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25만원 지원금 입법, 헌법 정신마저 흔드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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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신임 원내대표(가운데)가 7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왼쪽은 박성준 원내수석부대표, 오른쪽은 김용민 정책수석부대표.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신임 원내대표(가운데)가 7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왼쪽은 박성준 원내수석부대표, 오른쪽은 김용민 정책수석부대표. 연합뉴스

정부의 예산 편성권 못 박은 헌법과 정면으로 배치  

3조짜리 양곡법도 강행…민주당 ‘제도적 자제’ 필요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총선에서 공약한 전 국민 대상 25만원의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신용사면 등을 거론하며 ‘처분적 법령’을 많이 활용하자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주문에 박찬대 신임 원내대표가 적극 부응하고 나선 결과다. 민생회복지원금을 나눠주려면 13조원의 재원이 필요하고 정부의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불가피하다. 민주당은 추경에 반대하는 정부를 무력화하기 위해 자동적으로 집행력을 갖는 처분적 법률을 활용해 특별조치법을 발의하겠다고 예고했다. 처분적 법률은 행정부의 집행이나 사법부 절차를 거치지 않고 직접 국민의 권리·의무를 발생시키는 법률이다.

처분적 법률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의 공소시효를 정지한 5·18특별법 조항을 비롯해 입법 사례가 적지 않다. 하지만 특정인이나 특정 대상만을 규율하는 과정에서 입법권이 남용되고 평등원칙을 위반할 수 있다. 행정부의 고유 권한인 행정처분을 국회가 행사한다는 점에서 3권 분립에 위배된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공익적 가치가 클 경우에만 처분적 법률을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게 제대로 된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도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이 낸 ‘BBK 특검법’ 위헌 소송에서 “처분적 법률에 따른 차별적 규율이 합리적인 이유로 정당화되는 경우에는 위헌으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25만원 특별조치법은 정도가 지나치다. 이미 여러 번 지적했듯이 정부의 재정 여력이 없고 물가만 불안하게 하며 소비 진작 효과도 크지 않다는 점에서 공익적 가치를 주장하기는 힘들다. 민주당의 25만원 입법은 오히려 정부에 예산 편성권을 부여하고, 정부 동의 없이 국회가 정부 제출 예산을 늘리거나 새 비목(예산 세부 단위) 설치를 금지한 우리 헌법을 정면으로 위반할 소지가 크다.

민주당이 양곡관리법과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농안법) 개정안을 단독 처리하겠다고 나선 것도 걱정스럽다. 양곡법이 개정되면 정부가 초과 생산된 쌀을 의무적으로 매입해 보관하는 데만 연간 3조원 이상 들어간다. 특정 농산물의 최저가격을 보장하는 농안법 개정안은 적용 품목을 정하는 과정에서 사회 갈등만 키울 우려가 있다.

입법은 국회의 권한이지만 경제 입법은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전문가 조언을 충분히 듣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지적했듯이 ‘상호관용’과 ‘제도적 자제’가 위태로운 민주주의를 지키는 가드레일이다. 거대 야당이라고 입법 폭주에 나선 민주당이 지금 이 말을 곱씹어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