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은 표 없다 무시하나"…동작 파크골프장에 주민들 화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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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구청이 주민 의견 수렴을 충분히 거치지 않고 근린공원 잔디광장을 파크골프장으로 바꾸기로 결정해 인근 주민들 사이에서 반발이 나오고 있다. 이영근 기자

동작구청이 주민 의견 수렴을 충분히 거치지 않고 근린공원 잔디광장을 파크골프장으로 바꾸기로 결정해 인근 주민들 사이에서 반발이 나오고 있다. 이영근 기자

동작구청이 주거지 인근 근린공원에 파크골프장 조성을 추진해 논란이 되고 있다. 일부 주민들이 “의견 수렴 없이 모두의 잔디광장을 소수만을 위한 공간으로 바꾸려 한다”고 반발하면서다.

파크골프는 86㎝이하 비교적 짧은 나무채 하나로 경기를 할 수 있는 일종의 미니골프다. 접근성이 좋은 하천 고수부지나 공원에서 즐길 수 있어 최근 고령층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29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동작구청은 지난해 12월 대방공원 운동장에 있는 잔디광장 부지에 파크골프장을 짓기로 결정했다. 5000㎡ 면적에 총 9홀 규모다. 예산은 총 5억원(시 3억원·구 2억원)이 편성됐다. 동작구민만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주중 오전·오후 시간대는 파크골프 이용객만 사용할 수 있고, 주중 저녁 시간대와 주말은 개방할 예정이다. 운동장 트랙은 유지된다.

28일 오후 8시쯤 찾은 대방공원에는 가족 단위 주민 20여명이 돗자리를 펴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축구 드리블 연습을 하는 초등학생, 반려동물과 산책을 하는 주민도 눈에 띄었다. 파크골프장 조성 소식을 접한 주민 대다수는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반려견과 산책 중이던 신윤주(31)씨는 “평일 오전·오후에도 매일 잔디광장에 온다”며 “아파트, 초·중·고교, 대학생 기숙사 등 다양한 주민이 드나드는 지금이 좋다”고 말했다.

29일 오전 서울 동작구 대방공원 인근 아파트단지 곳곳에는 파크골프장 건립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게첩돼 있었다. 대방공원은 아파트, 초중고교, 대학생 기숙사 등에 둘러싸인 근린공원이다. 이영근 기자

29일 오전 서울 동작구 대방공원 인근 아파트단지 곳곳에는 파크골프장 건립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게첩돼 있었다. 대방공원은 아파트, 초중고교, 대학생 기숙사 등에 둘러싸인 근린공원이다. 이영근 기자

특히 어린 자녀가 있는 주민의 반발이 컸다. 장인어른과 공원을 찾은 여모(36)씨는 잔디광장이 파크골프장으로 바뀐다는 말을 듣고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근처로 이사를 준비 중인 여씨는 “7세 딸과 잔디광장에서 놀 수 있을 거란 기대에 한창 부풀어 있었는데 물거품이 된 기분”이라고 했다. 두 자녀를 둔 토박이 조모(32)씨도 “막 뛰기 시작한 딸과 잔디광장을 찾는 게 낙인데 황당하다”며 “구청장이 어린이는 표가 없다고 무시하는 처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동작구청 민원 게시판에는 “아이 많이 낳으라면서요.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없애다니요” 등 반대 민원만 400여개가 올라온 상태다.

고령층 주민도 달갑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29일 오전 잔디광장에 앉아 질경이를 다듬던 폐암 환자 오회숙(75)씨는 “2년 전 암 진단을 받고 매일 잔디광장에 와서 또래도 만나고 운동도 하면서 많이 호전됐다”며 “그만큼 소중한 곳인데 없어지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인근 아파트 주민 권영철(66)씨는 “고령층을 위한다고 하지만 골프 좀 친다는 사람들만 위한 공간 아닌가”라며 “펜스도 둘러칠 텐데 시야도 제한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28일 오후 8시쯤 서울 동작구 대방공원 잔디광장에서 초등학생들이 축구 드리블 연습을 하고 있다. 이날 잔디광장에는 가족 단위 주민과 반려인이 주를 이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영근 기자

28일 오후 8시쯤 서울 동작구 대방공원 잔디광장에서 초등학생들이 축구 드리블 연습을 하고 있다. 이날 잔디광장에는 가족 단위 주민과 반려인이 주를 이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영근 기자

주민 여론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고 조성을 강행한다는 반감도 크다. 동작구청에 따르면 이번 결정에 앞서 주민 공청회와 관내 파크골프 수요 조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해 12월 동작구의회 행정재무위원회에서 노성철 더불어민주당 구의원은 “(파크골프) 수요는 얼마나 늘었는지 객관적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예산 전액 삭감을 주장하기도 했다. 인근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장 A씨는 “파크골프장은 통상 한강, 안양천 등 강변에 조성되는데 왜 하필이면 주거지에 지어야 하냐”라고 주장했다.

동작구청 관계자는 “파크골프장이 없어 다른 구로 파크골프를 치러 가는 주민이 많았다”며 “강변에 골프장을 조성할 부지가 별로 없어 대방공원이 선정됐다”고 해명했다. 이어 “23일 도시공원 심의 절차상 필요한 주민설명회를 개최했고, 개방하는 시간대에는 주민들이 이전처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15일 대구 달성군 위천파크골프장에서 개막한 '제1회 대통령기 전국파크골프대회' 모습. 뉴스1

지난달 15일 대구 달성군 위천파크골프장에서 개막한 '제1회 대통령기 전국파크골프대회' 모습. 뉴스1

대한파크골프협회에 따르면 2019년 전국 226곳이었던 파크골프장은 지난달 기준 398곳으로 늘었다. 회원도 2020년 말 4만5478명에서 지난해 12월 기준 14만5300명으로 급증했다. 고령층을 겨냥한 파크골프장이 지자체마다 우후죽순 생기면서 갈등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6월 환경부 조사에 따르면, 국가하천 구역 내 파크골프장 88곳 중 56곳(64%)이 하천점용허가를 받지 않는 등 불법으로 건립된 것으로 나타났다.

주민 반발에 부딪혀 파크골프장 조성이 무산된 사례도 있다. 2022년 8월 서대문구청은 백련근린공원 파크골프장을 지으려다 지난해 6월 계획을 철회했다. 이 문제로 주민감사를 실시한 서울시 옴부즈만위원회는 예산 집행목적이 공원녹지법에 반한다는 이유로 서대문구에 대해 ‘기관경고’ 처분을 내렸다. 옴부즈만위원회는 또 주민설명회, 공청회 등 주민 의견청취 절차를 폭넓게 수렴할 것을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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