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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지름길 금지? '1008억' 창경궁-종묘 문, 2년째 닫혔다 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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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가까이 굳게 닫힌 종묘의 북신문(오른쪽)과 창경궁의 통행문(왼쪽). 한은화 기자

2년 가까이 굳게 닫힌 종묘의 북신문(오른쪽)과 창경궁의 통행문(왼쪽). 한은화 기자

지난 13일 찾은 서울 종로구 율곡로 터널 상부 공원. 일제가 갈라놓은 창경궁과 종묘의 녹지 축을 잇겠다고 1008억원을 들여 조성했지만, 양쪽을 오가는 문은 각각 굳게 닫혀 있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김모(44)씨는 “새로 난 길이 창경궁이나 종묘로 이어질 줄 알고 찾아왔는데 볼 것도 없고 아쉽다”고 말했다.

‘창경궁-종묘 연결 역사복원사업’은 서울시가 2022년 7월 공원을 개장하면서 “일제가 단절시킨 것을 90년 만에 이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오세훈 시장의 역점사업으로 손꼽힌다. 오 시장의 과거 재임 시절인 2011년 첫 삽을 떴지만 완공하기까지 무려 12년이 걸렸다. 총 사업비만 1008억원에 달한다.

오 시장은 2019년 공사 현장을 방문해 “아무리 오래 걸려도 3~4년이면 끝날 공사인데, 현 시장이 저만큼 이 사업을 우선순위로 두지 않은 탓에 결국 공사비가 더 늘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 2021년 취임 후 이 현장을 가장 먼저 찾아 “문화재 담장 복원 및 보행로 조성 때문에 1년 늦어진다는 게 무슨 말이냐”며 "진작부터 (문화재청과) 협의했어야 했던 것 아니냐”고 공사 관계자들을 질타했다.

율곡로를 가운데 놓고 창경궁(왼쪽)과 종묘(오른쪽)이 공원으로 연결됐다. 하지만 율곡로 상단 오른쪽에 보이는 북신문은 2년째 닫혀있어 실제 양쪽 공간을 오갈 수 없다. 사진 서울시

율곡로를 가운데 놓고 창경궁(왼쪽)과 종묘(오른쪽)이 공원으로 연결됐다. 하지만 율곡로 상단 오른쪽에 보이는 북신문은 2년째 닫혀있어 실제 양쪽 공간을 오갈 수 없다. 사진 서울시

하지만 상부 공원이 개장한 지 2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종묘와 창경궁으로 자유롭게 출입할 수 없다. 문화재청의 행정 처리가 지연되고 있는 탓이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큰 틀에서 개방하기로 문화재청과 협의했는데 문화재위원회의 반대로 문화재청 쪽에서 보완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종묘와 창경궁 출입은 문화재청 관할이고, 서울시는 중간 녹지대만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왕의 지름길에 일반인 통행 안 된다”

문화재청은 종묘 북신문과 창경궁 출입구 사이의 경사가 심해 무장애 공간으로 조성하기 위해 개방이 지연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문화재위원회의 반대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신문이 창경궁에서 종묘로 이어지는 일종의 왕의 지름길인데, 일반인이 통행할 경우 조선 시대 용도와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런 논리라면 경복궁 등의 일반 공개도 부적합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 밖에 없다. 문화재청의 한 관계자는 “문화재위원회 안에서 이런저런 우려도 있지만, 오는 7월 안에 어떻게 관람을 하게 할지 입장시간과 입장료 등 기준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2022년 개장 당시에 활짝 열린 종묘의 북신문. 일명 왕의 지름길이라 불린다.  사진 서울시

2022년 개장 당시에 활짝 열린 종묘의 북신문. 일명 왕의 지름길이라 불린다. 사진 서울시

한편 창경궁-종묘 연결 역사복원사업은 창경궁과 종묘를 가로지르는 율곡로에 터널을 만들어 지하화하고 그 위에 흙을 덮어 약 8000㎡의 녹지를 만드는 사업이다. 과거 경복궁 동쪽에 있어 동궐(東闕)로 불린 창덕궁ㆍ창경궁과 종묘는 원래 담장을 사이에 두고 연결되어 있었지만, 일제가 율곡로를 만들면서 갈라놨던 것을 다시 연결했다. 풍수지리상 북한산의 주맥이 창경궁에서 종묘로 흐르는데 일제가 중간에 도로를 만들어 끊어버렸다는 해석도 있다. 종묘는 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신 왕가의 사당으로, 국내 최초로 등재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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