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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희생자 유족의 분노(촛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일제 36년의 사후처리가 매듭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 총리의 방한은 일제에 의한 희생자들을 또 한번 죽이는 처사임을 자각해야 합니다.』
성명서를 읽는 유족회장의 목소리는 분노와 비통으로 바르르 떨렸다.
7일 오후 2시30분 서울 종로3가 종묘공원앞.
태평양전쟁 희생자유족회원 5백여명은 9일로 예정된 가이후 일본 총리의 방한이 민족적 수치라며 분노를 터뜨리고 있었다.
『결혼한지 3년만인 44년 영감이 북해도 탄광으로 강제징용됐습니다. 해방 이듬해에 영감은 귀국했지만 강제노역을 하며 일본군인들에게 온몸을 얻어맞아 허리와 다리를 쓸 수 없는 상태였어요.』
경북 영양군에서 상경한 김홍주할머니(69)는 남편을 치료하기 위해 3년동안 품팔이·새우젓장사·막노동을 했지만 남편은 49년 봄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온몸이 곪아터지는 고통속에 운명하는 순간 영감은 「일본놈들…」이라는 한스런 한마디를 남깁디다.』
김할머니는 일본으로부터 지금까지 배상은 물론 진정한 사과 한마디 듣지 못해 분하고 억울하다며 도대체 우리정부는 무엇하는 정부냐고 울분을 토로했다.
한시간여의 집회가 끝나고 유족들은 종로일대를 돌며 30여분간 침묵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유족들이 일본대사관으로 향할 때 경찰은 「기계적으로」 더이상의 행진을 막았다.
「독일은 전범자 처단하는데 일본은 전범자 영웅 만든다」
「7백50만 강제연행 진상조사·명단공개·배상없이 가이후 방한 결사반대」.
붉은 글씨의 플래카드 뒤에 선 김할머니는 경찰을 향해 죽은 남편의 한을 계속 퍼붓고 있었다.
이들 유족회의 시위를 보면서 기자는 아직도 한일간에는 풀어야할 「응어리」가 많이 남아있음을 실감했다.<최형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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