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미국과 이라크는 다같이 결전을 되돌릴 수 있는 퇴로를 모두 끊어 버렸다. 우리 시간으로 16일 오후 2시가 지나면 어느 순간에든 대치하고 있는 포화는 불을 뿜기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위급한 순간에 우리는 이 전쟁이 그 자체로서나 그 여파에 있어서 방관자일 수 없는 입장에 놓여 있음을 다시 한번 자각하고 모든 가능성에 대한 마음의 준비와 대응태세를 점검해야 할 것이다.
전쟁으로 초래될 파국을 생각하면 프랑스가 시도하고 있는 타협안과 리비아 등 아랍국가들의 이라크에 대한 막바지 호소에 실낱같은 기대를 걸어볼 뿐이다.
또 철군시한을 설정한 유엔 안보리 결의가 그 시점을 고비로 무력을 사용해 이라크를 제재할 수 있다는 것이지 꼭 무력을 사용해야 한다는 강제규정이 아니라는데서 최대한 개전시기를 늦추며 평화를 모색하는 길이 열리기를 기대할 수 밖에 없다.
전쟁의 참화가 지금으로서는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불확실하기 때문에 그러한 기대는 절박하다. 종국적으로 미국을 주축으로 한 다국적군이 이라크를 쿠웨이트에서 몰아내고 초토화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대가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가공할 현대무기와 이라크의 화학무기 동원에 따른 인명살상이 얼마나 될지,국제적인 정치·경제적 파장은 어떻게 될지,이 지역에 어떠한 형태의 위기가 새로 확산될지를 생각하면 마지막 순간까지 가능한 모든 평화노력을 탐색해 봐야 할 것이다.
우려대로 이스라엘이 이 전쟁에 휩쓸릴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아랍세계의 반외세성향을 부추겨 또 한차례의 에너지 무기화,새로운 차원의 중동전쟁이 일어나면 이 전쟁은 더이상 국지전의 성격이나 규모에 묶여있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군 의료단 파견을 앞두고 있는 우리로서도 대비해야 할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경제적 파급효과도 대비해야 하지만 아랍세계의 동향이 유동적인 만큼 외교적으로 국익을 해치지 않도록 정부는 물론,국민 모두가 신중히 대응하여 위기를 넘기도록 노력해야 할 때다.
우리로서는 이처럼 비관적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직도 전쟁을 회피할 수 있는 노력이 계속되기를 기대한다. 이미 미국과 이라크 양국 사이에서는 의회의 결의를 통해 최종적 결전의지를 굳힌 이상 직접 타협의 여지가 없다는데서 제3자의 타협안에 귀기울여 주기를 호소하고 싶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철수미국의 이라크공격 유보팔레스타인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회의를 골간으로 하는 타협안이나 시한이 지난 뒤에라도 아쉬운대로 완전철군을 전제로한 이라크군의 부분철수 등에 두 나라가 관심을 보인다면 일단 전쟁을 피할 길이 열릴 수 있다고 믿는다.
국제질서와 평화가 미이라크 두나라의 명분과 체면에만 의해 좌우돼서는 안된다. 쌍방이 다같이 내세워 온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는 말이 진실이라면 대화의 길은 계속 열어 놓아야 한다. 국제평화를 위한 이라크에 대한 제재행동이 역설적으로 더 큰 위기의 시발점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