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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시간표 2~5년 늦춘다…K-배터리 3사, 적자 비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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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글로벌 자동차 기업이 전기차 전환 시간표를 전면 재조정하고 있다. 짧게는 2년부터 길게는 5년까지 전동화 시간표를 뒤로 미루고 있다. 하이브리드 차종을 늘리거나 내연기관 생산을 연장해 전기차 수요 감소에 대응한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공개했다.

기아는 5일 인베스터 데이를 통해 “2026년까지 전기차 시장의 성장 속도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며 전기차 판매 목표치를 '2027년 114만대'로 조정했다. 사진은 2024 세계 올해의 차로 선정된 기아 EV9. 사진 기아

기아는 5일 인베스터 데이를 통해 “2026년까지 전기차 시장의 성장 속도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며 전기차 판매 목표치를 '2027년 114만대'로 조정했다. 사진은 2024 세계 올해의 차로 선정된 기아 EV9. 사진 기아

전동화 속도 조절 공식화 

지난 5일 전동화 속도 조절을 공식화한 기아가 대표적이다. 기아는 이날 인베스터 데이를 통해 “2026년까지 전기차 시장의 성장 속도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며 전기차 판매 목표치를 '2027년 114만대'로 조정했다. 1년 전 제시한 '2026년 100만대 판매' 목표를 수정해 100만대 돌파 시점을 1년 늦춘 것이다. 다만 2030년 160만대를 판매하겠다는 장기 목표는 유지했다.

이날 기아는 전기차 수요 둔화에 하이브리드 차종을 늘려 대응하겠단 전략도 공개했다. “주요 차종 대부분에서 하이브리드 모델을 운영할 계획”이라는 것. 현대차도 전동화 전환 속도를 조절할 것으로 보인다. 제네시스 브랜드는 2030년까지 전 차종을 전기차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지난 2021년 발표했지만, 최근 늘어나는 하이브리드 수요를 감안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생산도 고심하는 중이다.

미국 포드는 지난 5일 캐나다 오크빌 공장의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전동화 모델 양산을 연기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북미 지역에서 판매하려던 전기차 출시 계획을 당초보다 1~2년 연기했다. 사진은 포드의 F-150 라이트닝 전기차 생산 공정.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포드는 지난 5일 캐나다 오크빌 공장의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전동화 모델 양산을 연기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북미 지역에서 판매하려던 전기차 출시 계획을 당초보다 1~2년 연기했다. 사진은 포드의 F-150 라이트닝 전기차 생산 공정. 로이터=연합뉴스

비단 현대차그룹뿐만이 아니다. 미국 포드는 지난 5일 캐나다 오크빌 공장의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전동화 모델 양산을 연기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북미 지역에서 판매하려던 전기차 출시 계획도 당초보다 1~2년 연기했다. 앞서 포드는 지난해 4월 내연차를 조립하는 오크빌 공장에 18억 캐나다달러(1조7900억원)를 투자해 전기차 생산 공장으로 개편하겠다고 했었다. 시장에선 전기 픽업트럭 F-150 라이트닝을 대체할 차세대 전기 픽업트럭 생산 계획도 뒤로 밀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포드는 “시장 변화를 고려해 2030년까지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모델을 함께 출시할 계획”이라며 기아처럼 하이브리드 확대에 나섰다.

지난해 연말부터 이어진 ‘전동화 감속’ 고백은 자동차 업계의 대세가 되고 있다. 제너럴모터스(GM)는 지난해 10월 미시간주 전기 픽업트럭 생산 공장 가동을 1년 연기했고, 폭스바겐도 지난해 11월 동유럽에 짓기로 했던 배터리 공장을 무기한 연기했다. 메르세데스-벤츠 역시 지난 2월 전동화 목표를 5년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올라 칼레니우스 벤츠 최고경영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지난해 유럽 전기차 비중은 하이브리드를 포함해도 19%에 그쳐 예상치에 못 미쳤다”고 말했다. 벤츠는 2025년까지 신차의 50%를 전기차로 내놓겠다고 했지만 지킬 수 없는 약속이 됐다. 실물 경기 부진과 전기차 보조금 축소, 충전 인프라 부족 등 전기차 수요 위축을 이끄는 악재가 여전하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1분기 미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첨단제조세액공제(AMPC)를 제외하면 316억원 적자를 봤다. 사진은 LG에너지솔루션의 전기차 배터리팩. 사진 LG에너지솔루션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1분기 미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첨단제조세액공제(AMPC)를 제외하면 316억원 적자를 봤다. 사진은 LG에너지솔루션의 전기차 배터리팩. 사진 LG에너지솔루션

고심 커져 전기차 배터리 3사

양산차 기업이 전기차 브레이크를 밟자 K-배터리 3사도 고심이 커지고 있다. 양산차들은 하이브리드를 징검다리로 삼아 캐즘(chasm·기술 혁신에 따른 일시적인 정체기) 방어에 나섰지만 배터리 기업은 한동안 적자를 버텨내야 한다. 실적 악화는 속속 현실이 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1분기 미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첨단제조세액공제(AMPC)를 제외하면 316억원 적자를 봤다. SK온은 올 1분기 1000억원 이상의 적자를 기록할 전망이다. 다만 대규모 투자를 늦춘 삼성SDI는 올 1분기에 2000억원 흑자를 낼 것으로 시장에선 내다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올해 3·4분기 무렵에 실적이 반등할 수 있다는 예측도 있지만 전기차 수요가 크게 줄어 장담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자동차 업계에선 K-배터리 3사의 엇갈린 실적 전망을 브랜드 간 차이로 해석하기도 한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최근 흐름을 보면 전기 볼륨카(Volume Car·대중적인 차)에서 수요 감소가 확연하다”며 “프리미엄 브랜드 전기차는 수요 감소가 상대적으로 더디다”고 말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은 각각 GM과 포드에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반면 삼성SDI의 주 고객사는 BMW라 타격이 비교적 덜하다는 평가를 받는다.이들 3사는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에서 활로를 찾고 있지만 고금리 등으로 친환경 에너지 시장도 당분간 크게 성장하진 못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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