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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압승에 변곡점 맞이한 의료개혁…“민심의 심판, 철회해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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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하면서 의대증원 등 정부의 의료개혁이 새 국면을 맞이했다. 의사단체가 공식 입장을 내지 않고 대응을 고심하고 있지만, 일부 의사들은 "민심의 심판"이라고 지적하며 증원 정책 철회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11일 오전 서울 소재 한 의과대학 앞으로 시민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뉴스1

11일 오전 서울 소재 한 의과대학 앞으로 시민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뉴스1

11일 의료계에선 총선 관련, 의대 증원 정책을 즉각 백지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서울의대 교수 비대위원장을 지낸 정진행 분당서울대병원 교수는 SNS에 “헌정 질서를 무너뜨리고 개인 기본권을 침해한 걸 용서하지 않은 국민 심판”이라고 평가하면서 “윤 대통령은 정권 심판을 엄중히 받아들이고 졸속 추진, 거짓 의정협의를 즉각 파기하라”고 촉구했다. 정 교수는 ▶보건복지부·교육부의 장·차관 즉각 파면 ▶전문가 중심 보건의료개혁공론화위원회 구성 등을 요구했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도 성명을 통해 “국민들이 내린 명령은 정부의 잘못된 의대 증원 관련된 정책을 즉시 중단하란 것”이라고 했다.

전·현직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 등도 정부의 자업자득이란 취지의 논평을 잇달아 냈다. 노환규 전 의협 회장은 “지난 2월 윤석열 대통령이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발표한 순간 나왔던 예상”이라며 “자유 가치를 외면한 보수 여당이 스스로 진 것”이라고 적었다. 주수호 전 의협 회장도 전날 밤 “가장 강력한 보수 전문가 단체인 의사 집단을 건폭(건설현장 폭력배) 등 강경 불법 노조 다루듯 한 용산과 그걸 말리지 못하고 수수방관한 국(민의)힘 당이 자초한 결과”라고 썼다.

의사출신인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에 "총선에서 보여주신 민심의 준엄한 심판에 책임 있는 여당의 중진 의원으로서 국민 뜻을 겸허히 받들겠다"면서 의대증원 문제에 대해선 1년 유예를 공개 건의하고 책임자 경질을 주장했다. 안 의원은 "의대 증원을 1년 유예하고 단계적 증원 방침을 정해 국민들의 분노에 화답해야 한다"면서 "의사들도 빨리 환자 곁으로 돌아오고 정부도 증원의 전제 조건으로 필수 의료인력 및 의사 과학자 확보 방안, 지방 의료 발전을 위한 법률, 의료수가 조정, 투자 계획을 내놔야 한다"고 촉구했다. "의대 증원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책임자들의 경질이 불가피하다"고도 했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사진 왼쪽), 주수호 전 의협 회장. 연합뉴스, 뉴스1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사진 왼쪽), 주수호 전 의협 회장. 연합뉴스, 뉴스1

의대 교수 단체인 전국의과대학 교수협의회는 이날 7차 성명서를 내 의대 총장들이 나서 정책 추진을 막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협의회는 “정부가 독단과 독선, 불통으로 일관하며 의료시스템의 파국을 초래한다면 대학이 나서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정부는 증원된 정원을 배정했지만 증원 시행 계획과 입시 요강을 발표하는 건 대학의 몫”이라며 “대학의 총장들은 대학 내 증원 절차를 중지해야 한다. 증원을 반납할 것을 간곡히 요청한다”라고 했다.

의협 비대위는 아직 이렇다 할 입장 표명이 없는 상태다.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인만 SNS에 “마음이 참 복잡합니다”라는 짧은 평을 남겼다. 의협 비대위 측은 공식 입장을 정리해 12일 오후 브리핑에서 발표할 계획이다.

의사 커뮤니티에선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정부가 정책을 철회하거나 조정할 것”이란 전망과 “국면 전환을 위해서라도 강행할 것” 등의 전망이 엇갈렸다. 한 글쓴이는 “급한 불부터 꺼야 하는 만큼 의대 증원은 뒷전일 것이며 할 동력도 없다”라고 주장했다. 다른 글쓴이는 “지금 대통령이 2000명 백지화를 선언하거나 한발 물러나 적당히 타협한다면 야당이 가만있겠느냐. 대통령은 정치적 생명을 위해서라도 2000명에서 1명도 양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썼다. 야당 의원실 관계자는 “바뀌면 오히려 총선용이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대로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했다.

11일 오후 서울 시내 대학병원에서 의료진들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11일 오후 서울 시내 대학병원에서 의료진들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총선 결과로 의료개혁 추진이 변곡점을 맞이한 가운데 의료계 내부 알력 다툼까지 더해져 정부와 의사들의 대화는 한동안 평행산을 달릴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현재 의협은 비대위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데, 임현택 당선인이 5월부터 임기를 시작한다. 임 당선인 측은 "비대위측이 정부와 물밑 대화에 나서고 있다"면서 자신이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비대위 해산까지 요구하고 있다.

총선이 끝나면서 정부가 그간 미뤄뒀던 전공의 면허정지 처분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면허 정지 처분이 재개되는데 가장 중요한 건 대화 국면”이라며 “의료계 자중지란이 심해지고 길어지는 상황에서 사태가 이대로 장기화한다면 처분을 마냥 유예할 수 없다. 결단이 내려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부장판사 김순열)은 정부로부터 의사면허 정지 3개월 처분을 받은 김택우 의협 비대위원장이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의사면허 자격정지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낸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했다.

환자·시민단체는 사태가 조속히 해결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는 이날 낸 논평에서 “총선 결과는 정부의 국정 운영 기조를 바꾸라는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라며 “정부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의사 진료 거부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라고 했다. 정부에 환자와 가족, 보건의료노동자, 의사단체 등을 직접 만나라고 제안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도 의사 집단 행위 때도 필수의료가 정상 작동할 법적 근거 마련 등 환자 정책을 국회에 제안하면서 사태를 중재할 것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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