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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협 "AI변호사의 무료상담도 안 된다" 로펌 챗봇에 칼 뺐다

중앙일보

입력

인공지능(AI) 법률 챗봇이 일반인에게 무료 법률 상담을 할 경우 변호사법 위반일까. 대한변호사협회(회장 김영훈)가 최근 국내 로펌 최초로 인공지능(AI) 법률 챗봇 ‘AI 대륙아주’를 선보인 법무법인 대륙아주를 내부 징계조사위원회에 회부했다. 변협은 이를 계기로 다른 국내외 AI 법률 서비스들의 현황도 파악 중이다.

AI 대륙아주에 ‘AI 법률 상담의 변호사법 위반 여부’를 질문한 예시 화면. 사진 AI 대륙아주 캡처

AI 대륙아주에 ‘AI 법률 상담의 변호사법 위반 여부’를 질문한 예시 화면. 사진 AI 대륙아주 캡처

‘AI 변호사’ 위법일까…변협, 대륙아주 징계 가닥

변협이 징계 절차에 착수하면서 AI 대륙아주에 제기한 문제점은 크게 세 가지다. 먼저 비변호사(AI)가 변호사 활동을 통해 이익을 창출하면 변호사법 위반이라는 점이다. 특히 AI 답변 하단에 개발 협력사인 네이버의 변호사 광고가 노출되는 점을 문제 삼았다. 대륙아주 소속 변호사만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대륙아주가 네이버 광고를 통해 직·간접적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륙아주는 “AI 대륙아주 이용자로부터 돈을 받지도 않고, 광고 노출로도 이익을 분배받지 않는다”고 맞선다.

두 번째는 ‘무료 법률상담’이라는 홍보문구가 변호사 광고 규정 위반이라는 점이다. 무료라는 표현은 “대형 로펌이 개인 변호사들이 2만~3만원에 하는 가벼운 법률상담 시장을 죽이는 것(김영훈 변협회장)”이란 취지다. 대륙아주는 이에 시연회 당일부터 ‘무료’ 표현을 삭제하고 공식명칭을 ‘법률 Q&A’로 수정했다. 끝으로 변협은 AI 대륙아주가 의뢰인의 개인정보를 동의 없이 학습했을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대륙아주는 “변호사들이 직접 만든 가상의 사례를 학습했다”고 반박 중이다.

이번 갈등은 향후 법조계의 AI 활용 수준을 결정할 표석이 될 가능성이 크다. 변협이 가장 엄중히 보고 있는 부분이 ‘비변호사(AI)와 동업 금지 조항’이기 때문이다. AI가 변호사 고유의 업무 영역을 침범하는지가 본격적인 쟁점이 된 것이다. 대륙아주가 “AI 대륙아주는 인터넷 검색 수준의 기초적인 법률 Q&A를 제공할 뿐 고도의 법률 사무를 보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지난달 20일 AI 대륙아주 출범식에서 이재원 넥서스AI 대표, 이규철 대륙아주 대표변호사, 김유원 네이버클라우드 대표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0일 AI 대륙아주 출범식에서 이재원 넥서스AI 대표, 이규철 대륙아주 대표변호사, 김유원 네이버클라우드 대표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영훈 변협회장 “공공재 우선” vs 리걸테크 “시장 우선”

김영훈 변협회장은 “법률 AI는 무료 공공재로 도입돼야 하고, 민간 활용은 추후 논의할 영역”이라는 입장이다. 김 회장은 29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대법원·법무부·변협이 협업해 AI를 학습시킬 기초적인 데이터베이스를 만든 뒤 판사·검사·변호사 등 전문가에게 우선 접근권을 부여하고, 대국민 서비스는 이후에 법률 제정이나 가이드라인 논의를 통해 어떻게 발전시킬지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사이 AI 리걸테크 시장은 확장기를 맞고 있다. 로앤굿, 인텔리콘 등 ‘선거법 AI’, ‘학교폭력법 AI’ 등을 개발한 국내 스타트업을 포함해 해외 기업들도 한국 진출을 시사한 상태다. 대륙아주처럼 일반 소비자를 위한 서비스는 아니지만, 소속 변호사들의 편리를 위해 자체 AI를 개발 중인 로펌도 늘고 있다. 율촌은 변론 자료를 요청하면 법 조항과 판례 등을 제공하는 AI를, 세종은 의견서·소장 등 법률 문서를 분류하는 AI를 도입했다.

김영훈 대한변호사협회장이 지난 25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제61회 법의 날 기념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뉴스1

김영훈 대한변호사협회장이 지난 25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제61회 법의 날 기념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뉴스1

플랫폼→AI, 외부→내부로…신구(新舊) 직역 갈등 확대

앞서 변협은 AI 이전 ‘플랫폼’ 시절부터 리걸테크 스타트업(로톡)이나 IT 대기업(네이버) 등과도 직역 다툼을 벌여왔다. 로톡과의 갈등은 2015년부터 고소·고발·징계 등이 거듭되다가 지난해 법무부가 변협의 징계 처분을 취소하는 등 로톡 손을 들어주면서 9년 만에 일단락됐다.

네이버와는 1:1 전문가 상담 서비스 ‘네이버 지식iN 엑스퍼트’를 두고 갈등했다. 네이버가 5.5%의 결제수수료(현재 최저 1.65%로 인하)를 받는 행위는 “변호사를 불법 알선한 것과 같다”는 이유였다. 일부 변호사들이 2020년 네이버를 고발하면서 이 사건은 경찰과 검찰 사이에서 4년째 공회전 중이다. 현재 분당경찰서 무혐의→수원지검 성남지청 보완수사 요청→분당경찰서 재차 무혐의→성남지청 보완수사 재요청이라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 경찰이 두 번째 보완수사 중이다.

그러나 신구 갈등을 중재해야 할 정부부처 간에도 견해는 제각각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변호사 시장에 기본적인 권한을 가진 곳은 변협이다 보니 법무부가 선제적으로 나서기엔 어려움이 있다”며 “법무부 산하 변호사제도개선특별위원회의 검토 범위에 AI 서비스를 둘러싼 갈등도 포함시킬지는 아직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반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법률 분야 AI 확산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달 AI 대륙아주 시연회에서도 “정부도 대륙아주의 AI 챗봇 등 민간의 노력과 함께 우리나라 법률시장을 성장시키겠다(엄열 과기부 인공지능정책관)”는 축사를 남긴 바 있다.

익명을 원한 IT 전문 변호사는 “그간 플랫폼에 멈춰있던 갈등 전선이 AI 변호사로도 확장됐다”며 “외부업계의 직역 침범이 아닌 동종업계 내 자발적 혁신도 표적이 됐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고 말했다. 이병준 고려대 리걸테크센터장은 “챗GPT의 부상 이후 법률 AI의 업무 영역이 단순한 정보 제공인지, 일정한 판단이 들어가는 변호사 업무인지가 쟁점이 됐다”며 “AI에 변호사법 위반 소지도 있는 만큼 결국 입법적 해결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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