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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후남의 영화몽상

전사, 영웅, 그리고 우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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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이후남 기자 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
이후남 문화선임기자

이후남 문화선임기자

3년의 시간을 두고 두 편으로 나눠 개봉한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듄’ 시리즈는 머나먼 미래가 배경인 SF다. 이와 동시에 황제나 귀족 같은 봉건적 직책의 인물들이 등장해 시대극 분위기도 풍긴다. ‘베네 게세리트’라고 불리는, 중세풍 옷차림에 초월적인 힘을 지닌 이들도 나온다.

매력적인 젊은 배우 티모시 샬라메가 연기한 주인공 폴은 공작의 아들로,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후계자다. 황제의 음모로 아버지는 1편 ‘듄’(2021)에서 죽임을 당했고, 폴과 어머니는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이들이 복수와 생존을 도모해야 하는 낯선 행성 아라키스는 물 한 방울 없는 사막일 뿐. 대신 우주에서 가장 비싼 물질 스파이스가 나온다. 그래서 약탈과 침략의 역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행성이기도 하다.

‘듄: 파트2’의 폴(티모시 샬라메·왼쪽)과 챠니(젠데이아).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듄: 파트2’의 폴(티모시 샬라메·왼쪽)과 챠니(젠데이아).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미래 배경의 SF답게 이 2부작 영화의 시각적 표현은 단연 뛰어나다. 특히 2편 ‘듄: 파트2’(2024)는 1편에서 맛만 보여준 거대 생명체 모래벌레의 위용, 여기에 올라타는 아라키스 전사들 모습 등 장관이라고 할 장면이 여럿이다. 폴과 대적하는 하코넨 가문의 젊고 새로운 악당 역시 활약이 인상적이다. 폴의 성장 혹은 변화 역시 두드러진다. 유약한 소년, 환영받지 못하던 이방인은 점차 전사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나아가 영웅이자 구세주로 추앙받는다. 어쩌면 예정된 운명이다. 사막 민족 프레멘 사이에 퍼져있는 구세주에 대한 예언은 마침 폴의 면면과 맞아 떨어진다.

물론 이 예언을 관객이 액면 그대로 믿을 이유는 없다. 베네 게세리트가 이를 사전에 조장했음은 1편이 알려준 터. 프레멘 중에도 챠니(젠데이아) 같은 젊은 세대는 처음부터 예언을 신통치 않게 여긴다. 사막의 전사 챠니는 폴에게 이모저모 가르쳐주는 조력자이자 점차 연인 사이가 된다.

널리 알려진 대로 이 영화의 원작은 1965년 미국 작가 프랭크 허버트(1920~86)가 발표한 소설. 게다가 2편은 국내 극장가에서 1편보다 많은 관객을 모았다. 결말을 스포일러로 감출 이유는 없을 듯싶다. 폴은 처음부터 예언을 이용하려던 어머니와 달리 자신을 예언의 실현으로 보는 시선을 경계한다. 상식적이다. 하지만 결국 스스로 상식을 배신하고 권력을 쥔다. 챠니는 이런 연인에 대해 반감과 반발을 공공연히 드러낸다. 챠니의 시선에서 정치와 종교적 맹신의 결합, 권력과 영웅주의의 결합이 불러올 문제를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다. 영화 속 미래에 닥쳐올 일만 아니라 현재의 세상에서도 종종 목격되는 일이다. 희귀한 자원이 축복 대신 저주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

이를 비롯해 드니 빌뇌브 감독은 반세기 전 소설을 다시 스크린에 불러낸 이유를 충분히 보여준다. 3편이 나온다면, 매력적인 영웅이 결코 아닌 폴의 면모가 한결 뚜렷해질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