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 누르자 기업대출 ‘풍선’…석달새 18조 늘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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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기업대출로 방향 튼 은행 

올해 들어 석 달 만에 시중은행의 기업대출이 18조원 가량 불어나면서 785조원을 넘어섰다. 정부가 가계대출을 억제하자 기업대출이 빠르게 늘어나는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은행들의 ‘기업 모시기’ 영업 경쟁에 건전성 악화가 우려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4일 국내 5대 시중은행(국민·농협·신한·우리·하나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기업대출 잔액은 785조1515억원으로 나타났다. 올해 들어 석 달 만에 17조8376억원 증가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70조8900억원 급증했다. 기업여신엔 대기업 대출을 비롯해 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 대출이 포함된다.

시중은행이 기업대출에 편중한 데는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 영향이 크다. 주택담보대출을 포함한 ‘가계 빚(잔액 693조5684억원)’은 올해 들어 1조590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5대 금융지주는 연초 정부의 ‘가계부채 현황 점검회의’에서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을 1.5~2% 수준에서 관리할 계획이라고 보고했다. 가계대출 관리 압박에 시중은행은 기업대출로 방향을 틀어 대출 영업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들어 가장 적극적으로 기업대출을 늘린 곳은 신한은행이다. 기업대출 잔액 증가액 기준으로 신한은행의 기업대출은 석 달 만에 6조3354억원 증가했다. 뒤를 이어 하나은행(4조5349억원), 우리은행(4조1368억원), 농협은행(1조4714억원), 국민은행(1조3591억원) 순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은행 관계자는 “은행의 올해 먹거리는 기업대출밖에 없다”며 “(그러다 보니) 은행 간 금리 경쟁으로 ‘기업 모시기’ 경쟁이 점차 치열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개인사업자대출을 포함한 중소기업 대출 잔액 증가세도 두드러진다. 올해 5대 시중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640조672억원에 이른다. 올해 들어 9조1817억원 증가해 전체 기업여신 증가액(17조8376억원)의 51.5%를 차지한다. 같은 기간 대기업 대출 증가액(8조6558억원)과 맞먹는 수준이다. 1년 전(602조3173억원)과 비교하면 37조7499억원 불어났다. 일반적으로 중소기업은 대기업보다 은행 대출 의존도가 높다.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낮아 회사채 시장에서 자금 조달이 어렵기 때문이다.

기업대출이 늘면서 자산 건전성 우려도 커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은행의 지난해 말 부실채권(연체 3개월 이상)은 석 달 사이 1조원 증가한 12조5000억원으로 나타났다. 이중 기업여신이 10조원으로 부실채권의 80%를 차지했다. 나머지는 가계여신(2조3000억원)과 신용카드 채권(2000억원)이다.

기업여신의 부실채권비율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1분기 말 0.5%에서 연말엔 0.59%로 상승했다. 특히 대기업 대출은 같은 기간 0.38%에서 0.5%로, 중소기업 대출은 0.57%에서 0.64% 등 부실채권비율 모두 올랐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최근 기업들이 고금리와 경기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돈을 벌어 이자를 못 갚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1674개 상장사(코스피+코스닥) 가운데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갚지 못하는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취약기업 비중은 42.4%에 달했다. 1년 전(34.3%)보다 8.1%포인트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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