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TSMC에 러브콜 소문…삼성과 10년 밀월 결국 끝난다 [한국 빠진 첨단기술지도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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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미국 캘리포니아 주 마운틴뷰 구글 본사에 위치한 구글 스토어. 픽셀 스마트폰 등 구글의 하드웨어 생태계를 전시하고 홍보하는 역할을 한다. 마운틴뷰=이희권 기자

미국 캘리포니아 주 마운틴뷰 구글 본사에 위치한 구글 스토어. 픽셀 스마트폰 등 구글의 하드웨어 생태계를 전시하고 홍보하는 역할을 한다. 마운틴뷰=이희권 기자

실시간 번역과 ‘서클 투 서치(화면 터치로 바로 검색)’ 같은 최신 AI 기능이 담긴, 일본에서 불티나게 팔린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은? 삼성전자 갤럭시S24가 아니라, 구글의 픽셀8이다. 구글은 AI 기능은 보태고 가격은 내린 보급형 모델 픽셀8a(499달러, 약 67만원)을 14일 한국 외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하기 시작한다.

‘삼성의 하드웨어(HW)와 구글의 소프트웨어(SW)’라는 모바일 시대의 신사 협정이 끝나간다. 양사는 지난 2014년 ‘향후 10년간 모바일 특허 공유’ 협약을 맺고 ‘반(反) 애플’ 대오를 벌여 왔다. 그러나 ‘칩, HW, SW’를 결합해 저전력·고성능 서비스를 구현해야 하는 AI 시대가 되자 파트너십에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구글은 새로운 파트너 대만 기업들과 손잡고 픽셀폰을 강화했다. 일본에선 이미 갤럭시 판매량을 제쳤다. 삼성은 미국에서 AI 특허를 강화하며 각자도생에 나섰다.

구글, HW+SW 조직개편

지난달 구글은 기존 HW와 SW 조직을 ‘플랫폼과 디바이스 팀’으로 통합했다. 픽셀폰 담당 임원이 안드로이드·크롬 같은 운영체제(OS)까지 총괄한다. 순다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컴퓨팅을 발전시키려면 HW, SW, AI의 교차점에서 수행해야 한다”라고 이유를 밝혔다. 삼성전자와 같은 제조 파트너와 역할을 나누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새 통합 조직의 릭 오스테로 수석 부사장은 지난달 크리스티아노 아몬 퀄컴 CEO와 노태문 삼성 모바일경험(MX) 담당 사장 등을 직접 만나 취지를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마운틴뷰 구글 본사에 위치한 구글 스토어에 전시된 픽셀 폴드폰. 구글은 2023년 5월 폴더블 스마트폰을 공개했다. 삼성전자 갤럭시가 첫 폴더블 스마트폰을 내놓은지 4년 만이다. 마운틴뷰=이희권 기자

미국 캘리포니아 주 마운틴뷰 구글 본사에 위치한 구글 스토어에 전시된 픽셀 폴드폰. 구글은 2023년 5월 폴더블 스마트폰을 공개했다. 삼성전자 갤럭시가 첫 폴더블 스마트폰을 내놓은지 4년 만이다. 마운틴뷰=이희권 기자

삼성만 남은 ‘안드로이드 진영’

구글의 조직 개편 배경에는 안드로이드 점유율 하락이 있다. 지난 10년 사이 한국 팬택·LG전자와 일본 교세라·발뮤다 등이 줄줄이 스마트폰 사업에서 철수하면서 안드로이드 진영에는 삼성 외에 샤오미 같은 중국 제조사만 남았다. 미국에서는 애플 iOS(64%)와 안드로이드(36%) 점유율 격차가 갈수록 벌어진다.

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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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중국 화웨이의 독립 OS ‘하모니’는 세를 빠르게 키웠다. 화웨이는 미국의 기술 규제 이후 2021년 자체 OS를 만들었고, 안드로이드에서 완전히 기술 독립한 ‘하모니 넥스트’도 연내 내놓는다. 지난해 말 하모니는 안드로이드(74%)‧iOS(23%)에 이어 세계 모바일 OS 점유율 3위(4%)에 올랐다. 중국 내에선 하모니 점유율(16%)이 연내 iOS를 제칠 거란 전망도 나온다. 알리페이(알리바바의 간편결제)와 맥도널드 등 앱 4000개가 하모니 생태계에 등록됐고, 화웨이는 이를 50만 개까지 키우려 한다.

픽셀 키우는 구글, TSMC 손잡을 수도

양사의 ‘신사협정’에도 불구하고 해외 시장에서 삼성 갤럭시와 구글 픽셀폰의 시장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IDC에 따르면 픽셀폰의 지난해 일본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은 10.7%로 삼성(6.3%)을 제치고 3위에 올랐다. 삼성전자가 일본 도쿄에서 운영 중인 플래그십 스토어 '하라주쿠 갤럭시'. 도쿄=이희권 기자

양사의 ‘신사협정’에도 불구하고 해외 시장에서 삼성 갤럭시와 구글 픽셀폰의 시장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IDC에 따르면 픽셀폰의 지난해 일본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은 10.7%로 삼성(6.3%)을 제치고 3위에 올랐다. 삼성전자가 일본 도쿄에서 운영 중인 플래그십 스토어 '하라주쿠 갤럭시'. 도쿄=이희권 기자

애플과 화웨이가 각각 북미·중국 시장을 장악하니, 구글은 삼성과 경쟁도 불사하며 자사 픽셀폰을 키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IDC에 따르면 픽셀폰의 지난해 일본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은 10.7%로 삼성(6.3%)을 제치고 3위에 올랐다. 미국에서는 애플·삼성·모토로라에 이은 4위다. 2017년 구글이 HTC 스마트폰 사업부를 인수할 때만 해도 픽셀폰은 레퍼런스 기기(제조 기준 모델)였지만, 최근 작심하고 판매에 나선 결과다. 구글은 지난 2021년부터 미국에 오프라인 매장 ‘구글 스토어’ 4개를 열어 픽셀 스마트폰·워치를 홍보하고 있다.

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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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은 픽셀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모바일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인 텐서의 제조 파트너도 삼성 파운드리(위탁생산)에서 TSMC로 갈아탈 가능성이 있다. 2025년 나올 픽셀10 시리즈부터 구글이 AP를 대만 TSMC 3나노미터(㎚·1㎚=10억분의 1m) 공정에서 생산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구글은 대만에 하드웨어 연구개발(R&D) 센터를 대대적으로 확장하고 현지 시스템 반도체 엔지니어를 채용하고 있는데, TSMC와 협력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 AI에서 자력갱생

미국 캘리포니아 주 마운틴뷰 구글 본사에 위치한 구글 스토어에 전시된 픽셀 스마트폰과 AI 챗봇 바드(현 제미나이). 구글은 자체 개발한 AI 모델 제미나이를 앞세워 안드로이드 생태계 장악은 물론 애플 iOS에까지 자사 AI 모델 탑재를 노리고 있다. 마운틴뷰=이희권 기자

미국 캘리포니아 주 마운틴뷰 구글 본사에 위치한 구글 스토어에 전시된 픽셀 스마트폰과 AI 챗봇 바드(현 제미나이). 구글은 자체 개발한 AI 모델 제미나이를 앞세워 안드로이드 생태계 장악은 물론 애플 iOS에까지 자사 AI 모델 탑재를 노리고 있다. 마운틴뷰=이희권 기자

삼성은 구글과 협정한 2014년을 기점으로 SW·콘텐트 개발조직인 미디어솔루션센터(MSC)를 해산하며 기기 개발에 집중했다. 하지만 AI 시대에 구글만 믿을 수 없게 됐다. 삼성은 일부 통·번역 기능을 제외하면 S24 시리즈에 이어 S25 시리즈에서도 구글의 AI인 제미나이에 기대야 하는 처지다. 장기적으로는 구글이 제미나이를 최적 구현할 수 있는 픽셀폰으로 정면 경쟁해올 가능성도 크다.

이에 삼성은 자체 AI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래 R&D 조직인 삼성리서치는 지난 2022년 말부터 모바일경험(MX) 사업부와 밀착해 스마트폰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AI 기술 개발에 매진했고, 그 결과 올해 초 발표된 갤럭시S24에 AI 음성인식 빅스비 일부 기능을 온디바이스 AI(네트워크 연결 없이 기기에서 작동하는 AI)로 적용할 수 있었다.

삼성전자의 음성인식 인공지능(AI) 비서 '빅스비'. 사진 삼성전자

삼성전자의 음성인식 인공지능(AI) 비서 '빅스비'. 사진 삼성전자

지난달 닛케이크로스텍과 AI 특허분석 플랫폼 패튼트필드 분석 결과, 미국 내 AI 관련 특허 출원 건수 기업 순위는 1위 어도비, 2위 구글, 3위 삼성전자 순이었다. 특히 삼성은 최근 5년간(2017년 대비 2022년) 사내 AI 관련 특허 발명가가 196명에서 1142명으로, 5배 이상 급증했다. 구글과 어도비 소속 특허 다수 출원자들이 오픈AI·메타·바이트댄스 등으로 이직한 것과 달리, 삼성은 출원 1~5위 엔지니어 전원이 현직이다. 특히 최근 구글에서 영입한 우동혁 AGI 컴퓨팅랩 부사장은 구글 내 AI 관련 특허 보유 1위(2017년 기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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