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망하는 날] ② 일할 사람 없어진다-4代 밥값 혼자 내는 시대 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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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부동산값이 천정부지다. 환율은 급전직하다. 내년이면 대선이다. 사람들은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정부는 괜찮다고 한다. 1997년 외환위기 직전과 비슷한 장면이다. 96년 거품경제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김영삼 전 대통령은 "펀더멘털이 튼튼하니 걱정 마라"고 했다. 딱 10년이 지난 지금 서민들은 부동산 경기 폭등에 경기 침체로 "IMF 때보다 더하다"고 한탄한다. 정부가 문제 없다던 96년 겨울, 대선을 앞두고 경제 해법은 정치 논리로 헝클어졌다. 2006년 오늘, 또 그런 위기가 없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2021년을 한번 상상해보라. 한나와 테드는 72세의 노부부로 베이비붐 세대이며, 그들의 딸 베키는 마흔두 번째 생일을 맞이했고, 베키의 10대 자녀들은 의식주를 전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오늘날 기준으로 볼 때 별로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베키의 조부모가 95세가 돼서도 살아 있고, 건강이 악화돼 일거수일투족을 간호사에게 의존하고 있다면? 베키는 어느 추수감사절 날 4세대가 모여 즐겁게 들고 있는 저녁 식사 비용을 자신과 남편만이 내고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될 것이다.’ (‘인구 변화가 부의 지도 바꾼다’ 원앤원북스)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 있는 아이디어’로 유명한 경제학자 토드 부크홀츠가 묘사한 ‘고령화의 충격’이다. 이런 일이 미국에서만 일어날까? 어쩌면 한국에서 더 빨리 일어날지도 모른다.

통계청은 우리나라 총인구가 2018년 4934만 명을 정점으로 2050년에는 4234만 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총인구 숫자의 감소는 10%를 약간 넘는 정도지만 문제는 인구구성 비율이 크게 변한다는 점이다.

저출산과 고령화라는 두 가지 트랜드가 지속되면서 늙은 국가로 변하기 때문이다. 생산 등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인구는 줄고, 부양해야 할 인구는 늘어난다.

일단 생산활동인구(15~64세)가 급격히 준다. 2015년에 전체 인구에서 생산활동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정점을 찍은 이후 감소하기 시작한다. 저출산을 감안하면 2015년 이후에는 65세 이상의 인구가 급격히 증가한다는 말이다.

이 말은 곧 사회적으로 연금 등의 수요층이 급격히 증가한다는 말이고, 국가 재정 상태가 나빠진다는 뜻이다. 지난해에는 경제활동인구로 인식되는 25∼49세 4.8명이 노인 1명을 부양했다. 2020년에는 경제활동인구 2.3명이, 2050년에는 0.65명이 노인 1명을 돌봐야 한다.

지난 2000년 이미 고령화사회(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이 7% 이상)로 진입한 한국은 2018년에 고령사회(앞의 비율이 14% 이상)로, 2026년에는 초고령사회(앞의 비율이 20% 이상)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서 가장 빠른 노령화

이런 노령화 추세는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속도다. 프랑스는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 가는 기간이 115년이 걸렸고, 일본도 24년 걸렸다. 초고령사회로 가는 기간은 한국의 경우 단 8년으로 예상된다.

유엔의 세계 인구 전망에 따르면 미국이 고령사회에 진입하는 시기는 2014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는 시기는 2030년이다. 한국은 각각 2018년, 2026년이다. 토드 부크홀츠의 묘사는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지금 30대들은 그들이 40대에 접어들면 최소한 아래 위로 한 세대, 경우에 따라서는 두 세대의 생활을 돌봐야 할지도 모른다.

연금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그 연금은 40대에 접어든 그들이 내는 돈을 다시 받는 것에 불과하다. 2020년 이후에는 연금재정이 적자를 기록하게 되고 이렇게 되면 연금이 ‘적립식’이 아닌 ‘부과식’으로 바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가입자가 납입한 돈으로 운용해 원금과 수익을 돌려주는 것(적립식)이 아니라, 후세대가 납부하는 돈을 연금 수혜자에게 주는 방식(부과식)이 된다는 것이다. 신입 판매원의 돈을 윗사람이 받는 피라미드 방식으로 연금이 운영될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 지나면 파산에 이르는 세대가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세계사에 유래가 없는 한국 사회의 노령화 추세는 해외 학자들에게도 연구 대상이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미셸 앤드루 박사는 2050년에 한국과 일본은 인구 감소로 국력이 급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은 현재 4700만 명에서 3000만 명으로 인구가 급감, 경제활동인구의 부양률 증가와 생산인구 감소로 노인국으로 전락한다는 것.

일본의 인구경제학 권위자 마쓰타니 아키히코 정책연구대학원대학 교수도 국내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도 10년 정도 지나면 ‘경제 규모 축소’ 시대에 접어들 것”이라면서 “과거와 같이 연 5% 이상의 경제 성장률을 달성하기는 어려울 것이며 당장 내년부터 저성장에 들어설 수 있다”고 말했다.

통계청은 지난 3일 한국의 30·40대 인구는 올해 1675만 명을 최고치로 내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2040년 이후에는 1000만 명 이하로 떨어질 것이라고 통계청은 전망했다. 전체 인구 중에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34.8%로 최고점을 찍은 후 2020년에 29.8%, 2050년에 19.4%까지 내려앉는다.

이렇게 되면 한국 인구의 중위 연령(전체 인구를 연령순으로 세웠을 경우 한가운데 있는 연령)은 2005년 34.8세로 아직은 일본(42.9세)보다 낮지만 2050년엔 56.7세로 일본(52.3세)은 물론 선진국 평균(45.5세)을 앞지르게 된다. ‘3040’ 연령층은 생산활동인구에서 핵심 역할을 차지하는 세대다. 이들이 줄어들면 생산능력이 줄어들게 된다.

富 축적 시간 10년도 안 남아

산업 현장에서는 이미 노쇠화가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 노쇠화가 진행될 경우 제조업 기반 국가인 한국은 생산성은 하락하고 임금은 높아지는 두 가지 문제에 직면한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올 8월까지 50세 이상 취업자가 6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50세 이상 취업자(590만 명)가 전체 취업자의 26%를 차지해 30대 취업자(610만 명)에 근접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지난 4월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서도 산업 전반에 고령 추세가 심해진다고 했다. 특히 조선업 41.5세, 철강업 39.7세, 자동차산업 35.6세 등으로 제조업 부문에서 평균 연령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고령화가 정말 산업 경쟁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까?

한 가지 예를 보자. 최근 사상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는 조선업이 대표적인 경우다. 선박 생산능력에서 세계 1위는 1993년부터 한국으로 넘어왔다. 그때 일본 조선업계의 생산직 평균 연령이 45세를 넘긴 시점이었다. 당시 한국 조선업 근로자의 평균 연령은 30대 후반에 머물렀다. 물론 품질 향상 등 기술적 요인도 있었지만 일본 근로자의 노령화가 중요한 요인 중 하나였다.

문제는 한국 근로자의 고령화 속도가 일본보다 빠르다는 점이다. 지난해 12월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기업 내 근로자 고령화 현황과 정책과제’란 보고서에 따르면 1980~2003년 한국 근로자의 평균 연령은 28.8세에서 37.1세로 높아졌지만 일본은 같은 기간 36.8세에서 40.3세로 오르는 데 그쳤다.

2015년부터 생산 활동인구가 감소하고, 당장 내년부터 30·40대 인구가 감소하는 등 부를 축적할 시간은 이제 10년도 채 남지 않았다. 90년대 중반 이후 지금까지 한국판 ‘잃어버린 10년’은 그래서 더욱 뼈아프다. 일본은 이미 선진국이 된 후 맞이한 인구 재앙을 한국은 중진국 시절에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저출산, 고령화는 한국 경제를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침몰 시킬 수 있다. 10년 뒤 조부모와 부모, 자식들의 저녁값을 다 내고도 쪼들리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석호 기자[luk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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