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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정경심 재판 증인 "변호인 도움 필요"…헌법소원 결국 각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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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섭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법무부 법무ㆍ검찰개혁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직하던 2017년 9월 18일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7층 대회의실에서 법무ㆍ검찰개혁의 핵심 과제 중 하나로 꼽히는 ‘공수처’신설과 관련해 권고안을 발표하고 있다. 조문규 기자

한인섭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법무부 법무ㆍ검찰개혁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직하던 2017년 9월 18일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7층 대회의실에서 법무ㆍ검찰개혁의 핵심 과제 중 하나로 꼽히는 ‘공수처’신설과 관련해 권고안을 발표하고 있다. 조문규 기자

수사기관의 수사를 받는 피의자가 다른 사람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할 때 변호인과 함께 증인석에 오를 수 있을까. 헌법재판소가 재판장이 이 경우에 변호인의 동석을 허락하지 않더라도 “법관의 소송 절차 진행은 헌법소원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현행법상 형사재판에 넘겨진 피고인은 ‘변호인의 증인신문 조력’을 보장받지만, 재판에 넘겨지지 않은 채 수사를 받는 중인 피의자에 대해선 규정이 없다. 이런 피의자가 다른 사람의 형사 재판에 증인으로 나갈 경우, 이곳에서 자칫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할 위험이 있다는 게 법조계의 논란거리였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배우자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가 2월 8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2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배우자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가 2월 8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2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헌재는 지난달 28일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공판에 증인으로 소환됐던 한인섭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측이 “피의자인 증인의 변호인 조력권을 인정해 달라”며 낸 헌법소원심판 청구를 각하했다. 각하란 청구요건을 갖추지 못했을 경우 본안 판단을 내리지 않고 사건을 종결하는 것이다.

한 교수는 2020년 7월 정 전 교수의 ‘입시 비리’ 의혹 1심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검찰이 한 교수가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장 재직 시절인 2009년 정 전 교수의 딸 조민씨에게 허위 인턴 증명서를 발급해 준 의혹을 묻기 위해 그를 증인으로 부르면서다. 당시 한 교수는 허위 인턴 의혹 등과 관련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지만, 검찰이 8개월째 기소 여부를 결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 조민씨가 지난해 12월 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허위작성공문서행사, 업무방해,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 관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조씨는 어머니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와 함께 서울대 법대 공익인권법센터장 명의의 인턴십 확인서, 동양대 총장 표창장 등 위조된 증빙서류를 제출한 혐의를 받는다. 뉴스1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 조민씨가 지난해 12월 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허위작성공문서행사, 업무방해,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 관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조씨는 어머니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와 함께 서울대 법대 공익인권법센터장 명의의 인턴십 확인서, 동양대 총장 표창장 등 위조된 증빙서류를 제출한 혐의를 받는다. 뉴스1

한 교수는 재판부에 “나처럼 피의자이자 증인일 때 법정이 검찰 조사실의 연장처럼 느껴질 수 있다”며 “변호인의 조력을 받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피의자가 수사기관에서 수사를 받는 경우 방어권 차원에서 변호인의 참여권을 보장받듯, 법정에서도 같은 권리를 인정해달라는 요구였다. 재판에서 한 증언은 공판 조서라는 증거로 기록되는데, 수사기관의 신문조서보다 증거능력이 더 강하다. 피의자의 법정 증언이 이후 자신의 수사 과정에서 혐의를 뒷받침할 증거로 채택되는 등 불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다.

하지만 재판부는 “관련 형사소송법 또는 규칙 조항이 없다”며 한 교수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행법상 피의자가 다른 사람의 형사 재판에서 증인으로 섰을 경우에 대한 변호인 참여권이 명시된 게 없으니, 이런 요구를 허가해줄지는 개별 재판부의 몫이란 취지다.
한 교수는 변호인 동석이 불발되자 증언 전체를 거부했다. 그러자 정 전 교수 측이 당초 입장을 바꿔 검찰이 한 교수의 참고인 진술 조서를 증거로 채택하는 데 동의했고, 이에 따라 검찰 측도 증인신청을 취하하며 결국 재판부가 한 교수의 증인채택 결정을 취소했다.

양홍석 변호사가 2017년 9월 서울 서소문 중앙일보 5층 회의실에서 열린 리셋코리아 수사개혁분화 회의에서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있는 모습. 김성룡 기자

양홍석 변호사가 2017년 9월 서울 서소문 중앙일보 5층 회의실에서 열린 리셋코리아 수사개혁분화 회의에서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있는 모습. 김성룡 기자

한 교수 측 양홍석 변호사(법무법인 이공)는 같은 해 9월 ▶재판장이 변호인의 동석을 거절한 결정 ▶한 교수와 같은 ‘피의자 겸 증인’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법률이 불충분한 것은 부당하다며 헌법소원 심판을 제기했다. 독일 등 해외 선진국 일부에서는 증인에 대한 변호인의 조력권을 법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헌재는 3년 6개월간의 심리 끝에 각하 결정을 내렸다. 먼저 재판장의 변호인 동석 거절은 헌법소원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봤다.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해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는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는 헌법재판소법 68조가 그 근거로 제시됐다. 헌재는 “여기서 ‘법원의 재판’이라 함은 법원이 행하는 공권적 법률판단 또는 의사 표현을 지칭하는 것으로 판결 외에도 소송절차의 부수적 사안에 대한 공권적 판단도 포함한다”며 “이 사건 거부행위는 재판장으로서 소송절차에 내린 공권적 판단이므로, 헌법재판소법 68조가 말하는 법원의 재판에 해당한다. 결국 법원의 재판을 그 대상으로 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한 경우에 해당하므로 부적법하다”고 했다.

또 헌재는 양 변호사가 헌법 소원 청구 자격인 ‘기본권 침해의 직접 당사자(자기 관련성)’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헌재는 “한 교수에 대한 증인채택 결정은 이 사건 공판기일에 취소되었고, 그 이후 정경심 사건이 종결될때까지 해당 사건에서 증인으로 신문을 받은 사실이 없다”며 “한 교수가 더 이상 정경심 사건의 증인이 아니게 된 때부터 청구인 역시 ‘피의자 증인의 변호인’ 지위를 가지지 않는 바 청구인의 조력할 권리가 침해된다고 볼수 없게 되므로 기본권 침해의 자기 관련성이 인정된다고 볼수 없다”고 봤다.

이종석 헌법재판소장 등 헌법재판관들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선고를 시작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종석 헌법재판소장 등 헌법재판관들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선고를 시작하고 있다. 연합뉴스

양 변호사는 중앙일보 통화에서 “한 교수가 증인 채택이 최종 철회됐었다는 이유로 이런 결정이 나온 것인데, 또 다른 피의자의 처지에 놓인 증인이 이와 유사한 일을 겪게 될 경우 다시 한번 더 헌법소원을 제기할 예정”이라며 “입법의 미비로 피의자의 방어권이 오직 재판장의 재량에 달리게 되는 것은 분명한 기본권 침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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