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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나 ‘자신’을 내려놓는 정원 가꾸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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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고진하 목사·시인

고진하 목사·시인

봄비가 내린다. 어젯밤 돌담 밑 수로에서 청개구리 우는 소리를 들었는데 봄비를 재촉하는 예보였을까. 봄비가 내린다. 한동안 가물든 정원의 먼지를 가라앉히고 어린 봄풀들을 일으켜 세우는 빗소리가 수런거린다. 비설거지는 어제 오후에 미리 끝내놓았다. 오늘은 굳이 찬비 맞으며 동네 둘레길 걸으러 나갈 일도 없고, 텃새들이나 길냥이들도 보이지 않으니 차마 끝에서 도란도란 흘러 떨어지는 물소리나 들으며 한유함을 즐기련다.

어린 봄풀 일으켜 세우는 봄비
정원 일서 맛보는 질박한 기쁨
더없는 행복 저절로 오지 않아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얼마 전 옆지기가 한 말이 떠오른다. 난 올해 정원사가 될 거예요! 그런 말을 한 그녀는 며칠에 걸쳐 너저분한 정원의 마른 풀들과 나뭇가지들을 깨끗이 정돈하더니 어제는 묘목상에서 사온 산사나무, 모란, 화살나무 등을 뒤란에 심고, 텃밭에 심을 토종 고추, 쇠뿔가지, 오이, 적상추 등의 씨앗을 묘판에 뿌렸다. 정원도 그리 넓지 않고 텃밭도 작지만, 나는 그녀가 정원사가 되겠다며 부지런히 움직이는 그 속뜻을 헤아린다.

그녀가 정원 일에 몰두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내려놓는 한 방편. 이십여 년 동안 시골살이에 익숙해졌지만, 광케이블이 시골 구석구석까지 깔려 전 세계의 소식을 컴퓨터 앞에 앉아서도 알 수 있는 이 첨단세상에서 자아를 방생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불가의 언어를 빌어 방생이라고 했으나, 정원 일에 몰두하는 것은 숱한 세상 근심걱정을 내려놓는 데 도움이 된다고. 그렇다. 우리가 자기 마음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 존재 자체가 근심 공장으로 변하지 않던가.

평소 글쓰기를 놀이로 삼고 있는 나 역시 정원 일을 즐긴다. 따지고 보면 시 짓는 것도 정원 일이고, 요리하고 빨래하고 아궁이에 넣을 장작 쪼개는 일도 정원 일. 어제는 텃밭 옆 전봇대 위에 둥지를 트는 까치들이 승용차 위에 떨어뜨려 놓은 나뭇가지와 진흙과 똥을 털고 씻어냈는데 그 또한 정원 일. 때로 귀찮을 때도 있지만, 이런 일들을 하다 보면 나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어 좋다. 아무 일 없는 삶을 바라는 이들도 있겠지만, 정원 가꾸기는 에덴동산을 가꾼 태초의 정원사처럼 지복을 누리는 일.

지복(至福), 더없는 행복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지혜』라는 잠언집에서 사랑이란 꽃과 같아 자꾸만 물을 주고 정성을 쏟아야만 잘 자란다며 이런 말을 덧붙인다.

“오랫동안 사랑을 떠나 있으면 차츰 사랑의 육체성과 물질성과 구체성을 상실하게 되고, 마침내 양피지에 적힌 아득한 전설과 신화가 되어 작은 금속상자에 담긴 채 인생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된다.”

이 소설가의 사랑의 잠언은 정원 가꾸기에도 대입할 수 있겠다. 내가 게을러지거나 땀 흘리는 게 싫어 정원 일을 멀리하면 쓸데없는 잡념이 늘어나고, 감각은 줄어들고, 아상(我相)만 더 커지더라.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그 아상을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한 환상. 이런 환상을 깨주는 것 역시 내 몸을 한껏 낮춰서 하는 정원 일이다.

정원 일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흙 주무르기. 무너진 돌담을 다시 쌓을 때면 돌과 돌 사이에 흙을 비벼넣어야 하고, 흙으로 만든 아궁이 또한 일 년에 한두 번씩은 흙을 개어 연기가 새는 틈을 메우곤 하는데, 그렇게 손으로 흙을 주무를 때면 흙멍(!)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불멍도 즐기지만 흙멍에 빠져 있는 동안 내 촉감의 희열은 늘어나고 저절로 아상을 내려놓게 되더라.

이 아상이라는 허깨비를 내려놓으면 정원에서 만나는 흙, 풀, 꽃, 새, 나비, 햇빛, 빗물, 바람, 눈보라를 온몸으로 맞이하게 된다. 쿤데라의 말처럼 정원에서 내 ‘사랑의 육체성과 물질성과 구체성’을 스스로 확인하게 되는 것. 정원을 가꾸며 맛보는 이 질박한 기쁨의 내구연한은 물질적 소유욕과는 달리 오래 지속된다.

정원 가꾸기를 하다 보면, 계절의 변화가 주는 기쁨도 빼놓을 수 없다. 삼월 삼짇날을 앞두고 해마다 정원을 찾아드는 제비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후 변화가 심하고 생태 환경이 더 열악해지는데, 과연 올해도 제비가 날아들까. 그런데 예년보다 며칠 일찍 제비들이 왔다. 정원 일을 하던 옆지기가 소리쳤다. 얼른 나와 봐요. 서재 문을 열고 나갔더니 옆지기가 환한 눈짓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해거름이었는데, 제비 대여섯 마리가 정원 위 파란 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 날갯짓에서 상큼하게 느껴지는 봄의 생기. 우리는 지친을 만난 듯 반가워 환대의 손뼉을 쳤다.

고진하 목사·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