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AI칩 '엔비디아 괴력'...30년 반도체지수 '필라델피아'도 바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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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전세계 반도체 업황의 ‘가늠자’로 여겨지는 미국의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가 30여년 만에 산출 기준을 바꾼다. 최근 반도체 시장이 생성형 인공지능(AI) 선도 기업 위주로 재편됨에 따라, 엔비디아 등 상위 반도체 기업 비중을 크게 늘리기로 했다. 여기엔 한국의 미래에셋자산운용 등 주요 투자자들의 요구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4일 자본시장 업계와 미국 증권거래소 나스닥에 따르면 이달 22일부터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의 산출 방법이 변경된다.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미국에 상장된 반도체 기업 시가총액 기준 상위 30개 종목을 묶은 지수다. 엔비디아를 비롯해 AMD·브로드컴·퀄컴·TSMC·ASML 등 반도체 설계부터 제조·판매·디자인·장비 등 주요 기업을 모두 담고 있다. 반도체 관련 지수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대표 지수로 통한다.

김영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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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이 지수는 반도체 밸류체인을 두루 반영하기 위해 시총 상위 5개 종목의 가중치는 8%로, 나머지 기업은 최대 4%로 제한해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톱 2 기업의 가중치가 대폭 늘어난다. 새로운 기준에 따르면 1위 기업은 12%, 2위 기업은 10%로 비중을 늘렸다. 3위 기업은 기존 8%와 같지만 그 이하 기업은 4% 제한을 유지한다. 이에 따라 현재 1위인 엔비디아의 비중이 8%에서 12%로 1.5배 늘어나고, 2위인 브로드컴도 8%에서 10%로 비중이 커진다.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 산출 방법이 변경되는 것은 지난 1993년 지수 발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 지수는 특정 산업의 업황을 나타내는 업종 지수인 만큼, 연속성 유지를 위해 일반적으로 산출 기준이나 원칙을 바꾸지 않는다. 그럼에도 지수 산출 기관인 나스닥이 수십년 만에 기준을 바꾼 데에는 최근 급변하는 반도체 시장을 제대로 반영할 필요성이 이례적으로 커졌기 때문이다.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반도체 기업 주가의 나침반 역할을 하는 동시에, 반도체 분야에 투자하는 전 세계 다양한 금융상품의 기초 지수가 된다. 특히 최근 2~3년 사이 챗GPT(Chat GPT) 등 생성형 AI의 발전으로 스마트폰과 자율주행차, 가전 분야에서 본격적인 AI 시대가 열리면서 AI의 핵심 부품인 반도체 시장에 대한 투자도 그 어느 때보다 열기를 띠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미국필라델피아반도체나스닥 상장지수펀드(ETF)’다. 이 펀드는 운용 규모가 2조3814억원에 달하는 국내 1위 반도체 ETF인데, 필라델피아 지수를 추종하는 전 세계 반도체 ETF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오민석 미래에셋자산운용 글로벌ETF운용본부 본부장은 “지난해 10월 미국 뉴욕의 나스닥에서 투자자와 고객, 산업 전문가 등 다양한 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회의가 열었다”며 “다수의 참여자들은 반도체 시장이 과거와 비교해 크게 변화한 점을 고려했을 때 기존 방법론이 현 시장 상황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우려를 표명했고, 이를 나스닥이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실제 15억 달러(약 2조원) 규모로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 시총 1위인 엔비디아는 생성형 AI의 학습과 추론에 필수인 그래픽처리장치(GPU) 부문에서 세계 시장의 8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세계 12위였던 엔비디아 주가는 올해 들어서만 약 80% 오르며 구글을 제치고 마이크로소프트(MS), 애플에 이어 세계 시총 순위 3위에 올라섰다. 하지만 같은 기간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약 20% 상승하는데 그쳤다. 지수가 대표 구성 종목의 성장을 따라가지 못한 셈이다.

김영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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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석 본부장은 “세계 반도체 산업은 소수의 선도 기업을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고, 빅테크 기업들의 AI에 투자하면서 비메모리(시스템) 반도체 중심으로 수요가 계속 증가할 전망”이라며 “이번 선도 기업의 비중 확대로 지수 기반 투자자들도 AI발전 산업의 수혜를 더 크게 누리는 효과를 얻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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