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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승중의 아메리카 편지

부활절 달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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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해마다 부활절이 돌아오면 어린 시절에 갖가지 색깔로 물들인 달걀 찾기를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이제 두 살이 되어가는 딸아이가 삶은 달걀 까는 일을 특별히 좋아하기에 몇십 년 만에 처음으로 달걀 물들이기 장식을 해보았다.

달걀은 오래전부터 다산과 재생을 상징했다. 성탄절이 동짓날과 연관이 있는 것처럼 부활절은 봄의 재생을 기념하는 이교도 관습과 융합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영어권에서 사용하는 ‘이스터(Easter)’라는 용어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 명칭은 서게르만족이 숭배하던 봄의 여신 에오스트레(Eostre)에서 유래된 것이다. 더 나아가 고대 그리스의 새벽의 여신 에오스(Eos)와도 관련이 있다. 동쪽(East)에서 뜨는 태양의 신 헬리오스를 선도하는 역할을 하는 에오스는 밤과 낮의 중간을 맡아 그 경계를 정의한다. 겨울을 지낸 뒤 만물이 재생하는 봄이나 캄캄한 밤을 이기고 동이 트는 새벽은 둘 다 생명의 힘을 상징한다.

아메리카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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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르의 이슈타르(Ishtar)도 풍요와 다산의 여신으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비너스다. 흥미롭게도 이슈타르를 기념하는 봄의 페스티발은 그가 저승으로 연인을 구하러 갔다가 이승으로 돌아오는 ‘부활’을 상징한다. 고대 그리스의 페르세포네도 저승으로 납치되었다가 풀려난다는 이야기로 봄을 설명한다.

하지만 달걀이라 하면 무엇보다도 디오니소스 신을 최고로 숭배하는 오르페우스교에서 만물의 태고의 원천으로 언급하는 ‘우주 달걀(cosmic egg)’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달걀을 까고 나오는 비옥하고 신비스러운 존재라는 관념은 고대 그리스를 비롯해 힌두교, 조로아스터교나 이집트와 페니키아 문명에서 볼 수 있다. 이는 물론 우리나라 주몽의 탄생 같은 고대의 난생 설화와도 관련이 있다. 주역은 부활을 복괘(復卦)로 말한다. 복(復)은 ‘돌아온다’는 뜻이다. 부활 그 자체가 생명의 순환이다.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