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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병기 ‘필향만리’

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반소사음수 곡굉이침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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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공자는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팔을 구부려 베고 자더라도 즐거움이 그 안에 있으니 의롭지 못한 방법으로 얻은 부귀는 나에게 뜬구름과 같다”고 하였다. 변변치 못한 먹거리와 불편한 잠자리 자체가 좋다는 게 아니라, 설령 그런 열악한 환경에 놓인다 하더라도 마음을 바꿔 의롭지 못한 부귀를 탐내지 말자는 다짐의 말이다. 여기서 우리의 민요나 유행가에 더러 나오는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어도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족하리라…”라는 말이 나왔다. 한문 원문 그대로 “‘반소사음수’하고 ‘곡굉이침지’라도…”라고 노래 부르기도 한다. ‘안빈낙도(安貧樂道)’를 대변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飯:먹을 반, 疏:거칠 소, 食:밥 사, 肱:팔 굉, 枕: 베개 침. 거친 밥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어도. 31x68㎝.

飯:먹을 반, 疏:거칠 소, 食:밥 사, 肱:팔 굉, 枕: 베개 침. 거친 밥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어도. 31x68㎝.

가난했던 어린 시절, 아버지를 도와 땔나무 하러 갔을 때 삼베 보자기에 싼 점심밥을 반만 먹고 아들에게 내주며 “내는 밥 생각이 없다. 늬 먹그라. 조석(朝夕·아침저녁 끼니)은 굶더라도 점심만 먹으면 산데이”라고 하시던 아버지 말씀. 어른이 된 후에야 ‘점심’이 아니라, ‘정심(正心·바른 마음)’이었음을 깨닫고서 가슴으로 울었다는 어느 교사의 얘기가 울산의 서예가 신상구의 작품집 『당신 앞에 서성거린 내가 미워서』에 실려 있다. 도둑질해서 자식 호의호식시키려 말고 ‘정심’을 먹이도록 하자.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