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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 앞 소나무도 뚫렸다, 남부 숲 휩쓴 ‘붉은 저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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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경주 국립공원 토함산 지구에서 발견된 소나무재선충 감염 의심목. 붉은 갈색을 띠며 고사하고 있다. 정은혜 기자

경주 국립공원 토함산 지구에서 발견된 소나무재선충 감염 의심목. 붉은 갈색을 띠며 고사하고 있다. 정은혜 기자

지난 2일 경주 불국사. 주차장 한쪽에 밑동만 남은 소나무가 보였다. 지난해 11월 소나무 재선충에 감염돼 베어낸 흔적이다. 국립공원공단 관계자는 “주차장 쪽 소나무는 예방약을 맞지 않아 무방비 상태였다. 감염목은 살릴 수도 없고 주변에 번질 수 있어 베는 게 최선”이라며 “토함산에 감염목이 더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포항·경주·밀양 등 경상권에서 소나무를 집단 고사시키는 재선충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대개 사유림 피해가 컸는데, 최근에는 관리가 엄격한 국립공원도 재선충의 위협에 시달린다. 공단은 지난해 10월 말 불국사 주차장에서 의심목을 발견했고, 11월에 감염을 확인했다. 올 들어선 경주국립공원에 속한 토함산에서 감염 의심 소나무를 잇따라 발견했다. 지난 1일 녹색연합과 함께 석굴암 입구 일원을 조사한 결과, 감염 의심목 20여 그루를 포착했다. 국립산림과학원이 감염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소나무재선충 감염은 고사율 100%다. 길이 1㎜ 가량인 재선충은 매개충인 하늘소를 타고 이동하며 반경 2~3㎞ 지역에 퍼진다. 1988년 부산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두 차례의 대확산 시기가 있었고, 지난해부터 3차 대확산이 시작했다고 한다. 실제로 경북 포항 호미곶 해안도로 일대에서는 갈변한 소나무들이 고사하는 걸 쉽게 볼 수 있었다. 김원호 녹색연합 활동가는 “소나무 집단고사는 함께 살아가는 조류·곤충 등의 생태계를 무너뜨릴 뿐 아니라 산사태 위험도 증가시킨다”고 경고했다.

불국사 주차장 옆 소나무재선충 감염목이 있던 자리(노란색 원). 나무를 베어내 해당 자리에는 밑둥만 남았다. [사진 녹색연합]

불국사 주차장 옆 소나무재선충 감염목이 있던 자리(노란색 원). 나무를 베어내 해당 자리에는 밑둥만 남았다. [사진 녹색연합]

현장에서는 재선충 관리가 갈수록 어려워진다고 호소한다. 기후변화 탓이다. 매개충의 활동 기간이 늘면서 감시 기간은 길어진 반면, 방제 기간은 줄었다. 이성우 경주국립공원사무소 문화자원과 계장은 “하늘소가 과거에는 6~10월 활동했는데, 최근에는 5~11월에 활동하는 양상”이라며 “매개충 활동기에 예찰하고 비활동기에 방제하는데, 예찰 기간은 늘고 방제 기간은 줄었다”고 부연했다. 이와 함께 최근에는 소나무의 기후 스트레스가 누적되고 있는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아직은 재선충 상황이 관리되고 있기 때문에 과도한 불안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게 산림 당국 입장이다. 2006년 첫 번째 대확산 당시 137만 그루, 2014년 2차 대확산 당시 218만 그루가 감염됐다. 현재는 100만 그루 안팎으로 줄어든 추세다. 다만 대구 달성, 경북 안동·포항·고령·성주, 경남 밀양 6개 시군은 피해가 심각해 특별방제구역으로 선포했다. 당국은 이 지역 산주가 신속하게 수종을 전환할 수 있도록 피해 복구를 지원키로 했다.

산림청은 지난해 재선충 방제에만 예비비를 포함해 1137억원을  썼다. 올해는 방제 예산이 805억원으로 줄었다. 하지만 재선충 피해가 심각해 예비비 투입을 추진하고 있다. 남성현 산림청장은 “현재 특별방제구역은 과거부터 재선충 취약지역이었는데, 방제 예산이 줄면서 재선충 감염이 다시 늘었다”며 “방제에 예비비 투입을 기획재정부와 협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기후변화에 취약한 소나무 등 침엽수 대신 활엽수 중심 식재 계획도 세웠다. 남 청장은 “국내 소나무가 16억 그루로, 매년 200만 그루씩 고사해도 초토화에 800년 걸린다”며 “수종 전환도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으니 과도한 불안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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