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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유엔 대사 8년만 방한…유엔외교 사령탑 직접 등판, '패널 종료' 맞대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린다 토마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 대사가 오는 14~20일 한국과 일본을 방문한다고 주유엔 미국 대표부가 9일 밝혔다. 대북 제재 이행을 감시하는 전문가 패널의 임기가 오는 30일 종료되기 전 미국의 유엔 외교를 총괄하는 최고위급 인사가 직접 등판해 대응책 마련에 나선 셈이다.

린다 토마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 대사가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안보리 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AFP. 연합뉴스.

린다 토마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 대사가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안보리 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AFP. 연합뉴스.

"패널 종료 '다음 단계' 논의" 

주유엔 미국 대표부는 이날 토마스-그린필드 대사의 방한·방일 소식을 알리면서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와 중국의 기권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 패널의 임기를 연장하기 위한 결의안이 부결됐다"며 "북한의 계속되는 무기 확산과 제재 회피 행위를 독립적이고 정확하게 보고하기 위한 '다음 단계'를 논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러시아가 거부권을 던진 안보리 표결 결과에 따라 전문가 패널이 사라지게 됐는데, 이에 대한 한·미·일 차원의 대응책 마련이 순방의 주요 목적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 셈이다. 이와 관련, 앞서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지난 5일 "전문가 패널을 대체할 새로운 모니터링 메커니즘을 우방국과 함께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관건은 대북 제재의 가장 큰 '구멍'으로 여겨지는 중국과 러시아의 참여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새로 발족되는 매커니즘이 실효성과 신뢰도를 담보할 수 있을지다. 미국이 토마스-그린필드 대사의 순방 소식을 전하며 패널을 대체할 새 모니터링 메커니즘에 대해 독립성과 정확성 담보를 강조한 배경이기도 하다.

전문가 패널은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과 한국, 일본, 싱가포르 등 8개국에서 파견된 전문가로 구성됐다. 그간 중국과 러시아가 패널 보고서의 선명성을 희석하는 등 한계도 있었지만, 가장 주요한 감시 대상국을 패널의 틀 안에 두고 회피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직접 따져 물을 수 있는 효과도 있었다.

2016년 10월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조태열 당시 외교부 2차관이자 유엔 대사 내정자(현 외교부 장관)가 방한했던 서맨사 파워 당시 미 유엔대사와 악수하는 모습. 중앙DB.

2016년 10월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조태열 당시 외교부 2차관이자 유엔 대사 내정자(현 외교부 장관)가 방한했던 서맨사 파워 당시 미 유엔대사와 악수하는 모습. 중앙DB.

중·러 '구멍' 메우기 관건

외교 소식통은 "유엔 내부에 있던 패널을 완벽히 대체할 순 없지만, 따로 보고서를 내는 작업 등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간 대북 제재 이행 감시와 관련해 각 회원국이 쌓아온 노하우를 적극 활용하고, 산발돼 있던 정보 역량을 총결집하는 노력이 뒤따를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과거 패널에 몸담았던 각국 전문가들을 자문역 등의 형태로 다시 규합할 필요성도 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실질적으로 팩트 조사를 담당하던 전문가 패널이 사라졌다는 것이지, 유엔의 제재 이행 기능은 죽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대체할 방법은 유엔 차원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강구할 수 있다"며 "7월로 예상되는 한·미·일 정상회의를 비롯한 여러 계기에 대북 제재 이행 의지뿐 아니라 북한 인권 문제 등에서 민주주의 국가 간의 협력과 연대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오전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의 임기를 1년 더 연장하기 위한 결의안 표결을 진행하는 모습. 유엔 웹티비 캡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오전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의 임기를 1년 더 연장하기 위한 결의안 표결을 진행하는 모습. 유엔 웹티비 캡처.

DMZ 방문·탈북민·납북자 면담 

토마스-그린필드 대사의 방한은 그가 2021년 1월 20일 유엔 대사로 임명된 이후 처음이다. 앞서 그는 2021년 12월 서울서 열린 유엔 평화유지(PKO) 장관회의 참석 차 방한할 계획이었지만, 당시 오미크론의 확산으로 회의가 화상으로 전환되면서 무산됐다.

유엔 주재 미국 대사의 방한 자체도 2016년 10월 서맨사 파워 전 대사의 방한 이후 8년만에 처음이다. 유엔 주재 미국 대사의 무게감은 다른 나라와 남다르다. 장관급 각료로,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도 참여하는 내각의 구성원이다.

또한 미국의 유엔 관련 업무가 워낙 광범위하고 중요하기 때문에 좀처럼 자리를 비우지 않는데, 이번에 1주일에 걸쳐 한·일 순방에 나선 건 이례적이다. 전문가 패널의 활동이 15년만에 종료되는 데 따른 사태의 심각성을 부각하고, 북한뿐 아니라 제재 위반을 조장하거나 방관하는 중국, 러시아에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목적으로 풀이된다.

토마스-그린필드 대사는 방한·방일 기간 북한 문제 관련 현장을 돌고 정부 고위당국자 등 각계 인사를 만나며 광폭 행보도 예정하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하는 건 직접적 대북 압박이 될 수 있다. 또 젊은 탈북민들을 찾아 자연스레 북한 인권 문제도 부각할 전망이다. 이화여대에서 학생들과도 만난다. 일본에서는 납북 피해자 가족과 만나고, 2차대전 당시 피폭지인 나가사키를 찾을 계획이다.

린다 토마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 대사가 지난해 4월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당시 열린 미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 참여하기 위해 들어서는 모습. EPA. 연합뉴스.

린다 토마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 대사가 지난해 4월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당시 열린 미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 참여하기 위해 들어서는 모습. EPA. 연합뉴스.

한편 오는 11일(현지시간) 소집된 유엔 총회에서는 러시아를 상대로 패널 임기 연장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이유를 소명하도록 요구할 예정이다. 2022년부터 유엔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거부권을 행사한 경우 추후 총회에서 공식 회의를 열어 그 이유를 밝히도록 했다. 러시아는 지난 15년 동안 공고하던 대북 제재 이행의 감시탑을 제 손으로 무너뜨린 이유를 공개적으로 밝혀야 할 외교적 부담을 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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