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R 안 돼 머뭇…17만t 크루즈 유커, 그래도 전통시장 싹쓸이 [르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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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전 10시 40분 인천 신포국제시장에서 공갈빵을 판매하는 60대 왕내순씨는 “오전 1시간 만에 공갈빵 80묶음 정도 판매했다. 오전 매출이 하루 평균 매출보다 많다”고 말했다. 4000원 바우처에 맞게 공갈빵 묶음을 다시하고, 중국인 관광객을 위해 중국어로 '대만식 공갈빵'이라 적은 종이를 게시했다. 이찬규 기자

7일 오전 10시 40분 인천 신포국제시장에서 공갈빵을 판매하는 60대 왕내순씨는 “오전 1시간 만에 공갈빵 80묶음 정도 판매했다. 오전 매출이 하루 평균 매출보다 많다”고 말했다. 4000원 바우처에 맞게 공갈빵 묶음을 다시하고, 중국인 관광객을 위해 중국어로 '대만식 공갈빵'이라 적은 종이를 게시했다. 이찬규 기자

7일 오전 10시 40분 인천 신포국제시장에서 공갈빵을 판매하는 60대 왕내순씨는 지나가던 야구르트 판매원에게 숫자 ‘4000’이 써 있는 보라색 종이 80여장을 자랑했다. 한국관광공사가 중국 크루즈 관광객 3948명에게 지급한 4000원 신포국제시장 바우처였다. 왕씨는 “오전 1시간 장사했는데 공갈빵 80묶음 정도 판매했다. 오전 매출이 하루 평균 매출보다 많다”며 “오전엔 내가 가장 많이 판 것 같다”고 웃었다.

부모님과 손 잡고 신포시장을 찾을 옌(7)양은 ″쉐쉐″라며 손에 쥐고 있던 바우처로 쑥술방을 샀다. 이찬규 기자

부모님과 손 잡고 신포시장을 찾을 옌(7)양은 ″쉐쉐″라며 손에 쥐고 있던 바우처로 쑥술방을 샀다. 이찬규 기자

이날은 유커(游客·중국 단체 관광객) 3948명이 인천 전통시장에 몰리며 상품을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신포시장 입구에 있는 명물 닭강정부터 시장 끝인 야채 매대에도 사람들이 붐볐다. 부모님과 손 잡고 시장을 찾은 옌(7)양은 쑥술방 냄새에 멈춰 섰다. 이윽고 “쉐쉐(감사합니다)”라며 움켜쥐고 있던 바우처를 시장 상인에게 건냈다.

승객 3948명을 태운 16.9만톤급 크루즈는 이날 오전 6시 30분쯤 인천크루즈항에 기항했고 이날 오후 10시 상하이로 돌아간다. 한국관광공사 관계자는 “코로나19 펜데믹 이후 한국을 찾은 가장 큰 규모의 유커”라고 밝혔다.

중국 상하이에서 출항해 7일 오전 인천항에 도착한 16만9000t급 크루즈. 유커 3948명은 인천과 서울 일대를 관광했다. 연합뉴스

중국 상하이에서 출항해 7일 오전 인천항에 도착한 16만9000t급 크루즈. 유커 3948명은 인천과 서울 일대를 관광했다. 연합뉴스

대형 크루즈 관광 여객선의 기항은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인천시에 중요한 행사다. 2019년 한국관광공사 크루즈 관광객 실태조사에 따르면 관광객 1인은 평균 203.8달러를 기항지에서 소비했다. 쇼핑과 관광비용 등을 포함한 수치다.

인천시와 한국관광공사는 서울 경복궁과 롯데월드 등을 기존 방문 일정에 전통시장 방문을 추가했다. 신포시장이 차이나타운 인근이란 걸 고려한 결과였다. 관광객 소비 증진을 위해 인천시는 버스 92대를, 한국관광공사는 1600만원 상당의 전통시장 바우처를 지원했다.

유커(游客·중국 단체 관광객) 3948명이 7일 크루즈를 타고 인천에 도착했다. 이들은 서울 경복궁 등을 관광하고 인천 신포국제시장을 찾았다. 관광객들은 인천크루즈항에서 인천시 마스코트 기념촬영을 했다. 이찬규 기자

유커(游客·중국 단체 관광객) 3948명이 7일 크루즈를 타고 인천에 도착했다. 이들은 서울 경복궁 등을 관광하고 인천 신포국제시장을 찾았다. 관광객들은 인천크루즈항에서 인천시 마스코트 기념촬영을 했다. 이찬규 기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중단됐던 중국인 단체관광이 지난해 8월 허용되면서 국내 크루즈 관광은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인천의 크루즈 관광객은 올해 1분기(1~3월)에만 9688명으로, 지난해 전체 관광객 6526명보다 많았다.

한국관광공사와 여행업계에 따르면 당분간 중국 크루즈 관광객은 늘어날 전망이다. 크루즈 여행 특성상 예약이 수개월에서 1년 가까이 소요되는데, 원전 오염수 방류 등 지난해 일본의 부정적 이슈로 한국을 택했기 때문이다. 당초 중국발 크루즈 행선지도 일본 오키나와였다. 서영충 한국관광공사 상임이사는 “크루즈 관광은 기항지에 머무는 시간이 짧다. 지역 관광 프로그램을 개발해 체류시간을 늘리겠다”며 “다국적 크루즈 유치에도 힘쓸 예정”이라고 밝혔다.

QR 결제 안되고, 관광객 도착 시간 안 알려 문 닫은 시장

정부와 지자체는 외국인 크루즈 관광객 유치에 힘쓰고 있지만 한계도 있다. 이날 신포시장을 찾은 일부 유커들은 휴대전화를 든 채 매대 앞에서 머뭇거렸다. QR코드 모바일 페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중국인 월평균 소비액 80% 이상이 모바일 페이로 이뤄진다. 중국인 장신(38)씨는 “한국에서도 QR코드 결제가 되는지 알고 환전을 적게 해왔다”며 “기념품 더 사가고 싶지만, 결제할 수 없어 포기했다”고 말했다.

7일 오후 5시 30분이 넘어 3000명에 육박하는 유커들이 인천 신포시장을 찾았다. 오세현씨가 운영하는 전통과자 가게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이찬규 기자

7일 오후 5시 30분이 넘어 3000명에 육박하는 유커들이 인천 신포시장을 찾았다. 오세현씨가 운영하는 전통과자 가게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이찬규 기자

시장 내 QR코드 모바일 페이가 가능한 곳은 한 곳이었다. 전통과자류를 판매하는 오세현(55)씨는 “유커들이 현금을 들고 다니지 않아 5000원인 전통과자 한 봉지를 바우처 금액 4000원으로 낮춰 판매했다”고 말했다.

오후 5시 넘어 유커들이 시장을 찾는다고만 전해 들은 일부 상인은 오전 대목을 놓치기도 했다. 한 상인은 “시장 휴무일이라 오전 10시쯤 늦게 왔는데 중국인들이 몰려 있었다”며 “오전엔 가게 절반만 문을 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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