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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정상화는 꿈이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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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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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총장은 대검찰청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고, 검찰 사무를 총괄하며 검찰청의 공무원을 지휘·감독한다.’ 검찰청법 12조 2항이다. 검찰총장이 최종 수사 책임자라는 뜻이다. 대통령도, 장관도 직접 검찰 수사에 관여하지 못하게 돼 있다. 유일한 예외가 법무부 장관의 수사 지휘권 발동을 통한 관여인데, 한국 역사에서 다섯 차례(그중 네 번이 문재인 정부 시절)만 있었다.

그러나 법과 현실은 달랐다. 검찰총장이 수사 결정권자가 아니었던 때가 많았다. 검찰이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기관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송광수 전 검찰총장은 자신을 임명한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검찰총장이 높다 해도 대통령 밑에 있다. 검찰총장은 대통령의 통치 철학에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고 훗날 밝혔다(2009년 ‘신동아’ 인터뷰). 수긍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자 이 말을 한 차례 더 했다고 그는 회고했다. 법을 공부해 변호사가 됐고, 민주화 운동을 했던 노 전 대통령도 검찰총장을 수사 사무의 최종 책임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 탄생에
검찰 제자리 찾기 기대했으나
상상 초월 갈등으로 국민 실망

고분고분하지 않은 검찰총장에 대한 정권의 통제 수단은 크게 세 가지였다. 인사권, 인적 네트워크를 통한 압박, 위에서 말한 법무부 장관의 지휘권 발동. 인사권은 검찰총장 또는 그의 주변 간부를 옥죄는 수단이었다. 법으로 검찰총장 임기(2년)가 보장되지만 ‘대통령 불신임’으로 자리에서 밀려난 사람이 여럿이고, 검찰총장 힘 빼는 ‘물갈이’ 인사도 왕왕 있었다. 인적 압박의 핵심에는 민정수석이 있었는데, 그들은 대개 검찰 조직의 선배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 세 가지를 다 겪었다. 총장직 사퇴에 대한 노골적인 압박이 계속됐고, 측근들이 좌천 인사를 당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검찰 출신 민정수석(신현수 변호사) 임명으로 분위기를 다잡으려고 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수사, 청와대 인사들이 연루된 수사로 인한 정권과 검찰의 갈등 때문이었다. 장관 지휘권 발동에도 제자리에서 버티는 검찰총장을 징계 카드로 옭아매며 직무집행을 막기도 했다.

다수의 국민이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목적과 방법이 옳지 않은 권력의 검찰 통제에 순응하지 않는 검찰총장을 응원했다. 그의 저항이 정의롭다고 믿었다. 그 결과가 윤석열 정부의 탄생이다.

“오로지 증거와 법리에 따라서만 신속하고 엄정하게 수사하고 처분할 것이다.” 지난 7일 이원석 검찰총장이 말했다. 김건희 여사에 대한 몰래카메라 녹화와 가방 수수 건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13일 검찰 고위 간부 인사가 발표됐다. 김 여사 관련 수사를 맡은 서울중앙지검 1·4차장, 서울중앙지검장이 바뀐다. 검찰총장 참모인 대검 부장(검사장) 8명 중 6명이 교체된다. 지난 7일에는 윤 대통령이 없앴던 민정수석 자리가 부활했다. 대통령은 인사 업무 경험이 많은 전직 기획통 검사를 그곳에 앉혔다. 인사 발표 때 강원도에 있었던 이원석 총장은 1박2일 일정 중 뒷날의 계획을 접고 상경했다. 법무부는 ‘공백 해소와 조직 쇄신’을 인사의 배경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을 오비이락(烏飛梨落)으로 보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윤 대통령 당선에는 적어도 유권자 48.56%의 국가 정상화 희망이 담겨 있다. 검찰 제자리 찾기가 그중 하나다. 대통령이 권력의 검찰 장악이 빚는 폐단을 그 누구보다 잘 아니 이것만큼은 잘 되리라고 믿었다. 검찰의 힘이 너무 세질까 봐 걱정은 했으나 권력과 검찰총장의 충돌 재연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검찰이 권력의 눈치를 살피면 국민은 대통령이 말하는 ‘공정과 상식’을 믿지 못한다. 정치의 위력을 깨달은 검사들은 방향을 미리 정한 선택적 수사, 정치적 국면 전환용 과잉 수사에 욕심을 낸다. 빈번히 봐 온 일이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의 집권 5년이 검찰이 바로 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실현 가능성이 극히 낮아졌다. 나라가 도무지 앞으로 나아가질 않는다. 정권, 검찰, 국민 모두에게 불행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