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나 이재명 대표와 거리를 두는 게 선거에 유리하다?
전국 254개 지역구의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 후보 505명(민주당 3곳 무공천)의 선거 공보물만 보면 답은 '그렇다'에 가깝다. 각 후보가 중도층 공략에 집중하면서 벌어진 현상으로 풀이된다.
중앙일보가 3일 전국에 배포되는 양당 지역구 후보의 선거 공보물을 전수조사한 결과, 여야 후보 505명 중 341명(67.5%)이 이른바 ‘친윤·친명 마케팅’을 벌이지 않았다. 국민의힘 후보 254명 중 윤 대통령 사진을 뺀 후보가 181명(71.2%)이었다. 민주당에선 251명 중 160명(63.7%)이 이 대표 사진을 뺐다. 반대 진영 지도자에 대한 혐오에 기댄 양극단 정치가 빚은 22대 총선의 진풍경이다.
① 의도적 ‘디커플링’
극적인 변화는 여당에서 시작됐다. 국민의힘 후보 254명 중 181명이 윤 대통령 사진을 안 썼다. 강남 3구인 강남·서초·송파 8개 지역구에서 윤 대통령 사진을 실은 이는 김근식 후보(송파병)가 유일했다. 넣더라도 사진 사이즈가 작아졌다. 통일부 장관을 지낸 권영세 후보(서울 용산)는 5페이지 하단에 윤 대통령의 사진을 작게 실었고, 국가보훈부 장관을 역임한 박민식 후보(서울 강서을)도 4페이지 하단에 윤 대통령의 옆모습만 담았다.
과거 선거는 달랐다. ‘박근혜 마케팅’ ‘문재인 마케팅’ 같은 대통령 연계 선거 전략은 여당 후보의 승리공식이었다. 중앙 정부가 자신의 공약을 지원할 것이라고 직관적으로 홍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4년 전 총선에서 당선된 서울의 민주당 의원 41명 중 34명(82.9%)이 문재인 전 대통령의 사진을 공보물에 전면 배치했다.
민주당에선 경선 승리의 필수 요소이던 ‘이재명 마케팅’이 본선에서 사라졌다. 민주당 부산·경남 후보 34명의 선거공보물에선 이 대표 사진이 딱 한 번 등장했다. 제주에선 싹 사라졌다. 이 대표가 지사직을 지낸 경기도에서도 후보 60명 중 30명만 사진을 썼다. 국민의힘에서도 3명 중 1명 꼴(36.6%)로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사진을 넣지 않았다. 선거 경험이 많은 민주당의 한 수도권 후보는 “현시점에는 지도자들의 비호감도가 커서 중도층 공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② 오세훈·김동연은 인기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빈자리를 채운 건 광역단체장이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에서만 28개 선거구(58.3%) 공보물에 등장해 8번 등장한 윤 대통령보다 등장 횟수가 많았다. 김기남(경기 광명갑)·나태근(경기 구리) 등 경기·인천 후보 15명도 ▶서울 편입 ▶지하철 개통 공약 등을 소개하면서 오 시장과 면담한 사진을 실었다.
민주당에선 김동연 경기지사가 인기였다. 김승원(경기 수원갑)·최민희(경기 남양주갑)·문정복(경기 시흥갑) 등 수도권 후보 다수가 지자체와의 정책협조를 강조하며 김 지사 사진을 공보물에 실었다. 친명계 좌장으로 불리는 정성호 후보(경기 동두천-양주-연천갑)도 이 대표 대신 김 지사 사진을 배치했다.
③ 이재용·바이든에 '입틀막'도 인기
부산 중·영도 선거구에 출마한 조승환 국민의힘 후보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찍은 사진을 4페이지 상단에 띄웠다. 경남 양산을의 김태호 후보는 ‘양산에서 정치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문구 아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는 사진을 배치했다.
민주당에서는 수도권 후보 19명이 이른바 ‘입틀막 사건’ 사진을 공보물에 실었다.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 학위 수여식에 졸업생 신분으로 참석한 신민기 녹색정의당 대전시당 대변인이 윤 대통령에게 소리를 질러 퇴장당한 사건을 정권심판론 환기에 사용한 것이다.
최창렬 용인대학교 특임교수는 “양 진영의 적대감이 워낙 크다 보니 상징적 인물에 기대 캠페인을 하는 게 별 소구력이 없게 됐다”며 “그러면서도 상대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는 ‘입틀막’ 사진은 대거 활용하는 것 자체가 적대적 공생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