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 동맥 호르무즈 막힐라” 해운·에너지·건설업계 초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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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산업계 ‘중동 리스크’ 고조

악화 일로를 걷는 ‘중동 사태’가 국내 산업에 연일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대통령까지 나서 선제 대응을 주문한 만큼 정부 부처가 마련할 대책이 주목된다.

이란이 지난 13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을 공습한 뒤 국내 업계는 중동 사태가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란이 언급한 호르무즈해협 봉쇄 가능성을 우려한다. 국내에서 쓰는 중동산 원유의 60%를 호르무즈해협을 통해 들여오고 있어서다.

한국석유공사는 최근 보고서에서 “다른 해상 수송 요충지는 선박이 비용과 시간을 들여서라도 대체 경로로 우회할 수 있지만, 호르무즈해협은 대안이 없다”면서 “만약 일시적이라도 석유가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지 못하면 석유 가격이 급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해협 봉쇄 시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곳은 해운 업계다. 국내 최대 해운사인 HMM을 비롯한 해운업체는 이미 지난해 12월 ‘홍해 위기’ 이후 홍해를 거쳐 수에즈운하를 통하는 항로 운항을 중단하고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으로 수천㎞를 우회하는 상황이다. 호르무즈는 HMM이 최근 사업을 확대하고 있는 벌크선 운항이 잦은 곳이다.

정유업계는 중동 리스크가 장기화할 경우 글로벌 경기 위축에 따라 수요 부진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한다. 석유 원료를 쓰는 석유화학 업계는 국제유가 상승이 기초원료인 나프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지 경계하고 있다. 최근 중동에서 잇달아 대규모 수주에 성공한 건설업계도 우려 섞인 시선으로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중동 확전 시 공사 지연이나 추가 발주 감소, 원자잿값 상승에 따른 공사비 증가 등 피해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한국무역협회는 중동 확전 등을 이유로 에너지 가격이 10% 오를 경우 국내기업의 생산비용이 5.9% 증가한다고 추산했다. 수출이 0.2% 늘지만, 수입은 0.9% 늘어 무역수지도 악화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16일 국무회의에서 “에너지 수급과 공급망에 관한 분석 관리 시스템을 가동해 상황 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발생할 수 있는 여러 형태의 리스크 요인에 선제적으로 대처해 주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 부처는 이날도 합동 비상상황점검회의를 열었다. 해상 운임 상승에 따른 물류비 지원, 피해 기업 무역금융 지원 등이 정부가 준비하는 대책 시나리오다. 피해를 최소화하는 수준의 대책이 대부분인 건 당장 중동산 원유를 대체할 수입선을 찾기 어려워서다.

비상시 기댈 곳은 비축유(備蓄油)다. 정부는 현재 9700여만 배럴 규모의 전략 비축유를 갖고 있다. 외부에서 원유를 추가 도입하지 않고도 120일 이상 쓸 수 있는 물량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비축량 권고 기준(90일분)을 넘겼다. 2020년만 해도 비축유는 2억 배럴(6개월분) 수준이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비축유를 푼 영향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산업부는 올해 비축유 확보 계획에 따라 원유 32만 배럴을 추가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김동섭 한국석유공사 사장은 “유사시 비축유 방출 등 시장 안정 대책을 차질 없이 수행하겠다”고 말했다.

중동 위기가 번질 때마다 원유 수입선 다변화를 추진했고, 효과도 있었다. 과거 90%에 가깝던 중동산 원유 수입 비중은 2019년 70.2%에서 2021년 59.8%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2022년 67.4%, 지난해 71.9%로 오름세다.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막은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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