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노상속 깨야 富가 젊어진다" 일본의 해법은 손주 증여세 감면 [부의 고령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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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도 베이비부머 세대가 은퇴를 하면서 자산 이전 논의가 본격 진행되고 있다. 한국보다 먼저 고령화를 겪은 일본은 이미 20여년 전에 노노상속이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일본의 80세 이상 피상속인 비중은 1989년 38.9%에서 1998년 46.5%로 오르더니, 2018년에는 71.1%까지 올라갔다. 일본의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의 원인이 노노상속에 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돈이 경제 활동이 왕성한 세대로 넘어가지 않다 보니, 경제에 활력이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이에 일본은 높은 상속세율은 유지한 채 증여세 감면을 통해 부의 빠른 이전을 유도하는 식으로 해법을 찾았다. 대표적으로 일본 정부는 지난 2013년에 60세 이상 부모가 40대 이하 자녀에게 물려 줄 때, 손주 교육비는 1500만엔(약 1억3000만원), 결혼ㆍ육아 비용은 1000만엔(8800만원)까지 증여세를 면제해 주는 제도를 마련했다. 이런 제도는 원래 지난해 3월 종료 예정이었지만, 최근 3년 더 연장했다.

사전 증여를 촉진하는 제도도 확대했다. 일본은 원래 1년에 110만엔(970만원)까지 증여세를 면제해 준다. 하지만 증여 시점이 부모가 사망한 날로부터 3년 이내면 나중에 상속세를 추가 부과한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절세하려면 가급적 빠른 시기에 증여해야 유리하다. 일본 정부는 상속세 부과 대상이 되는 증여 시점을 사망일로부터 3년에서 7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일본의 상속세는 최고세율이 55%에 달해, 이 제도가 추진되면 더 빠른 증여를 촉진할 수 있다.

미국은 트럼프 정부의 감세 정책에 따라 2018년 1월부터 상속ㆍ증여세에 대한 과감한 통합세액공제를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증여와 상속을 합한 세금 면제 금액은 이전 100만 달러 수준에서 2022년 기준 1206만(165억원) 달러까지 늘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통합세액공제를 확대한 영향에 오는 2045년까지 약 70조 달러(9경6000조원)의 고령층 자산이 청장년층에 이전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미국은 조부모나 부모가 손주 및 자식에게 교육비 명목으로 돈을 미리 저축하고 이를 나중에 교육비로 쓸 때 그간의 운용 수익에 대해서 세금을 면제해 주는 ‘529 학자금 저축 플랜’이란 제도도 운용 중이다. 이 영향에 자녀 학자금으로 먼저 저축한 자금이 주식 등 자본 시장에 재투자 되는 선순환도 발생한다.

영국은 일반적인 증여세가 없고, 일본처럼 피상속인이 사망하기 전 7년 이내에 증여하면 상속세를 부과해 역시 사전 증여를 유도하고 있다. 독일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각각 40만 유로씩 인적공제를 적용해 총 80만(약 11억원)까지 상속·증여세를 면제한다. 또 스위스와 포르투갈은 증여와 상속세를 폐지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상속·증여세의 세율을 낮추기보다는 소비와 투자를 촉진하는 분야에 한해서 다른 나라처럼 상속·증여세를 일부 감면해 주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이라면서 “비슷한 맥락으로 중소기업 가업 승계에 대해서도 상속·증여세를 낮출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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