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상|「성안애기 운동」을 펼치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성내지 않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 한마디가 미묘한 향이로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이 말씀은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어서 누구라도 쉽게 이해된다. 그런데 이 말씀의 뜻을 잘 알면서도 이를 실생할에 그대로 옮겨 실천하기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사람이란 어느 동물보다 감정의 노출이 강한 성질을 갖고 있다. 하루라도 이 감정을 죽이면서 살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희로애락에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키게 되는데 이러한 반응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성질이다.
따라서 그 누구도 일년 열두달 성내지 않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우리의 이러한 성질을 직접적으로 표출시키는 언어(말)도 그 성질의 변화만큼 다양하므로 일년 열두달 부드러울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속성을 간파한 부처님께서 『성을 내지 말라』 『부드러운 말을 하라』고 가르치신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성내지 않는 얼굴을 참다운 공양구로, 부드러운 말을 미묘한 향에 비유하신 것이다. 공양구란 우리가 부처님께 겸허한 자세로 올리는 기구다. 향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참다운 공양구란 꼭 부처님께만 올리는 기구는 아닌 것이다. 향도 그러하다. 부처님을 포함한 모든 중생을 내 부모, 내자식처럼 위해주는 공양구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감정을 늘 표출시켜 주는 얼굴이 기구라면 성내지 않는 얼굴이 곧 진실로 참다운 공양구이며 말을 부드럽게 함으로써 역시 내 부모·친지·이웃이 마치 좋은 향을 맡는 듯 심신이 즐거워진다면 이 또한 미묘한 향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웃 사람들 중에 성질을 내며 욕설을 밥먹듯 하는 사람을 많이본다. 모두 그렇지는 않지만 대체로 이들의 속 마음을 들여다 보면 성품이 괴이하거나 배우지(수양) 못한 사람들이다. 성질이 괴이하니 성을 내게되고 수양이 부족하니 이 또한 성질이 사납다. 이들의 얼굴을 보면 역시 그 얼굴이 일그러져 있다.
「얼굴이 곧 그 사람」이란 평범한 말이 실감난다. 하긴 사람 중에는 얼굴과 성품이 다른 사람도 없지는 않다. 얼굴 모양이 비록 성을 내고 있는 듯 하지만 속마음은 좋은 사람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극소수로 성내고 난폭한 말을 하는 사람치고 좋은 사람은 별로 찾아볼 수 없다. 요즈음 새질서 새마음 운동이 한창이다. 언론매체에서는 인간성 회복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 운동들은 그 필요성에 있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이 운동과 함께 우리 모두 「성 안내는 운동」도 벌였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박현성<도선사 주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