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MZ '디지털 디즈니'에 미쳤다…고퀄 짝퉁 성지 탄생 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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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선전시 최대 전자상가 단지인 화창베이

중국 선전시 최대 전자상가 단지인 화창베이

중국 선전시 최대 전자상가 단지인 화창베이(華强北)가 이번 중국 노동절 연휴 기간(5월 1일~5일)에 핫플레이스로 등극했다. 중국의 많은 젊은이가 화창베이에서 저렴한 전자 제품을 쓸어왔다고 한다.

화창베이에서 물건 쓸어 담는 젊은이, 이들은 디지털 디즈니에 미쳤다. 

젊은이들은 화창베이에서 소비주의를 제패한다. 

애플의 다음 목표는 선전 화창베이 점령 

화창베이와 관련된 중국 신문의 헤드라인이다. 애플까지 언급되는 이유는 올해 3월 말 화창베이가 자체 개발한 블루투스 이어폰 때문이다. 모델명은 ‘화창베이 팟 프로(Huaqiangbei Pods Pro)’로 이어폰 충전 케이스에 터치스크린을 장착해 볼륨, 음악 재생, 음향 효과 등을 제어할 수 있도록 제작됐다.

화창베이 팟 프로(Huaqiangbei Pods Pro)

공교롭게도 이 디자인은 2025년까지 출시 계획이 없다고 밝힌 애플의 에어팟 프로3과 매우 유사하다. 화창베이가 애플 제품을 모방해 먼저 출시한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짝퉁”
“깨지기 쉬움”

화창베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몇 년 전만 해도 이 정도에 그쳤다. 그러나 오늘날 화창베이는 ‘아시아 최대 전자제품 유통센터’이자 베이징 중관춘과 더불어 ‘중국 전자제품의 실리콘 밸리’가 됐다. 모방과 변형 등 시행착오를 다 겪고 지금은 독자적인 중국 브랜드가 된 화창베이. 이제 짝퉁만 찍어내던 이전의 화창베이가 아니다. ‘화창베이’ 이름을 달고 나오는 제품은 모두 제대로 된 중국 칩을 사용해 품질보증과 A/S는 물론 다른 회사가 개발하지 않은 최첨단 기술까지 탑재했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화창베이 팟 프로’도 여기 소속이다.

화창베이는 어떻게 신분 상승에 성공해 오늘날 중국 전자제품의 1번지가 됐나? 

이를 알기 위해서는 화창베이가 지닌 강력한 세 가지 유전자를 이해해야 한다.

첫 번째는 엔지니어 유전자다.

혹시 같은 전자상가 단지인 한 중관춘(中關村·중국 베이징에 있는 중국 IT기업 단지)과 화창베이의 차이점을 아는가?

가장 큰 차이점은 ‘출신’이다. 중관춘의 초기 대기업이 중국 정부 소속 장관급(正部级) 국가기관인 중국과학원의 과학연구원(硏究員)에 의해 설립됐다는 것이다. 레노버(Lenovo)의 류촨즈(柳傳誌), 쓰퉁그룹의 창업자 완룬난(萬潤南), 진먼차오 과학기술발전센터의 설립자 중 한 명이자 중관춘시 과학기술의 첫 번째 인물로 알려진 천춘톈(陳春田)은 모두 중국과학원에서 태어나 중관춘에서 일한 연구원이다. 그러나 화창베이는 다르다. 화창베이에는 중국의 전자 업계를 주관하는 전자공업부 산하 기업과 과학 연구기관이 설립한 기업이 대다수를 이룬다. 이들은 R&D 외에도 외국 기술 흡수와 첨단 기술 현지화 및 관련 제조 생산을 특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런 차이는 언제 어떻게 생긴 걸까?

모든 것은 1979년에 시작됐다. 당시 중국은 군수 분야에서 상업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군사 목적으로만 사용되던 첨단 기술을 민간 기술로 전환할 것을 장려했다. 이때 동방홍 기계 공장, 국영 홍권 전기 공장, 국영 선봉 기계공장까지 중국 광둥성에 있던 3개의 방산업체가 선전 푸톈(福田)으로 가서 화창 전자 공업 회사(Huaqiang Electronic Industry Company)를 공동 설립했다. 이때 생긴 화창 회사로 인해 그 옆 도로는 ‘화창루(路)’로 명명됐고 남북 방향으로 나 있는 ‘화창루’ 중간에 동서 방향으로 난 도로의 북쪽 구간을 화창베이(北)라고 지칭하게 됐다. 화창베이는 이렇게 강력한 엔지니어 유전자를 갖고 탄생했다. 이후 전자공업부는 선전에 대규모 전자제품 수출 기지 설립 계획을 세웠고 선전은 홍콩과 함께 서방 국가로부터 전자공업 생산능력과 많은 자원을 공급받게 됐다.

화창베이는 애초에 대기업으로 구성된 산업 클러스터로, 주로 기업과 거래(B2B)했다. 그런데 어쩌다가 전자제품 매장의 메카로 떠올랐을까?

답은 화창베이의 두 번째 유전자와 관련이 있다. 시장 유전자다.

1984년 중국에는 약 3000개의 전자 회사가 있었다. 하지만 전자 공업의 총생산액은 274억 위안(약 5조 1709억 원)으로 당시 히타치 제작소(일본 최대 전자기기업체)의 절반에 불과했다. 기업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제각각 분산되어 있어 힘을 모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다음 해인 1985년, 전(前) 전자공업부 총판공실 주임인 마푸위안이 선전의 117개 기업을 동원해 선전전자공사를 설립했다.

하지만 당시 구매 절차가 복잡해 부품 공급이 따라가지 못했고 이에 마푸위안은 개방형 전자부품 시장 구축에 앞장섰다. 재래시장처럼 수중에 물건만 있으면 노점을 차릴 수 있게 한 것이다. 그 결과 1988년 선전 최초이자 중국 최초 전자 부품 시장인 싸이거 전자시장(赛格电子市场)이 등장했다. 중국 각지에서 약 200개의 제조업체가 입주하면서 화창베이는 거대 시장 시대를 열었다.

화창베이 싸이거 전자시장

화창베이 싸이거 전자시장

점점 더 많은 영세 상인들이 부푼 기대를 안고 화창베이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한창때는 등록하러 온 상인 줄이 500m나 됐다고 한다.

여기까지 화창베이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좁은 의미의 화창베이는 디지털 디즈니랜드로 알려진 이 지역의 전자시장을 가리킨다. 넓은 의미의 화창베이는 군사 유전자를 가진 많은 대기업까지 포함한다.

화창베이의 마지막 유전자는 짝퉁 유전자다. 이 짝퉁 유전자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기회와 우연이 겹쳤다.

2003년 미디어 텍(MediaTek·대만의 반도체 회사)이 대규모로 시장에 출시됐다. 이곳에서 MP3, 카메라, 터치스크린 관련 처리 기능을 휴대폰 칩에 통합하는 턴키(Turnkey)라는 이름의 저비용 칩 솔루션을 내놓았는데 이 솔루션을 사용하면 케이스와 배터리만 추가하면 휴대폰을 만들 수 있었다. 휴대폰 조립이 갑자기 쉬워진 것이다. 하룻밤 사이에 화창베이의 거의 모든 업체가 휴대폰 시장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한때 화창베이 사장님들의 고민은 기술이 아니라 새 휴대폰 이름을 어떻게 지을 것인가였다고 한다.

MADE IN SZ

여기서 SZ는 원래 선전(ShenZhen)의 줄임말이었다. 그런데 점차 짝퉁, 위조품의 중국어 단어인 산자이(山寨·ShanZhai)의 앞글자를 따 SZ가 됐다. 당시 화창베이는 한 해 1억 5000만 대의 휴대폰을 판매할 정도로 세계 최대 휴대폰 출하량을 자랑했다. 이런 상황은 2010년까지 지속되다가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피처폰과 함께 시장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화창베이의 전자부품 사업은 여전히 지속 중이다. 합리적인 가격의 전자제품이 가득해 초저가 소비를 지향하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더욱 인기라는 화창베이.

강력한 엔지니어 유전자, 시장 유전자, 기술의 응용력(짝퉁 유전자) 그리고 자유롭고 유연한 시장이 있었기에 화창베이는 중국 전자제품의 1번지가 될 수 있었다.

박지후 차이나랩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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