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제와 환경파괴의 위험(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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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역이기주의 따른 누더기식 개발 막아야
올 하반기로 예상되는 본격적인 지방자치제 실시를 앞두고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환경파괴의 우려가 높아가고 있다. 열악한 지방재정을 개선하기 위해 각 지방 자치단체 권역별로 수익사업의 추진이 불가피해질 것이며,중앙의 통제기능 약화로 각종 생산시설의 확충이나 관광·위락설비의 경쟁적 개발을 제어하기 어려워 결국 엄청난 환경파괴를 초래하게될 것이란 예상이다.
지방자치제 실시를 앞두고 지방재정 확충문제는 가장 중요한 선결과제이며,재정자립 없는 지자제란 사실상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90년 지방자치단체 예산을 기준으로 현재 우리나라의 지방재정자립도는 전국 평균 65%에 불과해 선진국 수준에는 크게 못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서울시가 98%,광주를 제외한 직할시가 90∼86%등 대도시의 자립도가 높은 반면 군지역은 3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어 나머지 대부분을 중앙정부의 재정교부금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인구구조가 산업화·도시화로 급속히 치닫고 있는 현실에서 앞으로도 이같은 격차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지금도 1백60여개 시·군의 재정자립도가 25%에도 못미쳐 행정에 필요한 인건비 조차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은 지자제의 전도가 국민이 예상하듯 「부푼 꿈」만은 아니라는 점은 확실하다.
물론 정부는 최근 담배소비세·전화세 등 국세일부를 지방세로 이관했고,주세·부동산 양도소득세 등 그밖의 국세중 일부를 지방으로 이양할 것을 검토중이기는 하다. 그러나 세입원이 지역별로 편재돼있어 자치단체간의 재정불균형은 갈수록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이같은 절박한 사정에 직면한 지방자치단체의 자립기반 확충을 위한 자구노력의 높은 목소리와 활발한 움직임이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다. 예컨대 관광·지하·수자원이 많은 강원도의 경우 자원세의 신설을 추진하는가 하면 충청도에서는 서해안 일대 해수욕장의 입장료 징수를 검토하고 있다. 서울·부산·인천 등지에서는 길거리에 서있는 전신주등 전기·통신시설에 대한 점용료 부과까지 서두르고 있다고 들린다.
이처럼 재정확충이라는 지역적 목표에만 몰두하다 보면 그밖의 사항,즉 국가전체라는 차원에서의 시각은 외면 또는 묵살되기 쉽다. 이점에서 중앙정부의 통제기능이 절실해지는 것이다.
가장 먼저 우려되는 점이 자연환경의 파괴다. 지자제가 실시되면 지금까지 중앙정부 소관이던 공업단지 조성과 그린벨트 내의 토지이용 등 각종 개발사업의 허가권한이 지방자치단체에 위임된다. 재정자립도가 취약한 지방자치단체들이 재정확충을 위해 인허가를 남발할 우려는 불을 보듯 뻔하다. 예컨대 공장과 호텔·골프장·스키장 등 각종 위락시설을 적극 개발하려 들 것이다. 상수원지역 거주민은 그 물을 식수로 쓰는 수혜자가 아니기 때문에 별 신경 안쓰고 근처에 가두리양식장이나 각종 축사를 짓게될 것이다.
공장이 마구 들어서 폐수와 매연 등 공해를 배출하고 수림과 야산 등 자연환경과 경관이 크게 훼손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러다 보면 전국의 산야가 황폐화되고 하천과 바다의 오염을 가속화시켜 회복불능의 파국상태를 초래하게 될지도 모른다.
현행 환경정책기본법에 환경영향평가제도가 규정돼있기는 하나 환경처가 개발사업 자체를 승인하거나 취소할 구속력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실효를 기대하기 어렵다. 또 영향평가에 당해 지역주민의 의견을 듣도록 하는 주민참여제도를 도입했다고는 하나 바로 자기지역의 소득증대라는 눈앞의 이익 때문에 주민의 판단자체가 왜곡되기 쉽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개발사업 남발로 인한 환경파괴를 막기 위해서는 환경처의 중앙통제기능을 강화하여 지역별 환경문제에 직접 간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무총리가 위원장으로 돼있는 환경보전위원회도 유명무실하게 사장시키지 말고 활성화시켜 분산되는 환경관리기능을 강력히 통합할 수 있는 중앙기구로서의 기능과 권능을 발휘해야 한다. 환경영향평가에 참여하는 주민의 범위도 당해 사업지역에 국한시키지 말고 그 영향권 내에 들어가는 지역까지 확대해야 제도의 취지를 살릴수 있다고 본다.
지방재정 자립을 위한 구체적이고 확실한 기초작업이나 방책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도실시만 서두르다 보면 결국 근본부터 그르칠 위험이 크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옛말을 상기해야 한다. 지자제가 이 좁은 나라를 누더기로 만드는 일이 없도록 미리 전국차원의 예방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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