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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호 "KTX 근처도 가기 싫었다"…개통 20년 만에 밝힌 진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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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주년 KTX의 산파역, 김세호 전 차관 

김세호 전 건교부 차관. 중앙일보

김세호 전 건교부 차관. 중앙일보

 “매 순간마다 거세게 이어졌던 각계의 반대를 극복하며 나아가는 과정 자체가 최대 난관이었습니다.”

 김세호(71) 전 건설교통부 차관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공직생활 동안 한 번 경험하기도 어려운 ‘단군 이래 최대의 국책사업’을 두 번이나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건교부(현 국토교통부) 신공항건설단장을 맡아 2001년 개항한 인천국제공항이 첫 번째고, 지난 1일로 개통 20주년을 맞은 고속철도 KTX가 두 번째다. 2004년 개통 당시 철도청장으로 개통 준비를 진두지휘했다.

 김 전 차관은 특히 KTX의 태동과도 인연이 깊다. 우리나라가 1989년 고속철도 건설을 최종확정할 당시 담당 공무원으로서 대통령 보고와 결재문서를 직접 기안하고 작성했다. 1970년대부터 논의만 거듭되던 KTX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또 직접 개통한 당사자인 셈이다.

 민간기업에서 근무하다 늦깎이로 공직(행시 24회)에 입문해 교통부 수송조정과장과 건교부 공보관·신공항건설기획단장·감사관·수송정책실장 등을 거쳐 철도청장과 건교부 차관을 역임했다. 김 전 차관에게 KTX에 얽힌 사연과 미래를 물었다.

 - 철도청장으로서 개통 과정을 총괄한 KTX가 얼마 전 20주년을 맞았다.   
 “개통 20주년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KTX가 자랑스럽다. 사실 개통 당시에는 감격스럽다거나 보람 있었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었다. 워낙 힘들었다는 기억밖에 없어서 상당 기간 서울역이나 KTX 근처에도 가기 싫을 정도였다. 그러나 스무 살로 성장한 KTX를 보니 그저 뭉클할 뿐이다.”  
2004년 경부고속철도1단계 개통식을 마친후 고속철 시승을 위해 이동하는 고건 권한대행. 오른쪽 끝이 김세호 당시 철도청장. 중앙일보

2004년 경부고속철도1단계 개통식을 마친후 고속철 시승을 위해 이동하는 고건 권한대행. 오른쪽 끝이 김세호 당시 철도청장. 중앙일보

 - 2001년에는 신공항건설기획단장으로 인천공항을 개항했는데 KTX와 차이가 있다면.   
 “인천공항도 정말 어려운 과정이었지만 KTX 개통과는 몇 가지 큰 차이점이 있다. 인천공항은 김포공항을 운영하면서 영종도에 새 공항을 짓는 사업이었기 때문에 만일 인천공항을 제때 개항 못 할 경우 김포공항을 계속 사용하는 '비상대책'이 가능했다. 하지만 고속철도는 그런 비상대책이 작동할 수 없는, 그야말로 성공이냐 실패냐의 선택지밖에 없었기 때문에 더 어려웠다. 개통 당일 0시까지는 전국의 기존 열차를 모두 정상운행한 뒤 새벽 5시부터 고속열차를 새로 운행하는, 어찌 보면 무모하기까지 한 계획이었다. 이 때문에 개통 1년 전부터 모든 철도청 직원들이 수면 부족에 시달릴 정도였다.”    
 - 개통을 얼마 안 남긴 2003년 6월엔 대규모 철도파업까지 벌어졌다.  
 “2003년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철도구조개혁의 명분 아래 인력 감축과 건설·유지 보수 조직 이관 문제까지 제기되면서 그해 6월 전국적인 철도파업이 일어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속철도 개통 준비를 정상적으로 할 수 있는 여건이 도저히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런 환경을 헤쳐가면서 개통 준비를 하는 건 인천공항 개항 때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때 고생했던 철도청 전 직원들에게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 KTX 개통 과정에 어려움이 많았겠지만 그래도 가장 큰 난관을 꼽는다면.   
 “인천공항이나 KTX 모두 단군 이래 최대 사업이라고 할 정도의 대규모 국책사업이었지만, 국내외에서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들이 많았던 탓에 개통하기까지 매 순간마다 줄기차게 이어졌던 각계각층의 반대를 극복해가며 나아가는 과정 자체가 제일 큰 난관이었다. 정치권, 언론, 시민단체, 학자들뿐만 아니라 정부 내에서도 인력·조직·예산·감사를 담당하는 모든 기관이 부정적이었기 때문에 정말 고립무원의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그런 와중에도 고비마다 현명한 의사결정을 하고 방향을 잡아준 분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KTX가 있다고 생각한다.”   
2001년 진행된 인천공항 개항식. 당시 김 전 차관은 신공항건설기획단장으로 개항을 책임졌다. 중앙일보

2001년 진행된 인천공항 개항식. 당시 김 전 차관은 신공항건설기획단장으로 개항을 책임졌다. 중앙일보

 - 80년대 후반 정부가 고속철도 건설을 확정할 당시에도 큰 역할을 했다.   
 “처음 고속철도 업무를 맡게 된 것은 1987년 9월 당시 교통부 수송조정과로 발령받으면서부터다. 그 이전에는 IBRD(국제부흥개발은행)의 철도 차관사업으로 경부고속철도 건설 타당성 조사 보고서가 제출된 상태에서 사실상 진전이 없었는데 해당 업무를 맡으면서 뭔가 사명감 같은 걸 느꼈던 것 같다. 덕분에 5년 가까이 한자리에서 고속철도에 대해 공부를 해가며, 주변의 도움을 받아 고속철도 추진에 관한 최초의 대통령 보고와 결재문서를 직접 기안·작성하는, 공직자로서는 영광되고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었다.”
 - 당시 경제력으로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고속철도 사업은 쉽지 않았을 텐데.   
 “고속철도 건설을 추진했던 이유는 아주 단순 명료했다. 우리 경제가 급성장하던 시점에서 경부고속도로만으로는 사람과 화물의 이동에 한계가 생겼기 때문에 대안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근본 요인은 젖혀두고 '우리 수준에서 할 수 없다' '천문학적 예산을 어떻게 감당하느냐'는 주객이 전도된 문제들이 제기돼 개통 때까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분명한 사실은 70년대 후반부터 고속철도 도입 필요성을 당시 교통부의 선배 공무원들이 줄기차게 외쳐왔다는 사실이다. 무슨 얼토당토않은 소리냐는 비웃음까지 감내했는데 그런 노력에 대한 정확한 기록과 평가가 있었으면 한다.”
 - 당시 IBRD는 기존 경부선 철도의 단계적 개량을 권고했다고 알려져 있다.  
 “60년대 말부터 공업화를 중심으로 고도성장기를 맞았던 우리 경제는 중후장대 품목들의 수송이 많아지면서 경부고속도로와 경부선 철도가 이미 70년대 말부터 심각한 애로 상태를 맞고 있었다. 특히 당시 물동량이 가장 많은 석탄과 양회의 수송난이 심해 1979년 IBRD 권고로 경부 축에 대한 대량 화물 수송 체계 개편에 관한 조사연구를 시행했고, 그 결과로 새로운 경부선 철도 건설이 건의됐다. 당시 IBRD는 기존 경부선의 단계적 개량을 권고했었는데 만약 그 방안을 택했다면 오늘날 KTX는 탄생도 못 했을 것이다. 새삼 고속철도를 주장한 교통부 선배들의 판단이 정확하고 담대했다는 생각이 든다.”
 - 고속철도 사업 결정 과정에 김창근 당시 교통부 장관이 많이 언급된다.
 “한마디로 1988년 말 교통부에 김창근 장관이 부임함으로써 우리나라 KTX의 초석이 놓이게 됐다고 말할 수 있다. 사실 김 장관은 부임 초엔 고속전철 추진과정을 설명하던 국장에게 “자동차 시대에 무슨 고속전철”이라며 호통칠 정도로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이후 각종 보고와 사례 등을 검토하면서 고속전철에 대한 생각을 바꿔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서 ‘고속전철 및 신국제공항 건설 계획’에 대한 결재를 받아냈다. 또 끝까지 반대하던 경제기획원까지 설득해 마침내 1989년 경부고속철도 사업이 확정됐다.” (※김 전 장관은 6·7·8·10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1988년 12월~1990년 3월까지 교통부 장관을 맡았다. 1991년 안타깝게 지병으로 고인이 됐다.)   
김창근 전 교통부 장관. 중앙일보

김창근 전 교통부 장관. 중앙일보

 -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 고속철도에서 가장 시급하게 살펴야 할 점은.   
 “지금쯤은 백지상태에서 노반, 차량, 유지 보수 시스템, 관제 등 안전과 운영시스템을 철저히 점검하고 보완해야 한다. 고속철도는 육안으로 점검이 불가능한 미세한 오차로도 대형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시스템이다. 더욱이 짧은 구간에서 건설과 운영 주체들이 나뉘어 있어 관리도 미묘하고 복잡한 구조다. 터널 등의 구조물에서도 기본적인 문제점들이 지적되고 있는 경우가 있다. 20년이 지난 지금 전반적인 안전 체계의 철저한 점검이 필요하다.”
 - 고속철도 KTX의 미래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그때그때 민원이나 정치적 요구에 따라 계획을 바꾸지 말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일관된 기준에 따라 고속철도를 고속철도답게 건설하고 운영해야 한다. 우리나라 고속철도는 준비단계부터 반대론에 시달리다 보니 체계적으로 국토나 도시개발의 견인 효과를 챙길 수 없었다. 앞으로는 고속철도와 지역 간 철도, 도시철도의 연계 시스템을 계획 단계부터 제대로 갖추어 나가야 한다. 그리고 북한까지 포함한 동북아를 일일생활권으로 만들기 위한 청사진을 마련하고 준비해나가야 한다. 20주년을 맞는 KTX를 한반도와 동북아의 정치·경제지형까지 바꿀 수 있는 미래의 동력으로 바꾸는 세부적이고 치밀한 준비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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