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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투세와 코리아 디스카운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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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안효성 기자 중앙일보 기자
안효성 증권부 기자

안효성 증권부 기자

세금이 늘어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더군다나 그동안 세금 한 푼 내지 않았고 원금 손실 위험을 감수해가며 얻어낸 소득이라면 조세 저항은 더 극심할 수밖에 없다. 급기야 납세자들의 극렬한 반발에 세수 부족을 호소하는 정부가 먼저 야권에 폐지를 호소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시행 7개월을 앞둔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이야기다.

금투세는 국내 주식 등으로 거둔 1년간 거둔 이익에서 손실을 뺀 순익 중 5000만원 초과액에 대해 최고 27.5%(지방소득세 포함)의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채권, 해외 주식은 순익이 250만원만 넘어가도 세금을 내야 한다. 그동안 국내 주식과 채권의 양도차익에는 세금이 부과되지 않았던 만큼,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일이 투자자에게 벌어지게 된다.

금투세가 도입되면 증시가 급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2일 하나은행 딜링룸에 코스피 지수가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금투세가 도입되면 증시가 급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2일 하나은행 딜링룸에 코스피 지수가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원칙을 부정할 이들은 많지 않다. 근로소득은 물론 예금 이자에도 세금을 매기는 데 주식 투자 이익이라고 딱히 예외를 둘 이유도 없다. 미국 등 주요국들도 주식, 채권에 양도소득세를 매기는 만큼 글로벌 스탠다드에도 어긋나지 않는다. 정부가 주장하는 금투세 폐지가 답이 아닌 이유다.

문제는 한국 주식 시장이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운영되고 있는지 여부다. 낮은 주주환원, 쪼개기 상장 등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소가 횡행하고 있다. 미국 증시는 지금도 250만원이 넘는 수익을 내면 22%의 세금을 내지만 미국 증시에 투자하는 한국 투자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기업은 꾸준히 성장하고, 그 성장의 과실을 주주와 나눌 것이라는 믿음의 결과다.

금투세 도입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장기간 우상향한 미국 주식 시장 등과 비교했을 때 떨어지는 한국 주식 시장의 매력 때문이다. 한 자산운용사의 국내주식운용 책임자는 “가뜩이나 미국보다 열위인 한국 시장에서 세제라는 매력마저 떼어버리면 남는 게 뭐냐”며 “미국으로 머니무브가 가속화돼 한국 주식시장이 큰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금투세에 대한 투자자들의 반감은 세금 자체가 아닌 한국 경제와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 부족이 원인일 수 있다. “미국 등 다른 선진국 시장과 같은 수준의 세금을 부과하려면 주주에 대한 이사회의 의무 등 선진국 수준의 일반주주 보호 법제가 먼저 갖춰져야 하는 것이 순서”(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금투세가 내년부터 시행되든, 정치권이 유예라는 절충점을 찾든 한국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믿음을 되살릴 만한 상법 개정 등의 실질적인 조치를 고민해줬으면 좋겠다. 배당소득에 대한 분리과세나 장기투자자에 대한 세금 인하 등 보완책 마련은 기본이다. 한국 투자자들이 기본 공제액(5000만원)이 훨씬 많은 한국 증시에 더 큰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