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숨 돌아왔을 때 옮겼어도…" 33개월 여아, 이송 거부 끝에 숨졌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와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로 의료공백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31일 오후 대전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에 도착한 119구급대원들이 환자를 급히 이송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와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로 의료공백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31일 오후 대전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에 도착한 119구급대원들이 환자를 급히 이송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2시간 동안 상급병원 10곳 모두 거절 

충북 보은에서 물웅덩이에 빠졌다가 구조된 생후 33개월 여자아이가 상급종합병원으로 옮겨지기 전에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31일 소방당국과 충북도 등에 따르면 지난 30일 오후 4시30분 보은군 보은읍의 한 주택 옆 1m 깊이 물웅덩이에 A양(2)이 빠졌다는 신고가 소방에 접수됐다. A양은 부모에 의해 구조됐지만, 소방 구조대가 도착했을 때 이미 심정지 상태였다. 구급대는 A양에게 심폐소생술(CPR)을 진행했고, 이날 오후 4시59분 보은읍에 있는 한 병원 응급실로 옮겼다.

이 병원은 소아과와 내과, 정형외과 등 3개 진료과목에 병상 112개를 갖췄다. 보은에서 유일하게 소아과 의사가 있는 병원이다. 병원 측은 A양 상태가 위중하다고 판단, 이날 오후 5시25분 충북지역 3차 의료기관인 충북대병원에 전원 요청했다. 병원 측 자료에 따르면 충북대병원은 “소아 중환자 병상 부족으로 환자 수용이 불가하다”며 전원을 거부했다.

이후 대전권에 있는 충남대병원과 을지대병원, 세종시에 있는 세종 충남대병원에 차례로 전원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날 오후 5시50분~55분 거리가 더 먼 천안의 상급병원 2곳에 연락했으나 이 또한 거절당했다. 오후 6시4분 대전의 한 종합병원, 오후 6시6분 경기도에 있는 상급병원에 같은 요청을 했지만 마찬가지였다. A양은 보은 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아 오후 6시7분쯤 맥박이 돌아왔다.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한 전공의에 이어 교수들도 집단 사직서를 제출한 가운데 지난 26일 지방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들과 방문객이 병원 내부를 이동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한 전공의에 이어 교수들도 집단 사직서를 제출한 가운데 지난 26일 지방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들과 방문객이 병원 내부를 이동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소아 중환자 병상 부족” 이유 

병원 측은 A양이 맥박을 회복한 후 상급병원 2곳에 더 연락했고, 119상황실도 병원 섭외에 나섰다. 하지만 전원이 늦어지면서 A양은 이날 오후 7시1분쯤 다시 심정지에 빠졌다. 이날 오후 7시25분쯤 대전의 한 대학병원 1곳에서 “전원이 가능하다”고 했지만, 2분 뒤 “심정지 상태에선 수용이 불가하다”는 답을 받아 실제 이송이 이뤄지지 못했다.

A양은 결국 이날 오후 7시40분쯤 최종 사망 판정을 받았다. 충북도 관계자는 “소아 중환자를 치료할 의사가 없다거나, 환자를 수용할 병상이 없다는 이유로 전원을 거부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전공의 파업으로 환자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는 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병원 관계자는 “A양을 상급종합병원으로 이송하기 위한 준비를 모두 마쳤지만 모두 거부했다”며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A양 아버지(49)는 “병원에서 여러 군데 전원 요청을 했지만, 거절당했다고 들었다”며 “딸 아이가 숨이 돌아왔을 때 큰 병원으로만 옮겼어도 희망이 있었을 텐데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한 게 억울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이 나흘째 이어지는 지난 2월 23일 충북대병원 응급실에 진료 제한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이 나흘째 이어지는 지난 2월 23일 충북대병원 응급실에 진료 제한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보건복지부 “전원 요청받은 의료기관 조사 중”

보건복지부는 이날 설명자료를 내고 “해당 환아는 119 구급대 도착 당시 맥박·호흡이 없고 동공 무반응, 심전도 상 무수축(리듬 없음) 상태였다”며 “보은 소재 B병원 도착 직후부터 심폐소생술을 받던 도중 오후 6시7분 맥박이 감지되고(의식 없음), 119 구급상황관리센터를 통해 충청·수도권 다수 병원에 연락해 전원을 시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B병원 도착 이후 환자 상태, 전원이 가능할 만큼 생체 징후가 안정적이었는지 여부, 당시 전원 요청을 받았던 의료기관의 여건 등 상세 내용은 조사 중”이라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물에 빠져 심정지가 와 CPR을 1시간 이상 한 환자라면 상급종합병원으로 옮겨지더라도 병원에서 더 할 수 있는 조치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라며 “CPR 끝에 맥박이 돌아왔어도 심정지가 다시 올 수 있고, 병원 전원 과정에서 사망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A양이 집 근처에서 놀다가 물웅덩이에 빠진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