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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재 훼방' 러시아, 제재로 직격...정부, 北 포탄 실어나른 러 선박 등 타깃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정부가 2일 북·러 간 불법 무기거래 및 북한의 불법 해외노동자 송출에 관여한 선박 2척, 기관 2개, 개인 2명을 새로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직접 북한산 포탄을 운반한 선박 제재는 처음인데, 선박의 기국도, 기관 및 개인의 국적도 모두 러시아다. 최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의 임기를 종료하도록 하는 등 러시아의 연이은 '제재 훼방' 행위에 대한 대응 성격도 있어 보인다.

지난해 9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 극동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난 모습. 뉴스1.

지난해 9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 극동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난 모습. 뉴스1.

이번에 제재 대상에 오른 선박 LADY R (레이디 알)과 ANGARA(앙가라)에 대해 정부는 "다량의 컨테이너를 싣고 러시아와 북한을 오가며 군수물자를 운송했다"고 설명했다. 북한산 탄약과 포탄을 러시아로 실어날랐다는 뜻이다.

지난달 20일(현지시간) 공개된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 보고서에는 앙가라호와 레이디 알 등 4척의 러시아 선박이 지난해 8월에서 12월 사이 북한 나진항에서 컨테이너를 실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두나이항까지 드나드는 정황이 위성사진과 함께 담겼다. 앞서 미국은 두 선박을 이미 독자 제재 대상에 올리기도 했다.

지난달 20일(현지시간) 공개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 보고서에 적시된 북·러 무기 거래에 관여한 것으로 파악된 앙가라와 레이디알 등 러시아 선박 4척. 패널 보고서 캡처.

지난달 20일(현지시간) 공개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 보고서에 적시된 북·러 무기 거래에 관여한 것으로 파악된 앙가라와 레이디알 등 러시아 선박 4척. 패널 보고서 캡처.

앞서 한·미 국방·정보 당국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방러한 지난해 9월 전후부터 선박들이 양국 항구를 활발하게 드나들었다고 밝혔다. 지난 2월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지난해 8월 말 이후 최근 6개월간 북한에서 러시아로 이동한 컨테이너가 6700여개 분량"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10월 백악관이 공개한 북한이 러시아에 탄약을 제공하는 경로. 백악관.

지난해 10월 백악관이 공개한 북한이 러시아에 탄약을 제공하는 경로. 백악관.

외교부는 "러·북 무기거래 등 군사협력은 안보리 결의의 명백한 위반이며, 한반도를 넘어 전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행위"라며 "정부는 러시아가 북한의 대러 무기 수출에 대해 제공하는 대가가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거나 우리 안보를 위협할 가능성도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필요시 추가 조치를 계속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가 포탄에 대한 대가로 핵잠이나 위성 뿐 아니라 탱크 등 재래식 전력 강화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기술을 이전할 가능성을 우려한 것이다.

정부는 앞서 지난해 9월에도 북·러 무기거래에 대응해 강순남 북한 국방상 등을 제재 대상에 올렸다. 다만 당시에는 고위 당국자에 책임을 묻는 상징적 의미가 컸고, 다른 제재 대상도 대부분 북한 국적자였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실제 포탄을 실어나른 러시아 선박을 타깃으로 해 국제사회가 볼 수 있도록 ‘주홍 글씨’를 찍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독자제재 대상으로 지정된 선박은 국내 관리청의 허가를 받아야만 입항할 수 있다. 사실상의 입항 불허로 볼 여지가 있다. 이는 국내 항구 입항에만 국한된 조치이지만, 미국도 제재 중이고 유엔의 지적을 받은 선박이라는 점에서 중첩적 압박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4일 조선인민군 근위 서울류경수제105땅크(탱크)사단과 산하 제1땅크장갑보병연대를 시찰하는 모습.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4일 조선인민군 근위 서울류경수제105땅크(탱크)사단과 산하 제1땅크장갑보병연대를 시찰하는 모습.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정부는 IT 인력 등 북한의 해외노동자 송출에 관여한 러시아 기관 2개 및 각 기관의 대표인 개인 2명도 제재했다.

'인텔렉트 LLC'와 대표 '세르게이 미하일로비치 코즐로프'는 "북한 IT 인력의 러시아 내 활동을 위해 필요한 신원 서류를 제공해 북한 국방과학원의 외화벌이 활동을 조력했다"고 정부는 설명했다. '소제이스트비예'와 대표 '알렉산드르 표도로비치 판필로프'는 "편법으로 북한 노동자의 러시아 입국·체류를 지원하는 등 북한 노동자 러시아 송출에 관여했다"는 설명이다. 제재 대상으로 지정된 개인·기관과는 원칙적으로 금융 거래 및 외화 거래가 금지된다.

윤석열 정부의 대북 독자 제재는 17번째인데, 특히 이번 제재 대상은 모두 러시아 국적자와 기관, 러시아 선박이라 더 눈길을 끈다. 이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북한과의 불법 무기 거래를 통해 스스로 안보리 결의를 다수 위반한 데 이어 대북 제재 위반 행위를 감시 및 추적해온 전문가 패널까지 없애면서 계속해 선을 넘는 것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앞서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뉴욕 유엔 본부에서 이뤄진 패널 임기 연장 투표에서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해 패널이 15년만에 임기 종료를 맞게 됐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오전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의 임기를 1년 더 연장하기 위한 결의안 표결을 진행하는 모습. 유엔 웹티비 캡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오전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의 임기를 1년 더 연장하기 위한 결의안 표결을 진행하는 모습. 유엔 웹티비 캡처.

이와 관련, 정부는 이날 독자 제재 보도자료에서 패널이 밝혀낸 북·러 간 불법 행위를 상세히 인용했다. "3월 21일 발간된 패널 보고서에 따르면 패널은 최근 약 2년간 러시아 고용주가 북한 노동자를 불법 고용한 혐의가 드러난 법원 기록이 약 250건 있으며, 이 중 최소 4건의 경우 북한 노동자에게 노동 허가가 발급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면서다. 정부는 "패널은 또한 하바롭스크의 한 건설회사가 최소 58명의 북한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적시했다"고도 소개했다. 국제적 공신력을 지닌 패널 보고서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이런 식으로 다시 한 번 강조한 셈이다.

다만 정부 당국자는 "이번 제재는 한반도를 넘어 전세계 평화와 안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러북 무기거래 등 군사협력과 안보리 결의를 위반한 여타 러북간 불법협력에 대응하는 조치로서 그간 우리 정부는 관련 검토를 진행해 왔다"며 안보리 전문가 패널 임기 연장 불발에 즉자적으로 대응한 건 아니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정부는 러시아에 대한 직접적 비판도 이어갔다. "러시아가 안보리 결의에 위반되는 군사 협력 등 북한과의 일체의 불법 협력을 즉각 중단할 것을 다시 한번 강력히 촉구한다. 국제사회와 함께 계속 엄정히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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