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운앞에 우리 태세 갖춰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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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제 미국과 이라크는 다같이 결전을 되돌릴 수 있는 퇴로를 모두 끊어 버렸다. 우리 시간으로 16일 오후 2시가 지나면 어느 순간에든 대치하고 있는 포화는 불을 뿜기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위급한 순간에 우리는 이 전쟁이 그 자체로서나 그 여파에 있어서 방관자일 수 없는 입장에 놓여 있음을 다시 한번 자각하고 모든 가능성에 대한 마음의 준비와 대응태세를 점검해야 할 것이다.
전쟁으로 초래될 파국을 생각하면 프랑스가 시도하고 있는 타협안과 리비아 등 아랍국가들의 이라크에 대한 막바지 호소에 실낱같은 기대를 걸어볼 뿐이다.
또 철군시한을 설정한 유엔 안보리 결의가 그 시점을 고비로 무력을 사용해 이라크를 제재할 수 있다는 것이지 꼭 무력을 사용해야 한다는 강제규정이 아니라는데서 최대한 개전시기를 늦추며 평화를 모색하는 길이 열리기를 기대할 수 밖에 없다.
전쟁의 참화가 지금으로서는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불확실하기 때문에 그러한 기대는 절박하다. 종국적으로 미국을 주축으로 한 다국적군이 이라크를 쿠웨이트에서 몰아내고 초토화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대가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가공할 현대무기와 이라크의 화학무기 동원에 따른 인명살상이 얼마나 될지,국제적인 정치·경제적 파장은 어떻게 될지,이 지역에 어떠한 형태의 위기가 새로 확산될지를 생각하면 마지막 순간까지 가능한 모든 평화노력을 탐색해 봐야 할 것이다.
우려대로 이스라엘이 이 전쟁에 휩쓸릴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아랍세계의 반외세성향을 부추겨 또 한차례의 에너지 무기화,새로운 차원의 중동전쟁이 일어나면 이 전쟁은 더이상 국지전의 성격이나 규모에 묶여있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군 의료단 파견을 앞두고 있는 우리로서도 대비해야 할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경제적 파급효과도 대비해야 하지만 아랍세계의 동향이 유동적인 만큼 외교적으로 국익을 해치지 않도록 정부는 물론,국민 모두가 신중히 대응하여 위기를 넘기도록 노력해야 할 때다.
우리로서는 이처럼 비관적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직도 전쟁을 회피할 수 있는 노력이 계속되기를 기대한다. 이미 미국과 이라크 양국 사이에서는 의회의 결의를 통해 최종적 결전의지를 굳힌 이상 직접 타협의 여지가 없다는데서 제3자의 타협안에 귀기울여 주기를 호소하고 싶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철수­미국의 이라크공격 유보­팔레스타인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회의를 골간으로 하는 타협안이나 시한이 지난 뒤에라도 아쉬운대로 완전철군을 전제로한 이라크군의 부분철수 등에 두 나라가 관심을 보인다면 일단 전쟁을 피할 길이 열릴 수 있다고 믿는다.
국제질서와 평화가 미­이라크 두나라의 명분과 체면에만 의해 좌우돼서는 안된다. 쌍방이 다같이 내세워 온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는 말이 진실이라면 대화의 길은 계속 열어 놓아야 한다. 국제평화를 위한 이라크에 대한 제재행동이 역설적으로 더 큰 위기의 시발점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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