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방송통신위 설립법 차기정권에 맡겨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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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부가 어제 방송통신위원회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현행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 조직을 통합한 대통령 직속 '방송통신위원회'라는 거대 조직이 탄생하게 된다.

문제는 장관급인 위원장과 차관급인 부위원장 2명, 상임위원 2명 등 5명의 위원을 모두 대통령이 임명토록 했다는 점이다. 현 방송위의 경우 국회 추천 몫 6명과 대통령 선임 3명으로 구성돼 있는데도 그간 방송의 독립성 훼손 논란이 그치지 않았다. KBS와 MBC, EBS의 사장 및 이사.감사에 대한 추천과 선임, 임명권을 갖는 방송위의 권한을 인계받는 방통위를 전원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사람으로 채운다면 말이 되는가. 이는 한마디로 대통령이 방송에 이어 통신까지 깡그리 장악하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그렇지 않아도 이 정권은 국민 여론과 KBS 임직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연주씨를 KBS 사장에 재임명했다. 이는 누가 봐도 내년 대선을 앞두고 공영방송인 KBS를 재집권의 도구로 이용하기 위한 무리수였다. 그러고도 모자라 이젠 방송과 정보통신 분야를 한 손에 거머쥐고 정권 재창출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방송.통신의 융합이 세계적 추세임을 잘 안다. 이는 우리 방송이나 정보통신(IT) 업계에 거대한 도전이자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나 방통 융합은 방송 콘텐트와 IT 분야를 잘 조화시켜 차세대 성장동력을 키우는 데 그 목적이 있어야 한다. 방통 융합을 빌미로 이처럼 노골적으로 정치적 계산을 앞세운다면 이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물론 앞으로 국회 논의 과정에서 달라지겠지만 정부 스스로 이 법안을 고치든지, 아예 새 법안을 준비하는 게 옳다. 위원장이야 대통령이 임명하더라도 나머지 위원들은 정치적 중립성을 담보할 수 있는 인사가 선출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문화부와 공정거래위, 정보통신부 등 관련 부처의 업무중복 문제도 교통정리가 필요하다.

따라서 이 문제를 서둘러 처리할 게 아니라 차기 정권에 입법을 맡기는 게 순리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