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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현철의 시시각각

‘수사 검은 띠’ 검사의 변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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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현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최현철 논설위원

최현철 논설위원

“물 들어올 때 노 안 젓고 뭐하고 있는 거요?”

지난 1월 말 정년퇴임한 강민구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요즘 가끔 듣는 얘기다. 그는 법원 안팎에서 모두 인정하는 법조계 정보기술(IT) 분야 일인자였다. 이력으로 보나, 능력으로 보나 개업하면 IT 분야 사건이 물밀 듯 몰려올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변호사 사무실을 열지 않았다. 두 달째 전국을 돌며 인공지능(AI) 강연에 매진하고 있다. 또 AI가 몰고 올 미래에 대해 함께 고민할 사람들을 모아 ‘디지털·AI 상록수 협회’를 창설했다. 그러다 보니 개업은 자꾸 늦춰졌다.

‘다단계 수사 블랙 벨트’ 이종근
퇴임 후 다단계 변호로 40억 벌어
검찰개혁 외치기엔 본인 허물 커

지난해 퇴임한 이종근 전 검사장은 수사 유단자다. 검찰 공인 전문검사 1급(블랙 벨트)을 땄다. 주특기는 다단계·유사수신 분야. 2013년 도입한 이 제도를 통해 300명 가까운 전문검사가 나왔다. 하지만 대부분 2급(블루 벨트)이고 1급은 딱 8명밖에 없다. 이 변호사는 2016년 1호 ‘검은 띠’ 검사가 됐다. 다단계 사기의 양대 산맥인 JU와 조희팔 사건에 모두 관여해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그가 부임한다는 소식이 들리면 관내 다단계 조직이 지하로 숨거나 근거지를 옮길 정도였다.

하지만 그도 정치 바람을 탔다. 대검 형사부장 시절 당시 법무부 감찰담당관에 발탁된 부인 박은정 검사와 함께 윤석열 검찰총장 찍어내기에 공을 세웠다. 정권이 교체되면서 1순위로 물을 먹었다. 한직으로 밀려나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발령나자 사표를 던졌다.

그래도 재야에서 전문성을 살릴 것이란 기대가 컸다. 개업 무렵 언론 인터뷰에서도 “검찰에서 쌓은 전문성과 경험을 토대로 불법 다단계, 유사수신, 가상화폐 및 코인 사기 사건 등에서 사건 관계자가 억울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다단계 수사 역량을 반대로 쓰면 사기범들에게는 더없는 무기가 될 수 있다. 이를 간파한 다단계 사기범들이 그에게 몰렸다. 휴스템 코리아 사건을 수임해 22억원을 받는 등 1년 동안 40억원을 벌었다. 그러다 부인이 출마하며 수임한 내역과 수임료 규모가 드러났다.

논란이 일자 이 변호사는 “개혁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무조건 청빈불고가사(淸貧不顧家事·가난해서 집안을 건사하지 못함)해야 한다면 저도 입을 닫겠다”고 항변했다. 박 후보도 “남편의 경우 전체 건수가 160건이기 때문에 전관으로 한다면 160억원을 벌었어야 한다”고 했다. 억지 주장이다. 40억원 자체도 엄청난 돈이고, 버는 과정은 개혁적이지도, 도덕적이지도 않다는 게 분노의 원천이다. 나아가 검찰을 개혁하겠다고 나서기엔 스스로의 허물이 더 커 보인다.

특수부 검사들이 개업하면 재벌 회장이나 고위 공무원의 횡령·배임·뇌물 사건을 변호하는 게 다반사다. 여의도 저승사자라는 증권범죄합수단 출신은 주가조작 피의자를 대리한다. 현직들이 무시하지 못할 전문성, 그 현직들과 쌓은 인맥이 조사실과 법정에서 위력을 발휘한다. 몸값이 높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보통의 시민들이 법정에서 이런 상대 변호사를 만나면 ‘전관예우’라고 느낄 수밖에 없다. 특히 다단계 저승사자가 피해자로부터 등을 돌리고, 성폭력 전문 검사 출신이 가해자에게 빠져나가는 방법을 교육하며 거액을 벌어들이는 것은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많다.

강민구 전 부장판사는 과거 송종의 전 법제처장의 글을 모아 전자책으로 출간한 적이 있다. 범죄와의 전쟁을 지휘하고 슬롯머신 사건에서 수사팀의 방패막이가 됐던 검사다. 그런데 대검 차장으로 퇴임한 뒤 아예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았다. 농업법인을 차려 밤과 딸기, 수박을 기르고 그 돈으로 ‘천고법치문화상’을 제정해 해마다 거액의 상금을 수여하고 있다. 모든 전관이 강 전 부장판사나 송 전 처장 같은 삶을 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공직에서 익힌 기량을 범죄자를 돕는 데 쓰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평범한 시민들의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