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료 사실상 제로…삼성∙미래 ETF 투톱, 0.0001%P차 '피의 혈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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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사진 미래에셋자산운용

사진 미래에셋자산운용

국내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이 고속성장하는 가운데, 점유율 1·2위인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잇달아 수수료(총보수)를 내리며 업체간 출혈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운용은 최근 ‘TIGER 1년은행양도성예금증서액티브(합성)’ ETF의 총보수를 연 0.05%에서 0.0098%로 내렸다. 이는 액티브와 패시브를 통틀어 국내 전체 ETF 중 가장 낮은 총보수로, 삼성자산운용을 겨냥했다는 평가다.

삼성운용은 지난달 ‘KODEX 미국 S&P500TR’ 등 뉴욕 증시를 추종하는 4개 ETF의 총보수를 연 0.05%에서 0.0099%로 낮췄다. S&P500을 추종하는 국내 ETF(레버리지, 인버스 제외) 중 1위인 미래에셋의 TIGER 미국S&P500(순자산 3조2870억원)와의 격차가 좁혀지지 않는 와중에 나온 결정이었다.

중소형사도 총보수 인하 대열에 동참했다. 한화자산운용은 지난달 코스피 200 지수를 추종하는 ‘ARIRANG 200’ 총보수를 연 0.04%에서 0.017%로, 마이다스에셋자산운용은 ‘마이다스 KoreaStock액티브’ 총보수를 연 0.62%에서 0.29%로 내렸다.

‘대형사=고보수’ 공식 깨졌다 

지금까지 대형 운용사의 ETF는 상대적으로 총보수가 높고 중소형사는 낮은 편이었다. 저렴한 총보수는 중소형 운용사의 생존 전략이었다. 일례로 삼성운용이 총보수를 내리기 전까지, S&P500 지수를 추종하는 국내 ETF 중 총보수가 가장 저렴한 건 KB자산운용의 ‘KBSTAR 미국S&P500’, ‘KBSTAR 미국S&P500(H)’, 키움투자자산운용의 ‘KOSEF 미국S&P500’ (총보수 0.021%)이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공식이 깨진 건 국내 ETF 점유율 경쟁이 격화하면서부터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9일 기준, 순자산총액 기준 국내 ETF 시장 1위는 점유율 39.1%인 삼성운용(55조5901억원)으로, 수십 년째 1위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2위인 미래에셋과의 격차는 1년 전 4%포인트에서 2.5%포인트로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반면 4위인 한국투자신탁운용(4.5% → 6%), 5위인 한화자산운용(2.5% → 2.8%), 7위인 엔에이치아문디자산운용(1.6% →2.2%)는 조금씩 몸집을 키워왔다.

소비자 입장에서 총보수 인하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경쟁 격화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당장 대형사들이 총보수를 내리면서 중소형사 ETF 투자자들이 이탈할 수 있다. 실제 미래에셋 TIGER 미국S&P500 점유율은 올해 초 43.2%에서 지난 9일 45.9%로, 삼성운용의 KODEX 미국S&P500TR은 13.6%에서 15%로 늘었다. 반면 한화운용의 ARIRANG 미국S&P500(H) 점유율은 1.2%에서 0.9%로 줄었고, 신한운용의 SOL 미국S&P500은 1.1%로 제자리걸음이다.

“출혈경쟁, 산업 망친다”

지난 10일 서울 중구 KEB하나은행에 코스피 지수와 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지난 10일 서울 중구 KEB하나은행에 코스피 지수와 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수수료 인하 치킨게임이 시장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란 지적도 나온다. 연구개발을 통해 혁신 상품을 내놓기보단, ‘ETF 베끼기’와 수수료 인하 및 홍보·마케팅 등 출혈경쟁만 부추겨 산업의 본질적인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내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운용사의 역할은 새로운 산업을 발굴하고 상품으로 만들어 고객 만족도와 수익률을 제고하는 것”이라며 “운용사의 본질을 잊어선 안 된다. 금융투자업 종사자는 광고업자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다른 중소형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안 팔리면 가격을 내려 파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출혈경쟁은) 산업을 망치는 것”이라며 “단기간에 점유율을 늘리기 위해 수수료 내리기에만 집중하는 건 상도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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