등히 뛰어나다. 원하는 실험에 맞게 제작할 수 있다고 한다. 그는 박사학위를 받은 뒤 25년 동안 연구에 매진했다. 세계적인 과학자로 성장했지만 항상 아이디어를 만드는 일이 가장 어렵다고 털어놓는다. "연구자는 24시간 눈 뜨고 있는 동안은 항상 아이디어를 만드는 데 매달려야 한다." 좋은 아이디어는 뜻하지 않은 분야, 예를 들면 미술 관련 서적을 보다가 또는 길을 걷다가도 퍼뜩 떠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국 교수는 2권의 편저와 130편 가량의 논문을 발표했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 주사(注射)터널링현미경=보통 물질은 눈으로 보거나 그게 안 되면 광학 현미경으로 들여다본다. 그러나 고체의 원자 등은 광학 현미경으로도 보기 어렵다. 주사터널링현미경은 아주 예민한 탐침으로 물질의 표면을 더듬어 원자를 감지한 뒤 그것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 국가 석학(Star Faculty)=과학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과 실력을 갖춰 노벨상에 도전할 만한 인물로 뽑힌 과학자. 요건 심사→연구 업적→전공 심사→국외 전문가 평가→원로 과학자로 구성된 국가 석학 선정위 심사 등 모두 5단계를 거쳐 선정한다. 지난해 처음으로 11명을, 올해는 10명을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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