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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어·재첩 사라진 낙동강 하구에 등장한 ‘복덩이’ 까치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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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면

부산 사하구 하단어촌계 어민들이 까치복 손질법을 배우고 있다. [사진 부산어촌특화지원센터]

부산 사하구 하단어촌계 어민들이 까치복 손질법을 배우고 있다. [사진 부산어촌특화지원센터]

“자망 그물을 띄워 물 흐르는 대로 훑으면 까치복이 가득 들어찹니다.” 지난 26일 김국태(76) 부산 사하구 하단어촌계장이 함박웃음을 띠며 이같이 말했다. 열다섯살 때부터 평생 이곳에서 고기잡이를 했다는 그는 “원래 낚시로도 잡았는데, 2020년부터는 그물로도 잡힐 만큼 (까치복이) 늘었다. 산란기인 매년 5~7월 어획량이 100t은 된다. 올해도 어황이 좋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사하(沙下)라는 지명대로 낙동강 하구에 있는 이 지역 연안엔 강줄기를 따라 흘러온 고운 모래가 쌓인다. 모래톱 위로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이곳 기수 생태계에서는 조선 시대 임금 수라상에 오르던 웅어나 재첩이 많이 잡혔다. 1990년대 초반까지도 이 재첩으로 낸 맑은국을 솥째 머리에 이고 “재첩국 사이소~”라고 외치는 ‘재첩국 아지매’들이 매일 동트기 전 부산 주택가를 구석구석 누볐다.

하지만 1980년대 낙동강 하굿둑이 건설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강 상류로 올라가야 하는 산란기 웅어떼의 물길을 둑이 가로막으면서 웅어가 크게 줄었다. 둑 건설 이후 유속이 변하고, 일대 오염이 심해지면서 재첩도 차츰 자취를 감췄다. 주력 어종을 잃은 일대 어민들 한숨도 깊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까치복이 ‘몰래 온 손님’처럼 찾아들었다. 국립수산과학원과 부산시 수자원연구소 등 기관에 따르면 까치복이 늘어난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국립수산과학원 관계자는 “까치복 개체 수만 헤아린 자료는 없다. 공설 어시장에서 위판되는 게 아니라 사거래 위주여서 정확한 어획량도 파악하기 어렵다”고 했다. 김진구 국립부경대 자원생물학전공 교수는 “특정 종의 개체 수가 갑자기 늘어나는 건 천적이 줄었거나, 해당 종 산란기에 먹이 공급이 매우 원활해졌기 때문으로 여길 수 있다.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려면 일대 변화 등 조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곳 어민은 매년 까치복 어획량이 꾸준히 늘어난다는 걸 피부로 느끼고 있다. 복어는 몸값이 높은 물고기인데, 까치복은 복어 중에서도 중·고가 어종이어서 어촌계에는 오랜만에 활기가 돈다.

‘까치복 호황’이 이어지자 어민은 지난해부터 까치복을 활용한 상품인 ‘까치복 맑은탕’ 밀키트를 개발하고 있다. 김국태 어촌계장은 “까치복을 밑천 삼아 어가 수입을 안정적으로 늘려보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산자원공단 소속으로 특허상품 개발 등 어촌계 소득 창출을 돕는 부산어촌특화지원센터가 레시피 개발부터 법인 설립, 브랜딩을 위한 교육을 제공했다. 교육을 들은 어민 가운데 진영남(48)씨는 어렵기로 유명한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의 복어 조리 기능사 자격을 땄다.

이렇게 만들어진 하단포구영어조합법인은 작업장을 차려 직접 밀키트를 제작하고 있다. 하단어촌계는 까치복 밀키트를 앞세워 지난해 12월 해양수산부가 선정하는 전국 ‘우수 어촌특화마을’ 세 곳 중 한 곳으로 이름을 올렸다. 손미혜 부산어촌특화지원센터장은 “올해부터 지역 축제장을 포함한 온·오프라인 시장에서 밀키트 판로를 본격적으로 찾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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