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밋밋해도 건강한 '할메니얼' 입맛 양갱…'간식의 여왕' 됐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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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4호 19면

비비 ‘밤양갱’ 인기에 웃은 K디저트

가수 ‘비비’가 2월 13일 발매한 노래 ‘밤양갱’ 덕분에 ‘할메니얼’ 입맛의 양갱 판매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필굿뮤직]

가수 ‘비비’가 2월 13일 발매한 노래 ‘밤양갱’ 덕분에 ‘할메니얼’ 입맛의 양갱 판매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필굿뮤직]

“달디달고 달디달고 달디단 밤양갱/ 밤양갱 내가 먹고 싶었던 건 달디단 밤양갱 밤양갱이야아냐 내가 늘 바란 건 하나야 한 개뿐이야/ 달디단 밤양갱”

가수 비비(본명 김형서·26세)가 부른 노래 ‘밤양갱’의 노랫말이다. 연인과 이별하면서 ‘내가 바라던 건 진수성찬 같은 화려함이 아니라, 달디단 밤양갱 조각처럼 작지만 소중한 마음’이었음을 표현한 노래로 작사·작곡은 장기하가 맡았다.

지난 2월 13일 발매된 ‘밤양갱’이 지니, 유튜브 뮤직, 플로 등 주요 음원사이트 1위를 휩쓸면서 흥미로운 현상이 벌어졌다. 크라운해태제과의 과자 연양갱·밤양갱을 비롯해 시중의 양갱 판매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 업계에 따르면 앨범이 발매된 2월 13일부터 26일까지 약 보름 동안 국내 주요 편의점 4사(CU·GS25·세븐일레븐·이마트24)의 연양갱 매출은 전월 동기 대비 최대 40% 증가했다.

해태제과의 1957년 ‘연양갱’ 포장. [사진 해태제]

해태제과의 1957년 ‘연양갱’ 포장. [사진 해태제]

이마트는 지난달 22일부터 한정판 ‘비비×밤양갱’ 판매를 시작했다. 크라운제과의 밤양갱 10개가 들어 있는 상품 포장지에 가수 비비의 얼굴을 넣은 제품이다(한 봉지 5000원). 이마트가 2월 13일부터 3월 17일까지 양갱 매출이 전년 동기대비 약 35% 증가한 것을 보고 비비의 소속사인 필굿뮤직, 크라운제과와 함께 협업해 내놓은 한정판 굿즈다. 약 5만개의 물량을 준비했고 현재 약 3만5000개(봉지) 이상이 판매됐다.

해태제과의 ‘연양갱’ 현재 모습. [사진 해태제]

해태제과의 ‘연양갱’ 현재 모습. [사진 해태제]

지난달 1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메세나협회장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크라운해태제과 윤영달 회장은 비비의 ‘밤양갱’을 언급하면서 “요즘 아주 신이 난다. ‘밤양갱’ 덕분에 캐파(생산능력)를 늘렸다”며 “이 노래가 히트하면서 덕을 크게 보고 있다. 문화의 힘이 정말 대단하다”고 말했다. 해태제과는 연양갱을, 크라운제과는 밤양갱을 만들고 있는데 시장점유율은 8:2 정도다.

‘연양갱’은 1945년 해태제과가 설립과 함께 출시한 1호 제품이다. 사람으로 치면 올해 나이 79살이다. ‘과자’라고 불릴 만한 제품이 전무했던 시기에 해태제과는 전통음식인 ‘묵’에서 착안해 팥을 넣어 우리 입맛에 딱 맞는 연양갱을 개발했다. 당시 연양갱은 획기적인 종이 포장을 사용했는데, 이 기본 디자인은 현재까지도 사용 중이다. 판매 가격은 50환(1원=5환)으로 당시 시내버스 요금과 맞먹는 고급 과자였다.

이마트가 최근 출시한 한정판 ‘비비x밤양갱’ 제품. [사진 이마트]

이마트가 최근 출시한 한정판 ‘비비x밤양갱’ 제품. [사진 이마트]

하지만 80~90년대 들어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먹거리가 풍부해지면서 양갱은 중장년층이 주로 즐기는 추억의 간식거리로 자리매김했다. 생각해 보면 80~90년대 어린이날이나 크리스마스에 선물 받았던 ‘종합선물세트’ 상자에서 제일 먼저 손에 잡히는 것은 사탕이나 초콜릿 또는 ‘샤브레’ 같은 과자였다. 가장 나중까지 상자 안에 남아 있었던 게 양갱이었던 기억이 있다. 달달하고 수분이 많기는 했지만, 물렁물렁한 식감에 자극 없는 순한 맛은 젊은이들 취향이라기보다 할머니·할아버지 입맛에 더 맞았다.

그런데 올해 스물여섯 살의 잘파세대(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Z세대와 2010년대 초반 이후에 태어난 알파세대의 합성어) 가수 비비가 79살의 양갱을 ‘간식의 여왕’으로 불러올린 것이다. 실제로 젊은 층이 많이 이용하는 인스트그램에서 ‘#양갱’을 검색하면 13만7000개의 게시물이 검색된다.

최근 3~4년 사이 젊은 층에서 유행하는 것은 ‘할메니얼’ 입맛이다. ‘할메니얼’은 할매 입맛과 밀레니얼 세대를 합친 신조어다. 소시지·햄·떡볶이 등 자극적인 단짠을 즐기는 경향이 ‘초딩 입맛’, 국밥·해장국 등 시원하고 얼큰한 맛을 좋아하는 취향이 ‘아재 입맛’이라면 할메니얼 입맛은 밋밋하지만 건강한 맛이 특징이다.

이마트가 최근 출시한 한정판 ‘비비x밤양갱’ 제품. [사진 이마트]

이마트가 최근 출시한 한정판 ‘비비x밤양갱’ 제품. [사진 이마트]

흑임자·쑥·단호박·순두부 등 부드러운 질감, 자극적이지 않은 맛, 몸에 좋다고 알려진 할머니·할아버지의 ‘최애’ 식재료를 활용한 제품들이 밀레니얼 세대의 입맛을 사로잡으면서 크게 유행하고 있다. 할메니얼 입맛의 유행은 복고와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뉴트로’ 열풍이 문화 전반을 압도한 가운데, 팬데믹의 영향으로 ‘건강’이라는 키워드가 더해진 것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K디저트’의 인기도 한 몫 더하고 있다. 글로벌에서 한식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우리의 제철 식재료인 쑥 등을 이용한 메뉴들이 대거 등장했고 전통 과자인 약과, 금율정과, 개성주악 등도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달 배달 플랫폼 요기요는 2년간의 시즌 데이터 분석을 통해 봄에 주문수가 많았던 메뉴들을 공개했다. 이 데이터에 따르면 ‘약과’의 봄 시즌 주문수는 전년 동기대비 약 11배 증가했고, ‘꽈배기’는 2.3배 증가했다. 쑥의 향긋함을 담은 ‘쑥라떼’도 39% 이상 주문수가 늘었다고 한다. 광동제약은 ‘비타500향 약과·오란다’ ‘광동 쌍화약과’를, 정관장은 홍삼의 풍미가 느껴지는 ‘수제약과’를, CU는 ‘약과 아이스크림’ ‘약과 타르트’ ‘약과 쿠키’ 등 약과 관련 상품 3가지를 연달아 출시했다.

젊은 층이 많이 찾는 카페들이 아예 ‘K디저트 카페’를 테마로 메뉴를 구성해 사랑받는 경우도 많다. 서울 인사동에 위치한 ‘담장옆에국화꽃CCOT’의 홍시빙수·팥바팥빙수·수정과우유·통단팥죽, 강남구 봉은사로에 위치한 ‘한과와락’의 개성주악·개성약과, 을지로에 있는 ‘적당’의 백설기앙버터·양갱 등이 대표적이다. 할머니와 손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식문화의 유행은 참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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