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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미국 민물가재가 중국 마라룽샤(麻辣龍蝦)로 둔갑한 사연

중앙일보

입력

중국의 국민 여름 야식 마라룽샤(麻辣龍蝦). 즈후(知乎)

중국의 국민 여름 야식 마라룽샤(麻辣龍蝦). 즈후(知乎)

마라룽샤(麻辣龍蝦)는 마라탕, 마라샹궈 등과 함께 한때 한국에서도 꽤 유행했던 중국 음식이다. 다소 뜬금없는 궁금증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 왜 마라룽샤 즐겨 먹었을까?

당연히 여러 이유를 꼽을 수 있겠다. 일단 우리도 좋아하는 얼얼하고 매운 사천식 마라 양념으로 요리했으니 우리 입맛에 맞는 부분이 있다. 민물 가재이기는 하지만 작은 랍스터라는 뜻인 샤오룽샤 요리의 주재료이니 바닷가재인 랍스터 먹는 느낌도 없지는 않다. 혹은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사라져버린, 맑은 물에서만 산다는 가재에 대한 향수가 무의식중에 작용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북경과 상해를 비롯해 중국에 뜨겁게 불었던 마라룽샤 열풍이 한국에 그대로 옮겨졌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면 중국에서는 마라룽샤가 왜 그토록 유행했을까? 이유를 알아보기 전에 먼저 중국인들은 언제부터 앞다퉈 마라룽샤 먹기 시작했을까?

마라룽샤가 퍼지기 시작한 것은 북경의 경우 2001년 전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북경의 도심인 건국문 주변 음식점 거리에 새롭게 유행하는 요리가 생겼다며 찾아갔던 곳이 바로 마라룽샤 전문점이었다. 음식점은 커다란 접시에 가득 쌓인 마라룽샤 놓고 맥주잔을 기울이며 웃고 떠들던 20~30대 젊은 층과 직장인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아무리 유행이라지만 당시 중국 젊은이들, 민물 가재 요리에 그렇게 빠져든 이유가 무엇일까?

 충격적이게도 샤오룽샤는 사실 미국산 민물 가재였다. 게티이미지뱅크

충격적이게도 샤오룽샤는 사실 미국산 민물 가재였다. 게티이미지뱅크

 마라룽샤는 꽤나 독특하면서 동시에 지극히 평범한 음식이지만 요리가 생겨나서 유행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무척이나 흥미로운 음식이다.

먼저 요리의 주재료인 민물 가재, 샤오룽샤 식용역사부터가 눈길을 끈다. 중국은 샤오룽샤 최대 생산국이며 소비국인 동시에 수출국이다. 그러니 얼핏 샤오룽샤가 중국 토종의 민물 가재 종류일 것 같지만 사실은 아니다. 미국 동남부에서 주로 잡히는 북미 토종 가재다.

그런데 왜 중국이 최대 양식 국가가 됐고 중국 음식인 마라룽샤의 재료가 됐을까 싶은데 사연이 다소 복잡하다.

샤오룽샤라는 북미산 민물 가재가 중국에 들어온 것은 약 100년 전인 1920~30년대다. 당시 대륙을 침략했던 일본군과 함께 진출했던 일본 양식업자가 미국에서 수입해 퍼트렸는데 처음부터 식용으로 들여온 것이 아니었다.

일본 양식업자들은 이 무렵 후난 성 일대에서 황소개구리를 비롯해 여러 종류의 식용 개구리를 키웠다. 그런데 번식 속도가 빠른 데다 먹성까지 좋은 황소개구리의 왕성한 식욕을 감당할 수 없었기에 사료감을 찾다 발견한 것이 북미산 가재, 샤오룽샤였다.

동양 가재에 비해 크기도 클 뿐 아니라 미국산 황소개구리 못지않게 번식력도 뛰어났기에 개구리 사료로는 안성맞춤이었으니 개구리 생태계의 역발상 이이제이(以夷制夷)였던 셈이다.

이럭저럭 세월이 흘러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동시에 중일전쟁도 끝났고 전쟁에 패한 일본의 양식업자들도 중국 땅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이어진 국공내전의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황소개구리가 됐건 사료용 샤오룽샤가 됐건 양식장 관리가 제대로 이뤄질 리가 없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돌보지 않는 틈을 타 양식장을 뛰쳐나온 황소개구리와 샤오룽샤가 엄청난 번식력을 자랑하며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다.

이때만 해도 아직 농부들은 북미산 민물 가재인 샤오룽샤를 사료로만 생각했을 뿐 요리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1980년대만 해도 중국에서는 아직 일부 외래종 생물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개별적으로야 일부 농가에서 잡아다 구워도 먹고 쪄도 먹었을 것이고 주 무대가 후난성이었으니 당연히 매운 고추 양념을 곁들여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요리로 개발해 대중적으로 퍼트리지는 못했다. 대신 후난성 농부들은 넘치는 샤오룽샤를 잡아다 개구리와 함께 닭과 돼지 사료로 활용했다.

그럼에도 샤오룽샤 번식력이 개구리와 닭, 돼지의 식욕을 뛰어넘었는지 여전히 샤오룽샤가 넘쳐났다. 그러자 1990년 초, 쓰촨성 성도(成都)의 한 음식점에서 전통적인 사천식 마라 양념으로 요리한 민물 가재, 마라룽샤 개발하면서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0년 장쑤성에서 랍스터 요리 축제(龍蝦節)에 이 요리를 선보이면서 2001년 무렵, 마침내 북경까지 진출해 중국 전역으로 퍼졌다.

흥미로운 것은 2000년을 전후해 마라룽샤가 퍼진 이유를 중국 사회구조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분석하기도 한다. 이때는 중국이 개혁개방 이후 만든 등 따습고 배부른 원바오(溫飽)사회에서 벗어나 생활이 편안한 중산층 사회인 샤오캉(小康)사회로 진입할 무렵이다.

여유가 생긴 주머니 사정을 바탕으로 외식을 하고 거리 음식이 발달하는 시기에 맞춰 등장한 소시민의 샤오캉 음식이 마라음식 계열의 마라룽샤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마라룽샤에는 중국 현대사의 명암이 고스란히 깃들어 있다.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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