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추락 쇼크…전쟁 중인 러·이스라엘 화폐보다 더 떨어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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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强)달러'를 넘어 ‘킹달러’라고 불릴 정도로 달러 가치가 고공비행하고 있다. 17일(현지 시간)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16일 기준 주요 6개국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106선을 돌파하며 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기준금리 인하 시기가 지연되면서 미국과 주요국의 금리 격차가 확대될 수 있단 예상에서다. 여기에 이란의 이스라엘 공습으로 중동 리스크가 커지면서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작동한 결과로 분석된다. 17일은 105선대로 물러나며 급등세가 진정됐지만, 당분간 킹달러의 기세는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달러를 제외한 전세계 통화가 약세지만, 그중에서도 원화값 하락 폭이 두드러진다. 주요 31개국 통화의 달러 대비 가치의 변화를 뜻하는 ‘스팟 수익률’을 비교한 결과, 지난 12일 기준 원화 가치는 지난달 29일 대비 2.04% 하락했다. 31개국 중 가장 낙폭이 깊다. 같은 기간 전쟁 중인 러시아 루블(-1.69%)이나 이스라엘 셰켈(-1.54%)보다 더 떨어졌다.

화폐의 실질 가치로 따져봐도 원화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하위권이다. 18일 국제결제은행(BIS)은 한국의 실질실효환율 지수는 2월 말 기준 96.7(2020년=100)이라고 밝혔다. 이는 BIS 통계에 포함된 OECD 가입 37개국 중 5번째로 낮은 수치다. 주요 20개국(G20) 중에서도 일본(70.25)·튀르키예(90.15)·중국(93.4)에 이어 4번째로 낮았다. 실질실효환율은 한 나라의 화폐가 상대국 화폐보다 실질적으로 어느 정도의 구매력을 가졌는지 나타내는데 100을 넘으면 기준 연도 대비 고평가, 그 아래면 저평가 받는 것으로 간주한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원화 약세의 배경으로는 우선 미국 경기의 '나홀로' 호조에 따른 강달러 흐름, 엔화와 위안화가 동반 약세를 보이는 점이 꼽힌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주변국 통화에 프록시(Proxy·대리) 되다 보니 원화가 우리 펀더멘털에 비해 과도하게 절하된 면도 있지 않나 의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구조적 요인도 한몫했다. 한국은 대외 의존도가 높아 중동 리스크 같은 외부 변수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또 소규모 개방 경제 국가의 특성상 자본이 자유롭게 드나들어 외환 시장의 변동성도 높다.

당분간 원화 약세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국내 주식 시장에서 배당금이 지급되는 4월 이후엔 외국인 투자자들이 원화로 받은 배당금을 달러로 바꾸면서 원화 약세를 부추길 수 있어서다. 매년 4월은 기업들의 한 해 배당금 지급액의 60~70%가 집중되는 시기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한국 경제는 원유 수입 의존도를 포함해 무역 의존도가 높다. 글로벌 경제가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원화 가치가 떨어지고 있는 것"이라면서 "중동 분쟁의 완화 시기, 미국 금리 인하 시점이 앞으로 원화값 향방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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