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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치의 시간, 여야 대화 통로부터 열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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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5호 01면

정당학회·중앙SUNDAY 총선 좌담 - 전문가들이 본 4·10 총선

4·10 총선 이후 한국 정치가 미지의 경로로 들어섰다. 최고의 여소야대(與小野大)다. 노태우 대통령이 총선 후 20개월만인 1990년 1월 3당 합당에 나섰을 때 여당(민정당)은 지금보다 17석 많은 125석(전체 299석)이었다.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5년 임기 내내 여소야대를 한다는 게 (여권으로선) 가장 뼈아픈 지점이 아닐까 싶다. 양극화 과정이 심한 가운데 ‘분점 정부’(의회 다수당과 대통령 소속 정당이 다른 것)가 되면 정치든 협치를 통해 성과를 내야 할 텐데 지금 구도에선 상당히 불리하다. 이제 시간은 야당 편이다.”

“전국 선거처럼 치러져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불만은 다 표출됐지만, 유권자 입장에선 정당이나 지역구 의원들을 평가할 기회는 놓친, 되게 잃은 게 많은 선거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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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중앙SUNDAY와 한국정당학회(회장 박원호 서울대 교수)의 긴급 총선 좌담회에서 나온 진단들이다. 박 회장과 박현석 국회미래연구원 거버넌스그룹장과 이재묵 한국외국어대, 임유진 강원대 교수가 함께했다.

이들은 윤 대통령이 지금이라도 협치에 나서라고 주문했다. 175석의 더불어민주당엔 ‘제도적 인내’(forbearance)를 요청했고, 쪼그라들고 있는 국민의힘에겐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상대가 잘 안 돼야 내게 집권기회가 오는 대통령제”의 한계를 지적하며 권력구조 개편에 대해 고민도 해야 한다는 진단도 나왔다. 윤 대통령에겐 개헌 이니셔티브가 기회일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정권 심판론 커지며 ‘전국 선거’ 돼버린 총선지역구 의원 평가할 기회 사라져

초유의 여소야대를 만들어낸 4·10 총선 다음날인 11일 중앙 SUNDAY와 한국정치학회가 총선 민심을 논의할 긴급 좌담회를 마련했다. 왼쪽부터 박원호 정당학 회장(서울대)과 박현석 국회미래연구원 거버넌스그룹장, 임유진 강원대, 이재묵 한국외국어대 교수. 김상선 기자

초유의 여소야대를 만들어낸 4·10 총선 다음날인 11일 중앙 SUNDAY와 한국정치학회가 총선 민심을 논의할 긴급 좌담회를 마련했다. 왼쪽부터 박원호 정당학 회장(서울대)과 박현석 국회미래연구원 거버넌스그룹장, 임유진 강원대, 이재묵 한국외국어대 교수. 김상선 기자

결국 대통령의 책임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이재묵=“한국갤럽 조사를 보면 대통령에 대한 불만 중 윤 대통령은 특히 불통·일방독주가 많다. 처음엔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는데 이젠 외신에서도 ‘입틀막’이라고 한다. 여당 대표를 선출하는 과정에도 지나치게 용산 입김이 들어갔다는 보도도 있었다. 야당 대표가 아무리 인기 없고 사법리스크가 있다 해도 대통령이 2년간 안 만난 경우는 없었다. 사법 리스크가 있는 건 사법부가 판단하면 될 문제이지, 행정부 수반이 판단할 건 아니다. 야당과 소통하고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박현석=“대통령의 소통은 정치권 내 반대자들과의 소통과 국민·유권자·시민과의 소통, 두 차원으로 볼 수 있는데 둘 중 하나라도 했으면 이렇게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의대 증원 문제도 전형적인 예다. 민주당도 의대 정원 증원을 주장했었다. 지금이라도 소통해야 한다.”
4·10총선 당선인 분석

4·10총선 당선인 분석

임유진=“정당 내부도 소통 자체가 너무 안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선거에서 윤 대통령과 각을 세운 사람들만 살아남았다는 걸 잘 봐야 한다.”
박원호=“윤 대통령이 특정 정책 영역에서 굉장히 큰 실책이 있었다기보다 스타일이나 컬처라고 해야 하나 그런 문제가 지적되곤 하는데, 저도 동의한다. 한국에서 소위 보수가 새로운 기반(segment)을 찾은 게 2007년, 2008년 MB(이명박)를 당선시킬 때였다. 당시 정두언 의원이 3중(中)을 말했다. 정치적 중도, 영호남이 아닌 서울, 그리고 중산층이다. 좀 리버럴한 스타일로 민정계 보수와는 확실히 다른 사람들이다. 박근혜 정부 때 떨어져 나갔고 촛불을 들었고 윤 대통령을 찍었다. 이들이 지금의 윤 대통령과 문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느냐, 나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아무리 밀턴 프리드먼 책을 가지고 입으론 자유주의를 말해도 행동은 자유주의가 아니지 않나. 리버럴한 이들 유권자를 끌고 갈 정도의 힘이라면 이준석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데 당 안에 함께 있지 못하고 쫓아내니 이길 수가 없다.”

박 교수는 2016년 총선이 정당과 유권자 간 안정적이고 장기적 관계 맺기가 흔들린 순간(realignment·리얼라인먼트)이었다고 주장해왔다. 민주당에 변함없이 강한 지지를 보내는 4050세대가 인구학적 다수를 점하면서다. 그는 ‘보수의 생존’을 걱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현석·이재묵 교수도 비슷한 인식이다. 실제 2008년 총선 이후 국민의힘 계열 정당은 작아졌다(18대 153석→151석→122석→103석→108석). “이번에 수도권에서 살아남은 후보들을 보면 다 중도에 가깝다. 보수정당이 어떻게 가야 할지 방향은 나와 있다”(박현석), “수도권 중심, 앞으로 성장할 세대 중심으로 노선을 재정비해야 하는데, 자꾸 선거 결과가 영남 쪽으로 국한된다. 대통령도 위기의식을 느끼면 대구 서문시장에 가지 않나”(이재묵)라고 했다.

4·10총선 지역별 비례대표 정당 득표율

4·10총선 지역별 비례대표 정당 득표율

결국 정권심판 선거가 됐다.
이재묵=“총선을 통해 지역구에서 4년간 제대로 일했는가를 보고 잘한 사람은 더 칭찬해주고 못 한 사람은 벌해야 하는데 대통령에 대한 불만, 중간평가의 수단으로만 온전히 써버리게 되니까 결과적으로 대통령에 대한 불만은 다 표출됐지만, 유권자들 입장에선 지역구 의원들을 평가할 기회는 다 사라진 셈이 됐다.”
임유진=“의회 정치를 잘하는 나라를 보면 대부분 의원이 선수(選數)가 높다. 우린 공천에서 제일 마이너스 되는 게 선수였다. 이들의 전문성은 무시되고 윤석열·이재명과의 관계만 남아 아쉽다. 학생들에게 진짜 설명할 방법이 없다.”
박원호=‘전국 선거’가 돼, 로컬(지역구) 이슈들은 다 사라져 버리게 됐다. 전국 선거 프레임은 여당엔 절대로 유리할 수 없다. 지지율 36%짜리 대통령의 코테일(coattails, 선거에서 같은 당의 후보자들을 함께 당선시키는 대통령이나 유력자의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고 해볼 수 있는 게 없다.
윤 대통령은 정치인 되길 꺼린 것 같다.
박원호=“아직 정치인이 아닌 듯하다. 용산에서 한동훈 비대위원장 때문에 졌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걱정스럽다. 진짜 강조하고 싶은 게 정치도 전문직이란 거다. 대통령만 아니라 국회의원도 몇 선씩 한 사람들은 전문직이다. 입법도 나름대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이다. 물갈이의 이면엔 막대한 코스트가 있다.”
한 위원장의 역할은 어떻게 평가하나.
박현석=“신선했고 팬덤이 있었지만, 대세를 어찌 해보기엔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정치인으로 훈련받지 않아서 국가 비전이 없다 보니 (한 위원장에게서) 나오는 말들이 다 민주당을 공격하는 것들이었다. 그게 여당 포지션이면 표를 얻기 힘들다. 당으로 봐선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한동훈 개인으로 보면 고생스럽긴 했겠지만, 정치가 정말 힘듦을 크게 깨달은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본다.”
이재명 대표는 초유의 거대 여당 대표지만 사법 리스크는 여전하다. 사법부가 고민하게 될 듯하다.
박원호=“이 대표가 잘해서 압승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거보다 더 잘할 수 있었다. 본인이 선택한 거다. 만약 대통령의 비토권을 무력화할 수 있는 200석을 넘겼다면 훨씬 더 압박·책임을 느꼈을 것이다. 이 대표가 정치력이 있다면 당장 무엇을 한다거나 하지 않을 것이다. 선거 결과가 법원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고 그래서도 당연히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 문제를 옆으로 제쳐놓으면 이 대표로선 급할 게 없다. 기다리고 있으면 대통령으로부터 연락이 오는 시간이 오지 않을까.”
박현석=“8월이면 전당대회다. 조국혁신당이 있고 전대를 하게 되면 강성 경쟁이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윤 대통령이 있기에 이 대표에게도 기회가 있을 수 있으나, 이 대표도 반대보단 국가를 끌어갈 지도자의 자격이 있는지 보여줘야 한다. 대안도 비전도 꼭 제시해야 한다.”
임유진=“대항하고 적대하면서 자신의 힘을 키워왔기 때문에 180석 가까운 걸 이끌며 더 커지고 더 싸우게 될까 걱정이다.”
박원호=“민주주의가 존속하는데 가장 중요한 건 ‘제도적 인내’다. 권력의 자기 자제다. 대통령 거부권을 무력화할 수 있는데 무력화하지 않는 것 내지 그런 상황으로 몰고 가지 않는 것,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태울 수 있음에도 여당 등 다른 정당과 협력해 진행하는 것, 이런 것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걸 보여줬으면 좋겠다.”
야권의 압승에 조국 대표가 결과적으로 기여했다는 평가다. 12석의 대표가 됐는데 그가 정치적 용서를 받았다고 보나.
이재묵=“지지를 확인한 정도라고 생각한다. 4050에선 상당한 지지를 받았지만 일부 조사를 보면 20대에선 0% 나왔다. 안티테제로만 어필했다. 다음 대선을 생각하려면 분명 확장성이 있어야 한다.”
박원호=“어떤 연구자가 카톡으로 ‘도덕성에는 유효기간이 있는 것 같다’고 보내왔더라. 측은지심이 있었던 것 같다. 그걸로 정치적 미래, 대선주자까지 갈 수 있느냐, 전 지금은 좀 아닌 것 같다.”

이번에도 거대 양당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우회해 위성정당을 만들며 비례의석을 대거 휩쓰는 폐해를 보였다. 동시에 민주당·국민의힘의 득표율은 5.4%포인트 차에 불과했으나 지역구 의석은 71석이나 차이 나는 비례성 문제도 여전했다.

위성정당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박원호=“위성정당은 제도를 해킹한 것이다. 원래 멸칭(蔑稱)인데 이젠 준위성정당이란 희한한 얘기까지 한다. 병립형보다 지금이 더 나쁜 것 같다. 지역구 정당은 위성정당 여러 개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할 수 있었다. 이번 선거사에 기록될 것 중 하나는 정의당 계열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의석 획득 기준인 3%에 미달한) 2.14%였다. 위성정당 안에 안 들어가서 그런 건데 안타까운 일이다.”
박현석=“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게 비례성 높은 선거제가 필요하고 소수의 목소리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게 하려는 거였는데 둘 다 실패한 셈이 됐다. 양당 간 불비례성이 정치를 나쁘게 만드니, 이를 해소하기 위해 비례의석을 넓혀가면 군소 정당의 진입 장벽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되지 않을까 희망한다.”
단지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싸우는 게 정치를 나쁘게 한다는 점에서 결선투표제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있다. 그러려면 개헌해야 하지만.
박원호=“대선뿐 아니라 지역구 선거까지 결선투표하자고 말해왔다. 지금은 유권자들에게 0 또는 1의 신호를 보낼 수밖에 없게 돼 있는데 그거 말고도 다른 옵션이 많다는 걸 알려야 한다. 결선투표하는데 150억~200억원이 든다고 하는데 갈등을 더 해결할 수 있다면 그 정도 쓰는 건 별문제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구조적으로 손대기 어렵게 돼 있다. 정권 초기엔 누구도 안 하려고 한다. 대통령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으려나. 뭔가 판을 흔들고 싶다면 꺼낼 수도 있긴 하겠다.”
이재묵=“선거도 선거지만 다들 대통령제에 문제 있다는 걸 안다. 제로섬이다. 상대 진영의 대통령이 성공하면 나의 집권 기회는 줄어드는 거니, 협치보단 상대가 잘 안 되어야 하는 게 구조화되고 있다. 그간 불행한 대통령이 많았다. 정치인들이 이제는 여야 할 것 없이 권력구조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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