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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전문가 정희수박사가 본 「수서」(일요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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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주택정책 「주춧돌」부터 잘못/앉아서 몇억버니 투기장 당연/주택문제 이꼴로 만든건 정부
「수서지구사건」에 온국민의 관심이 쏠려있다. 수서지구는 이제 더이상 서울 한모퉁이 지명이 아니라 정·경·관유착의 표본이자,비리·부조리온상의 일반명사가 됐다. 청와대·여당·야당·서울시·건설부 등이 이번 사건에 골고루 연루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노태우 대통령의 지시로 감사원의 특별감사가 시작됐고 검찰과 국세청이 가세,그 전모가 드러나면 책임소재의 시시비비가 밝혀지겠지만 조합주택에서 비롯된 이번 사건의 후유증은 간단치 않을 전망이다. 무주택서민의 내집마련 기회의 한 수단인 조합주택이 어째서 이처럼 일파만파로 전국에 번져 어수선하게 하고 있는지 국토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을 10년간 역임하고 현재 캐나다 퀘벡대 교수로 있는 주택문제전문가 정희수박사(61)를 만나 보았다.
­수서지구 주택조합에 대한 일부 택지의 특별공급을 둘러싼 부조리 여파가 심각합니다. 어찌보면 몇개 주택조합의 문제에 불과한데 청와대에서까지 이 일에 신경쓰게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언제든 터질 일이 이제 터진데 지나지 않습니다. 주택조합제도를 포함해 우리나라의 주택정책은 출발부터 이같은 부조리의 소지를 안고 시작됐습니다. 현 제도하에서는 어떤 수단을 동원하든 일단 새 아파트를 잡기만 하면 앉아서 1억∼2억원을 그냥 벌게 돼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누군들 관심을 쏟지 않겠습니까. 「못하는 놈이 병신」이라는 말이 유행되는 것도 다 이때문입니다. 성인군자가 아닌 마당에야 돈 생기는 일에 누군들 끼어들려 하지 않겠습니까.』
­주택조합제도는 80년대들어 집없는 봉급생활자들이 그래도 비교적 손쉽게 내집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는등 당초 정책의 긍정적 측면에서의 효과가 컸다고 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같은 말썽이 빚어진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원래 주택조합 제도는 서구에서 시작될때 자재가 대량으로 필요하므로 싼값에 구매하는 경제적 효과를 보기위해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택조합은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자재의 대량구매가 아닌 돈벌이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지요. 또 당초 의도대로 직장생활을 하는 무주택자들만으로 자격을 제한했어야 하는데 이를 관리·감독할 능력이 없어 「투기의 장」을 정부가 제도적으로 보장한 꼴이 됐습니다. 같은 직장내에서도 정작 집없는 저소득 하위직은 아예 낄 엄두조차 못내고 자금여유가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조합을 결성하는 일이 더 많았으니까요.
더욱이 「무주택」을 가려낼 제도적 장치를 전혀 갖지 못한 상태에서 이 제도를 운영해 왔으니 왜 문제가 없었겠습니까.』
­정부는 이제 서울등 수도권과 지방4대 도시를 연결하는 주택전산화로 자격심사를 철저히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만­.
『수도권과 4대 도시의 주택소유현황이 전산화됐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선 직장에 들어가 불과 몇년도 안된 30대 초반만되면 으레 자기소유의 집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부터 고쳐야 합니다. 같은 직장에 있으면서도 「궂은 일」하는 저소득 동료는 50이 넘어도 월세·전세를 전전하는데….
이런 점까지를 고려해 「무주택」기금도 지금처럼 하지말고 나이·소득·근무연수·가족수 등을 점수화해 조합원을 엄선해야 합니다. 주택전산화도 그렇습니다. 물론 수도권과 지방주요도시의 집값이 타지역에 비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전국의 주택전산화가 하루속히 이뤄져야 진정한 전산화라 할 수 있겠지요.』
­비록 일부지역이 대상이긴 하지만 주택전산화로 조합주택가입자의 자격은 물론 청약예금가입자의 청약자격도 가릴 수 있게 됐다고 정부는 주장하고 있는데.
『심리적 효과는 다소 있을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전산화 정도의 소극적인 장치로는 근본적인 문제해결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주택정책 전반에 일대 「혁명」을 해야만 주택문제를 근치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능력있는 사람들이 집을 여러채 갖는 것을 막기 보다는 이를 인정해주고 임차·임대에 관한 법을 제정해 과도한 임대료를 법으로 막는 한편 임차·임대인의 권리와 의무를 법으로 보장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이같은 아이디어를 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국민의 절반이 셋집에 들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세들어 사는 사람은 돈을 내고 살면서도 그에 따른 자기권리행사를 제대로 못하고 있고 집주인은 권리만 행사할 뿐 의무는 별로 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집값의 많은 부분을 땅값이 차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정부가 서민용 주택에 관한한 토지는 공영개발,임차해주고 건물분에 대한 가격만 치르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집값은 그만큼 싸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런 얘기를 꺼내면 정부쪽에서는 꿈같은 발상이라는 말부터 나올 것 같습니다. 정책입안자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돈이 없어 못하지 누군들 생각을 못한줄 아느냐」고 하던데요.
『돌이켜보면 오늘날 주택문제를 이렇게 만들어놓은 장본인은 정부 자신입니다. 지난 70년대초 경제발전이 가속화될때 주택정책의 방향을 잘못 잡아 이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저소득층을 소외시키고 중산층위주의 주택정책을 폈던 것이 그 발단입니다. 공공부문인 주택공사의 아파트조차 큰 평수로 지었고 주택은행의 융자 또한 대형아파트에만 주어졌지요.
큰집에 사는게 「있는 사람」들이라는게 당연한 일로 여겨졌고,있던 집도 헐려 대형아파트로 변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큰 집값은 뛰고 주택수는 줄어드는 악순환이 계속돼왔고 그에 따라 서민들의 내집마련 꿈은 멀어지게 된 것입니다. 또 한가지 짚고 넘어갈 일은 엄격히 말해 정부가 지금까지는 주택에 관한한 한푼도 돈을 쓴적이 없습니다.
주공에 투자했다고는 하지만 그 돈으로 집지어 집장사한 것이지 결코 투자한게 아닙니다. 작년에야 처음으로 영구임대주택을 지었으니 최초의 주택부문투자인 셈이지요.
­우리 국민들의 유별난 부동산 선호와 이에 따른 투기를 막을 길은 없습니까.
『사두면 몇배로 커지는데 안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인간의 욕구는 무한대이니만큼 부동산 정책의 원칙을 「사람」을 막는데 두지말고 「기회」를 주지않는데 두어야 합니다. 종합토지세·양도소득세·재산세를 선진외국처럼 철저히 물리고 단기적으로는 아파트분양가를 큰 평수부터 단계적으로 자율경쟁에 맡기면 됩니다.<이춘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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