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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통 넘어 무통·부통, 몽플뢰르가 답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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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전수진 기자 중앙일보 팀장
전수진 투데이·피플 팀장

전수진 투데이·피플 팀장

소통은 어느새 사치가 됐다. 대한민국은 불통 지옥이다. 욕설로 가득한 서울 광화문의 플래카드부터 상암동 언론사 앞 근조 화환까지,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울부짖음의 데시벨은 마음마저 울적하게 한다. 일상도 그러하다. 거리에서도 이어폰을 꽂는다. 전화 너머 또는 모니터 위의 존재엔 미소 지으면서도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은 투명인간 취급하는 게 당연해졌다. 어찌 보면 대한민국은 불통을 넘어 소통이 없는 무통(無通), 혹은 소통을 거부하는 부통(否通) 사회로 진화 중인 게 아닐까.

인종차별부터 빈부 격차까지, 다양한 사회 갈등을 ‘몽플뢰르 회의’로 풀어낸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동상. 뒤로 보이는 건 남아공 국기다. [로이터=연합뉴스]

인종차별부터 빈부 격차까지, 다양한 사회 갈등을 ‘몽플뢰르 회의’로 풀어낸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동상. 뒤로 보이는 건 남아공 국기다. [로이터=연합뉴스]

불통 천국에선 나이부터 성별, 직업 등등 상상 가능한 모든 종류의 갈등이 뾰족하게 서로를 찌른다. 다른 건 틀린 것으로 정의하고, 적화(敵化)하는 사회. 적화(赤化) 통일만 있는 줄 알았더니, 21세기는 적화(敵化) 사회다. 생태학자 최재천 교수가 최근 들고나온 화두, ‘숙론(熟論)’ 덕에 알게 된 말이다. 그는 누가 옳을지를 두고 싸우는 토론이 아닌, 무엇이 옳은지를 두고 소통하는 게 숙론이라고 했다.

소통도 안 되는데 숙론이 가능할까. 최 교수는 지난 7일 기자 간담회에서 “불가능할 것 같다고 해서 불가능한 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진행 중재자’라는 생소한 생업을 가진 애덤 카헤인, 그리고 그가 이끈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몽플뢰르 회의 얘기를 꺼냈다. 적화(enemyfying)라는 말도 카헤인의 신조어다.

몽플뢰르 회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갈등을 봉합하며 국민 합의를 끌어냈다. 1994년, 넬슨 만델라 당선 당시 남아공은 2024년 한국만큼이나 갈기갈기 찢겨 있었다. 당시 정부가 몽플뢰르 회의를 소집했고, 카헤인을 초청해 숙론을 이끌었다. 최 교수는 “남아공도 30년 전에 한 일을 한국이 지금 못 하리라는 법은 없다”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숙론이 가장 필요한 이슈로 저출생을 꼽았다. 저출생의 핵심은 돈이 아니다. “옜다, 1억원” 식의 정책이 없어서 출산 파업이 생긴 게 아니다. 출산 파업 세대는 이미 소통의 스위치를 껐다. 인간 사회를 인간적이게 하는 기본인 ‘소통 의지’를 상실한 이들에게 사회 존속은 의미가 없다. 아이를 낳고 싶은 사회, 또 다른 자신을 남기고 싶은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1억원 줄 테니 아이 낳으라는 말은 이들에게 모욕이다.

지금, 애덤 카헤인 같은 이가 ‘서울 회의’를 주재한다면 어떨까. 출산 지원금 계산기를 두드리는 대신, 이들에게 소통의 스위치를 다시 켜주고 마이크를 쥐여주지 않을까. 100년 후 대한민국이 존재하려면 지금, 서로의 불통의 벽을 허물고 입 대신 귀를 열고 숙론을 배워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