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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조사 제대로 않고 한화 목장에 중과한 재산세…대법원 "무효 아냐"

중앙일보

입력

일러스트 김회룡.

일러스트 김회룡.

과세당국이 토지 현황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재산세를 잘못 중과했더라도, ‘중대하고 명백한 하자’가 없었다면 세금 부과가 당연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12일 한화호텔앤드리조트㈜가 제주시와 국가를 상대로 “정부가 잘못 중과한 재산세는 원천 무효”라며 낸 부당이득금반환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중대·명백한 하자가 없는 위법한 과세 처분은 당연 무효가 되진 않고, 별도의 취소 소송을 제기해 환급받아야 하는 취소사유에 불과하다’는 취지다.

한화는 제주시 애월읍에 위치한 총 7필지의 땅을 1987년과 2003년 두 번에 걸쳐 사들였다. 이 땅의 지목은 ‘목장용지’였지만 한화는 실제 이를 목장으로 이용하지 않고 ‘비사업용 토지’(토지의 용지에 맞게 사용하지 않으면서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로 뒀다. 통상 과세 당국은 비사업용 토지를 투기 목적의 보유로 간주하고 세금을 무겁게 부과한다. 제주시도 한화의 이 땅에 중과세를 적용했다.

현행법상 목장 용지는 분리과세대상 토지로, 재산세와 지방교육세를 부과할 때 세율 0.07%를 적용해야 한다. 하지만 제주시는 이 토지를 일반 토지처럼 종합합산 과세대상 및 별도합산 과세대상으로 보고 재산세와 지방교육세를 부과했다. 종합합산과 별도합산 과세대상 토지에는 각각 0.5%, 0.4%의 세율이 적용돼 분리과세 대상인 토지보다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한다. 여기에 더해 종합부동산세 등도 부과했다. 원래 분리과세 대상인 토지는 종부세 부과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런데 2013년부터 한화는 이 목장 용지에 실제 축사를 짓고 말을 사육하기 시작했다. 이런 사실을 한국마사회에 등록도 했다. 문제는 제주시가 별도의 조사 없이 이 토지를 계속 합산과세대상이라고 보고 중과세를 걷으면서 발생했다. 2014∼2018년에 걸쳐 귀속재산세와 지방교육세 7000여만원을 부과했고, 영등포세무서도 같은 명목으로 3억여원을 징수했다.

한화는 이 땅이 2013년부터 실제 목장으로 사용됐는데도 제주시와 과세당국이 잘못된 세율을 적용했다며 2019년 9월 소송을 제기했다. ▶담당 공무원이 현장조사를 한 번도 하지 않는 등 중대하고 명백한 하자를 일으켰고 ▶중대·명백한 하자가 있는 부과 처분은 당연 무효이므로 그동안 더 낸 세금을 반환해달라는 주장이었다.

대법원 전경, 뉴스1

대법원 전경, 뉴스1

재판의 쟁점은 부과 처분의 하자가 중대·명백해 당연무효에 해당하는지였다. 중대·명백하지 않은 하자가 있는 과세처분은 당연무효가 되지는 않고, 취소 소송을 제기해 세금을 환급받아야 하는 취소 사유에 불과하다.

1심 재판부는 세목을 잘못 적용한 하자가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처분을 당연 무효로 할 만큼 하자가 명백하다고 볼 수는 없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중대·명백한 하자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제주시가 재산세와 지방교육세를 부과하기 전 법령에 따라 현황을 조사했다면 해당 토지가 분리과세 대상에 해당함을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이라며 “그런데도 귀속연도에 토지 현황 조사를 전혀 하지 않은 채 이전 과세자료에만 의존해 과세처분을 했다”고 봤다.

대법원은 다시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과세관청이 조세를 부과하고자 할 때는 해당 조세법규가 규정하는 조사방법에 따라 얻은 정확한 근거에 바탕을 두어 세액을 산출하여야 하며, 이러한 조사방법 등을 완전히 무시하고 막연한 방법으로 과세표준과 세액을 결정, 부과했다면 하자가 중대·명백해 당연무효”라면서도 “그러나 단순한 과세대상의 오인, 조사방법의 잘못된 선택 등의 위법이 있음에 그치는 경우에는 취소사유로 될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 토지는 합산 과세대상 토지에 해당하는 것으로 오인할 만한 객관적인 사정이 있어 하자가 외관상 명백하다고 볼 수 없다”며 “설령 각 부과처분 과정에서 과세관청이 한국마사회 홈페이지 검색을 하지 않는 등 그 조사에 일부 미진한 점이 있다 하더라도 조사방법 등을 완전히 무시하고 아무런 근거도 없이 막연한 방법으로 세액을 결정, 부과한 것과 같은 중대·명백한 하자로 볼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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