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제선거서 새바람 일으키자/이젠 달라져야 한다:1(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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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올해 우리 사회가 당면한 지상의 과제는 6·29이래 계속 심화되어 온 정치에 대한 불신과 허무주의를 반전시킬 전환점을 마련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작업의 첫 시험대는 3월로 예정된 지방의회 선거가 될 것이다.
따지고 보면 과거 권위주의체제를 탈피하고 민이 주가 되는 새로운 정치체제를 마련하는 개혁작업은 직업정치인들에게만 맡겨두기에는 너무나 위중한 과업이다.
지금 우리가 정치에 대해 품고 있는 불신과 좌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기성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이익보다 국민들의 이익을 의식하고 행동하도록 국민들이 감시와 채찍질을 가하는 것이고,둘째는 구 정치인들의 무능과 태만을 거울삼아 국민들의 달라진 요구와 소망을 성실히 대변해 줄 새 세대 정치인을 키워주는 일이다.
국민들이 그와 같은 민주주의체제 본연의 역할을 회복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바로 지방의회선거다. 정치권이 제정한 지방자치제 선거법과 지금까지 기성 정치인들이 쌓아 놓은 선거행태는 지자제선거가 또다시 구태의연한 금권·타락으로 흐를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놓고 있다.
그런 조건아래서 만약 이번에도 국민들이 수동적으로 선거운동의 타락상을 그대로 방관 또는 방조하다가 표만 던지면 할 일 다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 선거풍토는 전혀 달라질 수 없을 것이며 그 결과는 국민 모두가 개탄하고 좌절해온 중앙정치무대의 욕된 모습이 더욱 추한 몰골로 지방 곳곳까지 번져나가 정치 망국론까지 대두될 것이 뻔하다.
더구나 내외여건은 금년 우리 경제에 엄청난 시련을 예고하고 있는 마당에 4조 내지 5조원의 선거자금이 풀리고 무책임한 선거공약이 각 지방단위의 배타적 이기주의를 한껏 부풀려 놓는다면 사회풍토는 물론이고 우리 경제는 재기불능의 위기에 빠져들 것이 너무나 자명한 것이다.
이와 같은 암울한 전망을 예방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국민들에게 있다. 때가 되면 투표만 하는 소극적 참여민주주의의 안이한 태도를 벗어 던지고 적극적 참여에 나서야 된다.
선거운동 초기부터 나돌고 있는 후보자 공천을 둘러싼 금품거래설,선거기간이 시작되기도 전에 공공연히 실시되고 있는 불법선거운동,그리고 본격적인 선거기간이 오면 모습을 드러낼 것이 뻔한 향응·돈봉투의 난무 등을 조직된 시민운동으로 감시·고발해서 이를 원천봉쇄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 사회는 지금 잘하면 새로운 도약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와 잘못하면 지금까지 이뤄 놓은 성과를 송두리째 잃어 버릴 수도 있는 위기의 갈림길에 서있다. 이 기로에 서서 국민 각자는 정부나 정치,또는 남만 탓할 것이 아니라 각자가 개혁시대를 여는 주역으로서 자기가 할 일을 절실히 인식하고 행동해야 할 것이다.
금년은 우리 정치에서 거대한 분수령이 될만한 정치재편작업이 예상되는 해다. 지방의회선거를 발판으로 하여 정치권은 여러가지 변수를 안고 심하게 요동을 칠 것이다.
지자제 선거결과에 따라 예상되는 지각변동은 기성정치인에 도전하는 세대교체 움직임,또 이와 병행해서 나타나는 대권을 향한 정치2세대의 발돋움 등일 것이다.
지자제선거의 결과와 세대교체론의 향방에 따라선 다시 내각제 개헌론이 제기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일부 정파는 이같은 맥락에서 지자제선거 전략을 짜고 있기도 해서 지자제선거의 결과는 차기대권을 노리는 각 정파와 지도자들에게 각별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대권경쟁이 치열해지면 해질수록 14대 국회의원 후보공천권을 둘러싼 여권내 힘겨룸이 금년 가을께 절정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시 말해 지자제선거는 우리 정치가 처해 있는 사정으로 봐서 단순한 지방자치제 확립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개혁 과도기가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과거로부터의 고질들을 한꺼번에 드러내 놓는 계기가 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중요한 의미를 가진 정치행사를 오늘날 정치를 이 꼴로 만든 주역들에게만 맡겨둔다면 국민들은 그 후에 올 정치판에 대해 불평할 자격조차 없게 된다.
북방정책은 소련과의 수교,중국과의 관계개선 등으로 마무리 단계에 와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이 새로운 개척지는 압박이 가중되고 있는 구미시장에서 우리 경제가 숨통을 틀 새로운 활로를 약속하고 있다.
우리 경제는 지금까지 고도성장을 가능케 해준 내외여건들이 질적 변화를 가져옴에 따라 새로운 기술 개발과 경영상의 발상전환 없이는 더이상 성장하기 어려운 위기를 맞고 있다.
경제성장이라는 큰 목표를 위해 자제되어온 개인적·집단적 이익은 더 이상 희생을 거부하며 곳곳에서 분출되고 있다. 권위주의로부터의 해방은 또 공동체 사회가 필수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최소한의 도덕성과 질서의식까지 부인해 버리고 있고 그런 현상이 전체사회에는 기강해이,과소비,향락 지향성의 병폐로 드러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정치가 바로 잡아질때 사회의 새로운 저력으로 결집될 수 있는 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며 우리가 새로운 도약을 하기 위해서는 꼭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그렇게 유도해야 할 역할이 정치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올해의 가장 큰 정치행사인 지자제선거와 그 결과가 몰고올 정치 재편성 작업은 직업정치인에게만 맡겨둘 과제가 아니라 온 국민의 사활이 걸린 대사인 것이다.
정치적 허무주의에서 떨쳐 일어나 정치를 새롭게 하는 일에 모든 국민들이 참여하는 해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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