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볼 4강전 재경기 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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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한국의 박경석(뒷모습)이 슛하는 순간 카타르의 골키퍼 압둘자바 유세프 알말렘이 사지를 벌려 막고 있다. [도하 AFP=연합뉴스]

"오늘 같은 경기는 핸드볼의 신(神)이 와도 이길 수 없다." 한국 남자핸드볼이 12일(한국시간) 준결승에서 홈팀 카타르에 28-40으로 대패한 뒤 장신(2m3cm) 주포 윤경신(33.함부르크)이 허탈하게 내뱉은 말이다. 이날 경기의 주인공은 한국도 카타르도 아닌, 쿠웨이트 심판 알리 압둘후세인과 사미 칼라프였다.

한국 선수들이 공을 쥐고 두 걸음만 떼도 '오버 스텝' 휘슬이 울렸다. 수비할 때 카타르 선수의 몸에 닿으면 '2분간 퇴장'이 주어졌다. 공격할 때 수비수와 접촉만 해도 '반칙'이었고, 단독 찬스로 골을 성공시키면 '라인 크로스'가 선언됐다. 2분간 퇴장이 총 10차례 나왔고, 한꺼번에 세 명이 퇴장을 당해 3대6(골키퍼 제외)으로 싸워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백원철과 김장문은 레드카드를 받고 '완전 퇴장'당했다.

경기 중반이 지나면서 한국 선수들은 아예 카타르 선수와 접촉을 피하고 9m 라인 밖에서 장거리슛으로 대응했다. 이 경기를 위해 폴란드 경기를 마치고 날아온 윤경신은 "지금까지 핸드볼을 했다는 게 창피하다. 그나마 이성을 잃지 않고 끝까지 뛰어준 후배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아시안게임 6연속 우승을 노리던 최강 한국을 12점 차로 대파하는 '도하의 기적'을 일으킨 카타르 선수들은 둥글게 모여 환호했고, 한국 선수들은 쓴웃음을 지으며 경기장을 떠났다.

이 같은 결과는 9일 쿠웨이트와의 예선리그에서 예고됐다. 국제핸드볼연맹(IHF)으로부터 국제심판 자격을 박탈당한 카타르 심판 두 명이 나섰고, 한국은 쿠웨이트에 26-32로 졌다. 대한올림픽위원회가 항의 서한을 대회 조직위원회와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에 제출했다. 하지만 OCA 회장인 아메드 알파하드 알사바 쿠웨이트 왕자가 아시아핸드볼연맹(AHF) 회장까지 맡고 있어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한국-카타르 전에는 쿠웨이트 심판 두 명이 나선 것이다.

TV 해설을 한 강재원 다이도스틸(일본) 감독은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쿠웨이트 우승, 카타르 준우승이라는 각본대로 심판이 움직였다"고 흥분했다.

한편 카타르 핸드볼 협회는 이날 경기가 불공정한 경기였다는 점을 인정하고, 재경기 수용 의사를 밝혔다. 이에 따라 한국 선수단과 카타르 선수단은 AHF에 재경기를 요구하는 서한을 각각 보내기로 했다. 카타르 핸드볼 협회 부회장은 이날 한국 선수단을 찾아와 이 경기 결과로 인해 한국과 카타르 간 우정이 금 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편파 판정으로 이득을 본 해당국이 불공정 경기임을 인정한 것은 이례적이다. 그러나 AHF가 재경기 요구를 받아들일지도 불분명하고 일정상 재경기는 여의치 않을 것 같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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