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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차 "러, 전문가패널 연장 거부로 대북제재 영구해체 착수"

중앙일보

입력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28일(현지시간) 오전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의 임기를 1년 더 연장하기 위한 결의안 표결을 진행하는 모습. 유엔웹TV 캡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28일(현지시간) 오전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의 임기를 1년 더 연장하기 위한 결의안 표결을 진행하는 모습. 유엔웹TV 캡처

러시아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의 이행을 감시하는 전문가 패널의 임기 연장에 거부권(비토)을 행사한 것을 두고 대북제재를 영구적으로 해체하기 위한 노림수란 분석이 나왔다. 북한이 러시아를 뒷배 삼아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 감시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했다는 것이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빅터 차 한국 석좌와 엘런 김 선임 연구원은 29일(현지시간) CSIS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러시아는 이번 거부권 행사로 유엔 대북제재 체제를 약화하려는 "조직적인 노력의 세 번째 단계"에 착수했다는 분석을 내놨다.

러시아가 1단계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이행 중단, 2단계로 북한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 대응한 신규 안보리 제재 결의 저지에 이어 3단계로 유엔 차원의 대북제재 체제를 영구적으로 해체하는 조치에 착수했다는 게 차 석좌와 김 연구원의 진단이다. 이들은 러시아가 사실상 모든 제재를 백지화할 수 있는 일몰 조항(sunset clauses)의 도입을 요구하면서 대북제재 전체를 재검토하자는 주장을 내놓은 게 그 증거라고 주장했다.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수석부소장 겸 한국 석좌가 지난 4일 '중앙일보-CSIS 포럼 2024'에서 발언하는 모습. 김종호 기자.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수석부소장 겸 한국 석좌가 지난 4일 '중앙일보-CSIS 포럼 2024'에서 발언하는 모습. 김종호 기자.

배경에 대해선 지난해 9월 정상회담 이후 무기거래는 물론 군사·외교·경제·문화·정당 등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는 북·러 관계를 거론했다. 차 석좌와 김 연구원은 "푸틴(러시아 대통령)으로선 미국의 대우크라이나 추가 군사지원이 의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시기에, 러·북 호혜적 협력을 지속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있어 결정적인 이익을 얻기 위해 안보리에서 북한을 지지하지 않을 이유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현행 대북제재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대체제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내놨다. 차 석좌와 김 연구원은 "전문가 패널이 없으면 유엔 회원국 입장에선 현재의 제재 체제에 생긴 구멍을 메우고 이행을 감시할 제3자 기구가 사라지는 것"이라며 "미국, 일본, 한국, 호주와 유사한 입장을 가진 다른 파트너 국가 등 핵심 국가들이 정보, (대량살상무기) 확산 저지, 제재 정책 집행을 위한 입법 등에서 공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주요 7개국(G7·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캐나다, 이탈리아)과 호주, 한국, 스페인 등이 적극적으로 정책 공조를 하면 완벽하진 않지만, 효과적인 대체제를 만들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거부권을 가진 중·러가 유엔 안보리 차원의 대북제재 이행에 동참하지 않는 상황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따른 안보위협을 우려하는 국가들이 최대한 공조해야 한다는 얘기다.

지난 20일(현지시간) 공개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 보고서에 첨부된 나진항과 나진역 근처 철도를 구글 어스로 캡처한 장면. 대북제재위 보고서 캡처

지난 20일(현지시간) 공개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 보고서에 첨부된 나진항과 나진역 근처 철도를 구글 어스로 캡처한 장면. 대북제재위 보고서 캡처

뉴욕타임스(NYT)도 같은 날 이번 전문가 패널 임기 연장 불발은 지난 2년간 핵확산 억제 노력이 급속히 악화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라는 진단을 내놨다.

미 국무부의 비확산·군축 담당 특별보좌관을 지낸 로버트 아인혼 브루킹스연구소 선임 연구원은 "냉전 이후 대부분 기간 러시아와 미국, 중국은 북한과 이란 등 핵확산 도전을 다루는 협력국이었다"며 "그들은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 시절) 이란과의 협상 기간 전적으로 미국과 유럽 편에 섰고, '화염과 분노'(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 초기) 기간에도 북한 문제에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러시아와 중국은 북한 핵·미사일을 국제 비확산 체제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인식하고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미국과 함께 제재에 동참해왔지만, 이젠 상황이 변해 대북제재 대오에서 이탈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러시아 입장에선 2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북한의 무기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러시아가 북한과 추가 무기거래에 방해받지 않기 위해 국제사회가 십수년간 구축해온 대북제재의 틀을 무너뜨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9월 13일 러시아 아무르주에 있는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안내를 받아 우주기지를 둘러보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9월 13일 러시아 아무르주에 있는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안내를 받아 우주기지를 둘러보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실제 전문가패널이 지난 20일 공개한 정례 보고서에는 북·러 간에 안보리 결의 위반에 해당하는 무기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는 구체적인 정황이 담겼다.

NYT는 "(전문가 패널은) 러시아가 어떻게 북한에 연료를 비롯한 물자가 계속 넘쳐흐르도록 하는지 생생한 증거를 제시했다"며 "러시아의 대북제재 감시망 해체는 대북 압박 완화에 새로운 영역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입장에선 그동안 공들여온 러시아와의 관계가 성과로 나타나게 된 것으로, 향후 대북제재 위반 행위가 노골화되고 북·러 간 밀착이 더 가속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편 김성남 북한 노동당 국제부장이 지난 29일 중국, 베트남에 이어 라오스를 방문해 "자위적 국방력 강화정책과 대적투쟁 노선의 정당성"을 설명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31일 보도했다. 김 부장이 이끄는 노동당 대표단이 사회주의권 국가들을 잇달아 방문해 이들과의 우호 관계를 다지는 것은 미·중 경쟁,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열린 국제정세의 틈새를 파고들어 반(反)서방 진영 국가들과의 국제적 연대를 확대하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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