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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석의 용과 천리마] 자오러지 각별히 챙긴 김정은, 왜?

중앙일보

입력

자오러지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자오러지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리창 중국 총리가 방북할 것으로 전망됐지만, 정작 평양을 찾은 사람은 자오러지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이었다. 자오러지는 북·중 수교 75주년 기념 ‘조중친선의 해’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4월 11일~13일 평양을 방문했다.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장은 한국에 비교하면 국회의장이다. 그래서 자오러지의 북한 파트너는 최용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되는 셈이다. 북한에서 최고인민회의를 한국과 비교하면 국회에 해당한다. 국회(한국)=전인대(중국)=최고인민회의(북한).

자오러지는 시진핑-리창에 이어 권력 서열 3위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13일 이에 걸맞게 만나자마자 그를 3차례나 포옹하고 오찬 후 차량에 탑승해 떠나는 자오러지를 직접 배웅하는 등 각별한 배려를 했다. 지난해 7월 방북한 리훙중 전인대 상무위원회 부위원장과 지난해 9월 평양을 찾은 류궈중 국무원 부총리와는 사뭇 달랐다. 리훙중과 류궈중은 의례적인 만남에 불과했지만, 자오러지는 정성을 다하는 듯 보였다.

사람들은 자오러지가 과연 어떤 ‘선물’을 가지고 갔을까에 관심이 쏠렸다. 

중국중앙(CC)TV가 공개한 말 8마리가 질주하는 조각상과 중국의 국주로 불리는 마오타이 30년산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오러지는 김정은이 학수고대하는 경제 지원 보따리를 가지고 갔을까?

자오러지는 김정은을 만나 “계속해서 상호 강력한 지원을 통해 쌍방의 공동 이익을 보호하자"라고 말했다. 의례적인지 아니면 구체적인 지원이 담긴 말인지 알 수 없지만, 김정은의 각별한 배려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대북 지원을 담당하는 상무부에서 리페이 부부장이 동행한 것을 보면 경제 지원에 관한 얘기가 오고 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오러지가 평양에 도착했을 때 마중을 나간 북한 사람들 가운데 류은해 북한 대외경제성 부상도 있었다. 리페이의 파트너다. 따라서 자오러지가 평양에 머무르는 동안 리페이-류은해의 면담이 있었을 것이다. 북-러 밀착은 중국이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 그렇다고 유엔 대북 제재와 미·중 관계 개선이 국익에 우선하는 환경에서 중국이 대놓고 북한을 지원할 수 없다.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장이 방북한 사례는 많지 않다. 우방궈가 2003년 10월, 리잔수가 2018년 9월 평양을 방문했을 정도다. 우방궈는 제1차 6자 회담(2003년 8월 27~29일) 이후 북한이 더는 관심이 없자 설득하기 위해 평양을 찾았다. 제1차 6자 회담에서 미국은 북한의 선(先) 핵 폐기를 주장했고, 북한은 핵 폐기와 대북 지원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맞서면서 공동 발표문도 채택하지 못하고 끝났다.

중국은 토라진 북한을 제2차 6자 회담에 참석시키려고 했다. 그래서 후진타오 국가 주석은 우방궈 전인대 상무위원장을 평양에 보냈다. 당시는 전인대 상무위원장이 지금과 달리 권력 서열 2위였다. 후진타오는 그 중요한 임무를 우방궈에게 맡긴 것이다. 왕이 중국 6자 회담 대표도 함께 방북해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을 만나 차기 회담 개최를 위한 협의를 했다.

우방궈는 북한을 설득하기 위해 대안친선유리공장 건설에 대한 차관(5000만 달러)을 약속했다.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유리산업에 눈을 뜨면서 북한은 유리공장이 간절했다. 우방궈의 방북 이후 북한은 2004년 2월 제2차 6자 회담에 다시 나왔다.

리잔수는 2018년 9월 북한 정권 수립일(1948년 9월 9일) 7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방북했다. 이때는 의례적인 방북이었다.

이번 자오러지의 방북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류젠차오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다. ‘정부 대 정부 관계’보다 ‘당 대 당 관계’를 중시하는 북-중 관계에서 류젠차오가 중국공산당의 대북 창구를 맡고 있다. 북한의 파트너는 김성남 조선노동당 국제부장이다. 이들은 지난 3월 21일 베이징에서 이미 만났다. 대외연락부장(중국)-국제부장(북한)의 만남은 북·중 정상회담이 무르익었다는 신호다. 이번에 자오러지와 함께 류젠차오가 평양을 방문한 것은 북·중 정상회담의 일정을 조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외교부에서 미국을 담당하는 마자오쉬 부부장이 동행한 것도 놓칠 수 없는 대목이다. 

올해 전 세계 최대 이슈는 미국 대선으로 북·중 모두에게 최대의 관심사다. 마자오쉬는 김정은에게 미국 대선과 북·중 정상회담의 상관관계를 설명했을 가능성이 크다. 마자오쉬는 지난 3월 27일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부장관과 미·중 관계와 국제 정세 등을 전화로 논의했다.

김정은의 각별한 대접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 자오러지의 방북은 북·중 정상회담 개최와 북·중 관계를 더 돈독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북-러 밀착을 더는 지켜볼 수 없다는 중국의 판단이다. 김정은도 자오러지에게 “북·중 수교 75년이자 ‘조중 친선의 해’인 올해 중국과의 각 분야 협력과 국정운영 경험 교류 강화, 전통적 우의를 돈독히 해 북·중 관계의 새 장을 만들자"라고 말했다.

북-중-러의 밀착은 점점 강화되고 있다. 반면 한-미-일은 국내 문제로 외교에 집중하기 곤란해졌다. 한국은 4‧10 총선에 국민의힘이 참패하면서 국내 정치에 우선 집중해야 할 상황이다. 일본은 자민당의 ‘비자금 스캔들’과 기시다 총리의 지지율 하락으로 정국이 어수선하다.

미국은 11월 대선을 앞두고 바이든-트럼프가 재대결을 벌이고 있다. 만약 트럼프가 당선되면 한-미-일 동맹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 한-미-일은 국내 문제에 코가 석 자다. 북-중-러도 국내 문제가 만만치 않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중국은 경제 문제, 북한도 경제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북-중-러는 지도자의 교체가 당분간 없어 외교적 결속을 다질 수 있다.

이것은 한국이 원하는 외교 상황은 아니다. 북-중-러 밀착은 한국에 반쪽짜리 외교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한국이 외교 환경을 바꾸기는 어렵다. 그러나 외교 환경은 언제든지 바뀐다. 그때를 대비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인적 네트워크를 확대하는 것이 최선이다.

고수석 국민대 겸임교수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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