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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가구 단지에 전세 '0건'…수도권 아파트 전세 씨가 말랐다

중앙일보

입력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연합뉴스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연합뉴스

2027가구 규모의 경기 광명시 철산동 ‘철산래미안자이’(2009년 준공). 포털사이트 네이버 부동산에 올라온 이 아파트의 전세 매물은 '0건'(14일 기준)이다. 1년 전 같은 날에는 12건의 전세 매물이 등록돼 있었다. 이 아파트 상가에서 영업 중인 한 공인중개사는 “전세 매물을 기다리는 손님이 많아 매물이 나오는 즉시 계약이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아파트와 인근 ‘광명두산위브트레지움’(1248가구 중 3건)과 ‘철산푸르지오하늘채’(1264가구 중 5건), ‘철산한신’(1568가구 중 5건)까지 6000가구가 밀집한 아파트촌에 전세 매물은 단 13건에 불과하다. 광명시 철산동은 서울 지하철 7호선이 지나 강남권 이동이 수월하고, 중소기업이 많은 가산디지털단지와 인접해 요즘과 같은 계절적 비수기에도 전세 수요가 꾸준한 곳이다. 뉴타운 재개발과 재건축 등으로 이주 수요가 더해진 데다 2022년 3월 이후 이 지역 신규 아파트 입주가 없어 그야말로 전세의 ‘씨’가 말라버렸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다른 수도권 지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인천 부평구 ‘삼산타운2단지’(1622가구), 서울 구로구 구로동 ‘삼성래미안’(1244가구), 경기 고양시 덕양구 관산동 ‘주공그린빌’(1192가구) 등도 전세 매물이 ‘0건’이다. 14일 부동산 빅데이터업체 아실에 따르면 수도권 아파트 전세 매물은 7만6343건으로 한 달 새 6353건(-7.7%)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11.2%), 경기(-7.0%), 서울(-7.7%) 등 수도권 전반의 전세 매물 감소세가 뚜렷하다.

전세 매물이 줄어드는 건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해서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고금리가 지속하면서 향후 부동산 시장 전망이 여전히 불투명하다”면서 “무주택자들이 집을 매수하기보다는 전세에 머무르는걸 더 선호하면서 전세 수요가 유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빌라·오피스텔 등 비아파트를 중심으로 일어난 전세 사기의 영향도 있다. 비아파트 임대 수요가 상대적으로 안전한 월세나 아파트 전세로 전환된 결과다. 신규 아파트 입주 물량이 감소한 것도 이유다. 올해와 내년 서울 입주 예정물량은 평년 대비 1만 가구 이상 적다.

전세 시장의 수급 불균형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지난 8일 기준 수도권 전셋값은 일주일 전보다 0.08% 상승(인천 0.17%, 경기 0.06%, 서울 0.06%)하며 지난해 6월 이후 43주 연속으로 올랐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한국부동산원의 통계를 기준으로 올해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서 아파트 전셋값이 가장 많이 오른 곳은 성동구(2.23%)다. 성동구에는 지난 5년간 1000가구 이상 준공이 없었다. 성동구의 전세 매물 감소 폭(10.3%) 역시 가장 컸다.(아실) 1976가구 규모의 옥수동 ‘e편한세상옥수파크힐스’의 현재 전세 매물은 11건에 불과하다. 지난달 옥수동 ‘옥수하이츠’ 전용면적 114㎡는 보증금 13억원(12층)에 계약했다. 지난해 3월 6억5000만원(4층)까지 떨어졌던 이 아파트 전셋값은 1년 새 정확히 두배가 됐다. 신규 계약만 놓고 보면 지난 1월 10억원(12층)보다 3억원이 뛰었다.

이 같은 흐름은 당분간 지속할 가능성이 높은데, 장기적으로 매맷값을 밀어 올릴 가능성도 있다. 전세에 머물던 무주택 실수요가 다시 매매 시장으로 눈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투자 심리를 자극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전셋값과 매맷값의 차이(갭)가 줄면 갭투자(전세를 끼고 집 매수) 등이 나타나면서 매매가 늘어난다.

그러나 정부는 수도권 전셋값 상승세가 아직 우려할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최근 “전반적인 상승 추세로 간다면 바로 조치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지만, 거시경제 기조가 흔들리거나 위험한 수준으로 가지 않을 거라 판단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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